Tue, June 25, 2024   
‘무릎을 꿇는다’는 의미

09/06/19       김금옥 목사

‘무릎을 꿇는다’는 의미


무릎을 꿇다라는 말이 있다. 상대에 대한 경외와 존경의 의미로 존경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무릎을 꿇는다. 우리 한국에서 의자 생활을 하지 않았을 때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 친척 등 어른들을 만나면 무릎을 꿇고 앉았었다. 경건한 어떤 일을 경험했을 때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무릎을 모아 단정히 앉는다. ‘무릎을 꿇는다는 말은 그만큼 경건하고 존경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 드리고 주님의 응답의 의미를 알려고 한다.   

오래 전 필자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만났다. 그의 성경 욥기를 탐독했다. 그 안에서 창조주로서 하신 그 모든 것을 읽었다. 인간으로서 어느 하나라도 그 비슷하게 하거나 할 수있는 것이 전혀 없고, 아무 것도 할 수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힘이 빠졌다. 당연한 답이지만 새삼스럽게나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생각하였다. 아무 것도 아니고 유한한 인간이 자신들의 한계를 깨닫는 것은 이렇게 간단하다.

 

성경 욥기에서 욥과 하나님 사이의 폭풍 속에서의 대화를 안다. 하나님이 욥에게 그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서 욥은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알았다. 창조자가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을 인간은 어느 하나라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창조주께서 하신 그것을 욥에게 한 것 같이네가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가물으면 우리 피조물들은 어떻게 답하겠는가? 당연히 못할 것들이다

 

인간이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것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중요한 인자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능력이나 지식으로 없는 것도 있음을 깨달았을 사람들은 힘이 빠지고 겸손해진다. 욥이 주님과의 대화 중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보았고 아무 것도 없는 한계 안에 있는 자신을 깨달았을 욥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자신의 무릎을 꿇었다

욥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만난 후에 그가 주께 말한 고백은 무릎을 꿇은 다른 사람들의 고백에서 들을 수 있다. 필자도 욥기를 여러 번 읽었다. 하나님께서 말한네가 할 수 있느냐라는 물음에 마찬가지로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가을 낙엽의 색깔이 초록에서 아름다운 적갈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즐기기는 했어도 색깔을 바꾼다는 것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수많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아무 것도, 아무리 간단한 것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들 인간 자체도 주님의 지음을 받은 존재이거늘

 

인간의 한계를 깨닫는다는 것은 사람들을 겸손하게 만든다.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기 때문이다. 가장 겸손한 것은 아무래도 욥일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만난 그는 자신은 듣기만 했는데 이제 보기도 한다면서 재 속에서 회개했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회개할 때이다. 욥의 마음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물과 같이 녹아내렸다. 회개한 욥은 친구를 용서할 수있고 그들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할 수 있었다. 욥과 같이 사람들은 기도 중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그들의 마음은 녹아지고 그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보고 회개하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회개한 후의 사람들의 마음은 즐겁고 기쁘고 주 앞에서 자유한 마음으로 서게 되는 것이다

 

교육전도사 시절, 고등부 학생들을 이끌고 기도원에 갔다. 저녁에 베드로에게 주님이 한 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가지고 설교를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눈물로 회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들러 학생들의 회개 기도를 거들어준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밤은 참으로 성령의 임재가 대단한 회개 기도의 날이었다. 이제는 장년이 되었을 그들이지만 아직도 만나면 반갑다

 

사람들이 자신의 인간으로의 한계는 모르고 교만해질 수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들의 존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 자신은 물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된다. 주님께서 교만하지말고 남을 무시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계속하는 것은 겸손해야 한다는 논리가 머리에만 있기 때문이디.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주님만이 모든 것일 때 어떻게 주 앞에서 교만하고 남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태도를 보이는가? 욥이 여호와를 만난 후의 그의 모습을 보면 힘이 빠지는 일이지만 주님이 모든 것의 창조자이고 우리들이 피조물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겸손해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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