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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알아야 할 네 가지 참 지식

11/09/15       김엘리야 목사

성도가 알아야 할 네 가지 참 지식


요일 5: 18-21절

지식(知識)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의식이나 상상”, “사물을 감지하여 이해하는 작용”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등교육을 받고 지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인텔리지식층이라고 부르고, 그러한 지식계급의 사람을 지식인이라 하며, 논리학과 인식학을 연구하는 철학분야를 지식철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된 히브리어의 지식(知識, Knowledge, 다아트)은 단순한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삶 전반을 직관하고 통찰할 수 있는 “전인격적이고 실천적이며 체험적인 지식”을 가리킨다. 그래서 세상지식이 머리의 지식이라면, 성경의 지식은 머리와 가슴과 삶, 머리와 영혼과 생활의 지식을 가리킨다.

며칠 전, US 뉴스 앤 월드리포트가 메트릭스 데이터에 근거해 각 대학의 연구실적과 글로벌 및 지역평판도 등 12(열두)개 분야를 측정해 평균점수를 산출해 발표한 ‘2016년 세계최고 대학 순위’에 따르면 전 세계 60개국 750개 대학 중에 가장 우수한 대학은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은 하버드 대학이었다. 그리고 세계대학 순위 Top 50에 UC계열 대학만 7개 캠퍼스가 선정됐고, Top 10에 든 대학은 미국이 8개, 영국이 5위 옥스퍼드와 6위 캠브리지 대학으로 2개 대학이 선정됐다. 그리고 한국 대학교에서 세계 순위 750위권 아래 포함된 대학은 17개 대학이었고, 소위 SKYI라고 불리는 한국대학의 간판, 서울대학은 105위, 고대 280위, 연대 260위, 이대가 465위로 모두 100위권에서 밀려나 있었는데, 이것은 31위 도꾜대, 41위 베이징대, 49위의 싱가포르국립대보다 훨씬 떨어진 순위였다. 이것이 현재 글로벌시대 한국대학의 위상이다. 그러나 세계1위 하버드를 나오고, 3위 UC버클리를 졸업하며, 8위 UCLA에서 학위취득을 했다고 최고의 지성은 아니다. 인생성공이 보장된 것이 아니다. 성경말씀대로, 전인격적이며 실천적이며 체험적인 살아있는 지혜와 지식은 야훼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어떤 최고경지의 지혜와 지식과 어떤 종류의 전문지식이나 지혜도 야훼하나님 경외와 하나님 아는 지식 없이는 출발 신호 없이 경기장을 자기 맘대로 달려가는 불법경주자일 뿐이다. 하나님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지혜와 지식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IT산업이 발달하고 인터넷시대가 되면서 인간의 지식세계는 상상할 수 없도록 방대해졌고 지식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도록 다양해 졌다.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인간지식의 높이는 하늘처럼 높아지고 광활해졌으며, 바다처럼 깊어지고 넓어져 인간지식의 크기를 측량할 수 없게 됐으며, 책도 필요 없이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지식을 다 얻을 수 있는 지식의 홍수에 휩쓸려가는 시대가 됐다.

최첨단 과학정보나 의학정보의 전문지식도, 일상생활에서 알아야 할 생활지식도,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체육 학문 법률의 전문지식도, 사소한 기술이나 다양한 고급 기술의 산업지식과 전문지식도, 한국사에서 동양사 세계사의 역사지식도, 그리고 100세 120세까지 무병장수할 수 있는 생명공학의 지식까지도 책상 앞의 컴퓨터와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심지어, 홍수로 늘어난 강물이 댐의 수문을 통해 수억 톤이 방류되듯 인터넷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목사들의 설교를 듣고 즐기면서, 번거롭게 교회를 가거나 주일을 성수하지 않고 헌금도 인터넷으로 내고 성도의 예배의무와 헌신의무를 외면하면서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얌체 교인들까지 생겨나는 시대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지식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얻을 수 있지만 자기영혼을 살리는 영성지식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줄 수 없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주는 성경지식은 말 그대로 로고스(Logos)의 성경지식이지 자기영혼을 살리는 레마(Remah)의 영성지식은 아니다. 영혼을 소생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는 영성지식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릴 때만 가능하다. 예배 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영성지식으로 영혼이 소성하는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성도가 알아야 할 네 가지 참 지식

2015년 노벨 생리의학 상이 기생충을 연구한 세 사람에게 돌아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의과대학에서도 인기가 없었고 일반인이 볼 때도 하찮아 보이는 기생충 연구로 중국의 투유유 박사가 개발한 약재료가 노벨상을 받은 것인데, 그것도 희귀한 식물이 아니라 길가에 널려져 있어 언제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약초 청호(菁蒿, Artemisia apiacea Hence) 개똥쑥, 국화과에 속한 흔해 빠진 식물 개사철쑥이 말라리아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함으로 받은 노벨상이다.

금년 85세의 여박사 투유유는 학계의 관심밖에 있는 분야에 치료제를 개발해 지금까지 말라리아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함으로 그녀의 연구가 치명적인 질병치료에 기여함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말라리아는 얼룩 날개 모기가 사람을 물때 플라스모디움(Plasmodium: 말라리아 원충)이라는 기생충을 옮기면서 생기는 병으로, 처음엔 오한, 두통, 구역질의 오한기증세가 나타나다가 3-6시간이 지나면 피부건조, 빈맥, 빈호흡의 땀을 흘리는 발한기로 이어지고 처방약을 투여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질병으로, 2010년에 전 세계에서 말라리아로 죽은 사람이 무려 65만 명이 넘는데, 이중에 85%는 5세 미만의 어린아이였고, 사망자의 91%가 아프리카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투유유 박사는 25년 동안 남들이 무관심했던 청호, 개똥쑥 연구로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므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것이 치료지식이고 의학지식이다.     
외국의 한 핵발전소에서 심각한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그로 인한 기능장애로 발전 속도가 느려지고 가동효율도 저하되었다. 여러 방법을 찾아봤지만 무엇이 문젠지 원인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핵발전소 건설과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초빙해 원인을 진단해 보기로 했다. 며칠 후 컨설턴트가 도착했다. 컨설턴트는 흰 가운을 걸치고 클립보드를 들고 발전소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진단했다. 하루 종일 통제실에 있는 수백 개의 다이얼과 계기를 체크하며 무엇인가 노트에 적기도 하고 계산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틀 Work 되는 날, 주머니에서 검은 매직을 꺼내더니 매직펜으로 한 계기판에 크게 X 표시를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짧게 설명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기기와 연결된 것을 교체하십시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설명을 마친 컨설턴트는 작업복을 벗어놓고 공항으로 가버렸다. 기술자가 말한 장치를 분해해본 엔지니어들은 그 장치가 문제를 일으켰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곧바로 기계부품을 교체하므로 발전소는 정상으로 가동되었다.  

얼마 후 발전소 책임자는 컨설턴트로부터 1만 달러짜리 청구서를 받았다. 청구금액이 너무 많은 것에 놀란 책임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2일(이틀) 동안 살펴보다가 검은 매직펜으로 X 표시를 한 것이 전부인데 청구비용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사기 당한 것은 아닌데도 사기당한 기분이 들어 생각다 못한 책임자는 컨설턴트에게 편지를 썼다. “청구비의 내역을 항목별로 분류해서 보내주시면 입금해드리겠습니다”

며칠 후, 발전소 책임자는 세부 내역이 적인 청구서를 받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계기에 X표를 표시한 것 1달러, 어디에 X 표시를 해야 할지 찾아낸 것 9,999 달러” 그렇다. 황당한 요구인 것 같아도, 그것이 기술지식의 값이다.

1998년 가을부터 2002년 여름까지 4년 반 동안, 신앙인으로 해서는 안 될, (특히 목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재판소송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재판으로 많은 물질의 손해를 당했고, 부담을 느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으며, 나 자신은 육체의 질병을 얻어 다섯 번이나 Stroke을 맞았었다. 하나님 말씀, 고전 6: 4-11대로, “차라리 속고 손해 보는  것이 나았는데...” 그래서 훗날 나는 이일을 많이 회개했다.

당시 내게 고통을 준 사람은 피고인은 물론이거니와 사건변호를 맡았던 나의 변호사였다. 시간수당을 받기로 계약한 변호사는 나와 5분을 만나 대화하고 헤어지거나 10분 정도 전화통화를 했지만, 며칠 후 보내오는 변호사 Bill은 1시간 2시간의 경비를 청구한다. 그런 일이 너무 빈번해 이유를 물었더니 변호사의 대답은 “김목사를 만나 대화한 것은 2-3분, 7-8분이지만 대화를 분석하고 다음 일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고 Research(철저한 연구조사)하는데 여러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변호사 만나기가 두렵고, 전화하기도 두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돈을 제때에 지불하지 않으면 일도 진행하지 않고, 제 시간에 비용을 지불하면 또 다른 엉뚱한 서류를 만들어 돈을 요구한다. 그렇다. 좋든 싫든 이것이 변호사의 전문지식의 값이다. 그렇게 4년 반 동안의 재판과정을 통해 나의 몸도 마음도 영혼도 물질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의 송사를 세상법정에 의뢰하지 말고 차라리 손해를 당하고 속임을 당하는 것이 낫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지식은 형이하학의 역사지식에서 자연과학과 우주과학 지식, 각종기술지식, 여러 가지 사업지식, 전술과 전쟁지식, 다양한 언어 지식, 음악 지식, 대인관계 지식, 다양한 산업지식과 형이상학의 철학과 인간내면의 지식, 종교지식 등 인간지식의 세계는 넓고 높고 깊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지식들은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For bodily exercise profits little, but godliness is profitable for all things, having promise of the life that now is, and of that which is to come)고 말한 딤전 4: 8대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약간의 유익이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의 육체와 영혼에 유익을 주는 참 지식, 성도가 알아야 할 네 가지 지식을 알아본다.

   1. 하나님께로 난 자는 범죄(犯罪)하지 않는다는 지식

Born again people in Christ are free from sin and Satan!(하나님께로 난 자들인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자들은 죄와 사탄에게서 자유를 얻은 자들)이란 말이다. ‘하나님께로 난 자’(He who were born of God)란 요 1: 12-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He gave the right to become the sons of God, even to those who believe in His name)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Who were born not of blood,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고 하신 말씀처럼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예수이름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사람들이다. 하나님자녀의 출생근원, 중생의 근원은 혈통(血統)으로나 육정(肉情)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 중생(Born Again)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혈통의 하이마톤은 “피”나 “혈연”의 복수 소유격으로 “육체적인 혈연관계”를 의미한다.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내세울 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 7-9, 요 8: 39-44)며 그들을 규탄했다. 그렇다. 내가 목사 아들이고 장로 아들이기 때문에, 내가 4대 5대째 조상들의 신앙혈통을 이어받았기에 구원받은,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중생은 육정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육정(Will of the flesh)의 델레마토스 사르코스는 “육체적인 욕망”이란 뜻으로 일차적으로는 성욕을 비롯한 인간의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가리키고, 더 나아가 이차적으로는 성령의 뜻에 거슬리는 모든 육체적 욕구나 세상적인 정욕을 통칭한다. 그렇다. 당신이 중생하여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은 40일 금식을 40차례나 한 성자나 산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세상을 등지고 거룩한 생활을 한 수도사나 수백만 성도를 섬기는 세계제일의 거룩한 목사를 남편으로 둔 부인으로 그런 사람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 태어났어도 육정으로는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빛이 없는 이 세상 어둠에 처한 인간의 육체적인 욕구나 세상적인 정욕이나 이로 인한 사회적 명망과 권력과 부로도 불가능하고, 거룩한 목사나 성자의 자녀로 태어나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거듭남의 중생,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사람의 뜻으로도 되지 못한다. 사람의 뜻(The will of man, 델레마토스 안드로스)이란 절대자에게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성적 노력이나 수양과 도덕, 율법 준수 등을 가리킨다. 사람이 성공출세와 희비애락을 포기하고 명산고찰에 들어가 80년 100년 동안 도를 닦아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거듭나는 중생, Born-again의 하나님 자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중생은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거듭나는 것(Born again)의 ‘거듭’은 헬라어 아노덴으로 ① “처음부터”, “완전히”, “철저히”란 뜻과 ② “다시”, “두 번째”란 뜻이 있으며 ③ “위에서부터”, “하나님께로부터”의 뜻이 있다. 말 그대로 ‘완전히, 두 번째로, 위에서부터, 하나님께로 난 것’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기도와 제사와 세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하면 중생한 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택받은 유대인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중생한 성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예수이름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께로서 난 중생한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가 아닌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 만드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큰 소리로 ‘아멘’하여 영광을 돌리자.

요한은 본문에서 ‘하나님께로 난 자는 범죄 하지 않는다’(We know that no one who is born of God sins-We know that whosoever is born of God sins not)고 했고 이것은 성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첫 번째 지식이라고 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고 예수이름을 믿어 거듭난 성도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주일마다 교회를 찾아와 일주일 동안에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씀이 과연 맞는 말씀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나올 때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본문 18절에서, ‘하나님께로 난 자는 범죄(犯罪)하지 않는 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⑴ 첫째로 칼빈(Calvin)과 같이 16-17절과 연관시켜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사람이 짓는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을 죽였거나 이웃을 죽인 흉악한 살인죄도, 남의 가정을 파괴한 더러운 간음죄도, 남을 망하게 한 도적질도, 부모를 거역한 죄도 회개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죄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다. 그러나 ⒈ 마 12: 31, 막 3; 28-29, 눅 12; 10대로,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로 정죄하고 모독하는 성령 훼방 죄,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사하심을 영원히 받지 못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이다. ⒉ 히 6; 6-8, 10: 26-31대로, 하나님 아들을 발로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각종 이단에 빠지는 죄는 회개할 수도 없고, 용서받을 수도 없는 사망에 이르는 죄다.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될 것이며, 자기 죄를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바울은 딛 3: 10-11에서 이단에 빠진 자는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 죄를 짓는 자들, 의도적으로 바른 교훈을 받아드리지 않는 자들이라고 했고, 고후 11: 4, 15에서는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여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성령이 아닌 다른 영을 받게 하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사도요한은 요일 2: 19에서 적그리스도와 이단들은 원래 우리에게 속했던 자들이었다가 우리에게서 나간 자들(They went out from us)이라고 했으며, 계 2: 16에서는 “주님이 속히 임하여 그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울 것이라”고 했고, 베드로는 벧후 2; 1에서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피로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한 자들이라’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께로 난 Born-Again Christian 거듭난 성도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짓지 않고, 이단에 빠지는 죄를 짓지 않는다.

⑵ 둘째로, “믿는 자는 계속 반복되는 범죄나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범죄치 않는다’는 말의 헬라어 우크 하마르타네이는 현재에도 계속되는 동작을 나타내는 현재시상이니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는 하나님께로 난 자, 거듭난 성도는 같은 죄를 습관적으로 상습적으로 반복해 짓지 않는다는 말이다. 두 가지 해석 모두 타당성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로 하나님께로 난 성도와 주의 종은 ① 성령님의 거룩한 역사를 사단의 역사로 모독하고 거역하며 훼방하는 죄를 짓지 않고 ② 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예수님의 보혈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종교다원주의와 WCC와 Post-modernism과 각종 이단에 빠질 수가 없으며 ③ 같은 죄를 반복하는 습관적인 죄나 범죄에 탐닉하는 상습적인 죄에 빠질 수가 없다. 한두 번 실수하고 죄를 지어 주일을 지키지 않고, 십일조를 도적질하며, 이웃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게으름에 빠져 주의 일을 등한히 할 수는 있지만, 같은 죄를 3개월 6개월 1년 2년을 계속해 짓거나 같은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He who was born of God keeps him and the evil one does not touch him)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 난 자들을 호 겐네데이스 에크 투 데우,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예수님이 지키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빛이신 예수님이 그들을 지키시기 때문에 죄와 어둠에 오래 동안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만일 예수님을 떠나 빛을 떠난 생활이 길어지고, 성전을 떠난 시간이 길어져 자기가 입었던 영의 옷이 더러워진다면(계 3: 4-5),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듯 그 영혼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다.

예수님이 성도를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지식(요 17: 12, 벧전 1: 5, 유 1; 24)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영불변의 참지식이다. 그래서 성도들이 반드시 알고 천국에 갈 때까지 기억해야 하는 참지식이다. 그러나 세상 지식은 ‘커피를 마시면 좋다, 커피는 몸에 안 좋다’는 학설처럼, 어제 진리가 오늘 거짓이 되고, 어제 거짓이 오늘 진리가 되듯, 언제라도 변할 수 있기에 참지식이 아니고 그래서 우리를 영원토록 지킬 능력이 없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예수님의 보호와 지키심으로 사망에 이르는 어떤 죄도 범치 않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2.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다는 지식

19절 말씀처럼, 하나님께로 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께 속해 있지만 The whole world lies in the wicked one(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놓여 있다)는 지식이다. 본문에서 요한이 말한 세상(世上)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단마귀의 세력권 안에 있는 시공간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데 성경에 289번이나 기록된 세상도 대부분 사단의 세력권에 있는 세상을 가리켰다. 그렇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등진 하나님 없는 이 세상은 악한 자, 사단마귀에게 속했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 세상을 이기고 산다는 것은 평범한 종교생활이 아니고 죽느냐 사느냐의 치열한 영적전투에서 이기고 살아남는 것이다.
사단이 지배하는 이 세상은 요일 2: 16대로 세 가지 종류(3 classes of things of the world system)의 조직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로 구성돼있다 ⑴ 육신의 정욕(The lust of the flesh)은 갈 5: 19-21의 고발처럼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 분쟁과 시기와 분내는 것,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 육신으로 저지르는 윤리적인 불결함과 육체적 행동과 마음속에 온갖 추악하고 더러운 욕망들이다.

⑵ 안목의 정욕(The lust of the eyes)은 ① 눈으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고 음탕한 생각을 갖는 욕망(Lust for women; 마 5: 28, 욥 31; 1) ② 동성이나 이성의 분간 없이 음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욕의 눈(Eyes full of adultery-even men with men and women with women; 벧후 2: 14, 롬 1: 18-28) ③ 더 많이 소유하려는 탐심이 가득한 눈(Covetousness: 시 10: 8, 눅 12; 15) ④ All things desired(보는 것마다 갖고 싶고 해보고 싶어 하는 욕망: 전 2: 10) ⑤ 눈으로 보고 화려함과 웅장함에 압도돼 우상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Idol worship: 겔 6: 9, 18: 6-15) ⑥ 눈으로 보고 짓는 육적, 영적인 모든 종류의 악(All kinds evil: 마 6: 23, 7: 22)들이다.

⑶ 이생의 자랑(The pride of life)은 ① 스스로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고 자랑하는 Self-righteousness; 욥 32; 1) ② 자신의 지위를 앞세우는 명예욕(Positions; 창 3; 5, 겔 28; 11-17, 딤전 3: 6, 요삼 9) ③ 자기 힘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세력과 권세(Power; 레 26: 19) ④ 돈 많고 부요함을 자랑하는 것(Riches; 시 39: 6, 겔 28: 5) ⑤ 자기의 미모와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Beauty; 겔 28: 11, 17) ⑥ 나라마다 열병식과 군사퍼레이드와 무기실험을 통해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것(Strength to war; 대하 26: 14 -15) ⑦ 자신의 부끄러운 성적방종과 인생을 즐긴 쾌락과 인생의 헛된 모든 것을 끊임없이 무용담처럼 자랑하는 것(Constant vaunting one's self-glorifying in sex activity, pleasures and all the vanity of life; 요일 2: 15, 시 24: 4, 36: 2, 사 3: 16)들이다.

사단이 지배하는 이 세상, 사단의 통치를 받는 이 세상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지구의 이편저편, 이 세상 어디에서도 정직한 사람과 거룩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고 의로운 사람과 진실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선임 통치자가 부정부패로 타락했다고 몰아내고 많은 사람이 추종하는 청백리를 후임으로 세웠지만, 몇 년 후 알고 보면 후임자는 선임자보다 더 타락하고 부패한 지도자로 낙인이 찍혀 버림을 받는다. 국가마다 고급공무원에서 말단직원까지 부정을 멀리한 정직한 사람 찾기가 힘들고, 나라의 최고지도자들과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종교지도자들 심지어 그 시대 최고의 양심인 성직자들까지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은 세상이다.
그러나 시대마다 하나님께 속한 믿음의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자기시대에 어둠을 물리쳐 파쇄하고 영롱한 빛을 비추었고, 지금도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 칠흑의 밤을 영롱하고 강렬한 영의 빛으로 비추고 있다. 요일 5: 4-5에서 사도요한은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For whatever is born of God overcomes the world)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This is the victory that has overcome the world, even our faith)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Who is the one who overcomes the world, but he who believe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라고 담대하게 선언했다.

그렇다. 예수께서 하나님아들이심을 믿는 자,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Born -Again Christian, 성령을 충만하게 받는 성도만이 이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히 11: 38에서는 수십 명 믿음의 용장들을 설명한 후, Men of whom the world was not worthy(“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 역사무대에 등장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세상을 이겼고, 세상이 그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믿음이 없는 사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세상이 그들을 이겨서 삼키고, 세상이 그들을 감당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하나같이 세상을 뛰어넘고 자기를 뛰어넘는 세상이 그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믿음의 선조 아벨은 믿음으로 드린 예배를 통해 세상을 이겼다. 에녹은 아들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심판신앙의 메시지를 들은 후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세상을 이겼다. 노아는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를 듣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 방주를 지으므로 세상을 이겼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순종했고 사라는 자기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을 미쁘신 분으로 믿음을 간직했을 때 세상을 이긴 자가 됐다. 믿음으로 이삭과 야곱과 요셉은 장차 될 일을 미리 입으로 말하고 감사하므로 세상을 이긴 자들이 됐고, 아므람과 요게벳 부부는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겼고, 모세는 하나님의 상급과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겼다. 그리고 여호수아, 기생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과 기라성 같은 선지자들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사람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 됐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Faith comes from hearing)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Hearing by the word of Christ; 롬 10: 17)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절대적인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듣고 배우고 연구함으로 강한 믿음, 거룩한 믿음,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죄와 유혹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이기는 사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을 넉넉히 이기고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세상이 두 손을 드는, 세상이 정복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참된 자, 하나님을 알게 하신 지식

20절 상반을 본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이라”(And we know that the Son of God has come, and has given us an understanding, that we may know Him who is true)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The Son of God has come)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성육신”을 가리킨다. 요 1: 18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獨生)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하신대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통해 인류가 참된 자, 하나님을 알게 됐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지구촌에 육신을 입고 오신 성육신이 참된 자, 하나님을 인류에게 알게 한 역사적인 사건이라면, 예수님이 개인의 성육신사건이 돼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주고 체험케 해주는 놀라운 기적은 개인적인 사건이다. 그래서 사람이 참된 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무리 꾸러미에 열쇠들이 많이 매달려 있어도 자물통에 맞는 열쇠라야 비밀보고를 열 수 있듯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열쇠는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가 성육신으로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신 예수님뿐이다. 그래서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인류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시려고 성육신하여 세상에 오셨다가 갈보리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 외에는 지구촌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이 없다. 어떤 탁월한 정치가도, 뛰어난 성현군자도, 어떤 영도자 통치자 성자도 구원의 길과 진리와 생명은 아니다. 하나님을 지구촌 유일무이의 참된 자(Who is true)로 알게 하신 예수님을 생명처럼 사랑하고 목숨을 다해 섬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지식

20절 하반을 보자.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We are in Him who is true, even in His Son Jesus Christ. This is the true God and eternal life) 우리가 예수 안에 있다는 지식은 영원한 진리이고 성도들이 영원토록 천국에 들어가서도 기억해야할 참지식이다. 그리고 그분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고 영생이라는 지식이다.

예수님은 요 15; 7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If you abide in Me and My words abide in you)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내게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Ask whatever you wish, and it shall be done for you)”고 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소원하는 무엇이든지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특권을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이 문제해결과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실수가 아니라 여러분의 불신앙과 게으름, 말씀을 거역한 불순종과 기도하지 않은 불성실함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짧은 48년 목회에서 나는 기도응답을 많이 받은 목사 중 한 사람이l이다. 나의 기도응답 중에는 특히 이뤄지기 힘든 불가능했던 것들이 응답된 것이 많다. 태생적으로 어눌했던 말더듬이가 설교자가 된 것에서, 41년 전 당시로썬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기적적으로 미국비자를 받아 ‘약속의 땅’ 미국을 밟은 것, 내 짧은 실력으로는 불가능했던 7년 반 동안의 미국공부를 마친 것...말씀의 오묘한 비밀들을 깨닫게 된 것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스펙터클하고 스릴 넘치게 응답될 나의 미래들은 주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셨기 때문이었고, 말씀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특히 앞으로 남은여생에서의 내 사명과 기도의 응답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66권 1,189장 31,102절의 하나님말씀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능히 모두 이뤄질 줄을 믿는다. 주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고, 주의 말씀이 당신 안에 있으므로 현재의 모든 문제들과 미래의 문제들이 기도응답으로 해결되기를 축원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로 난 자는 범죄치 않는 다’는 만고불변의 지식과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고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있다’는 확실한 지식과 ‘예수께서 우리로 참된 자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는 영의 지식과 ‘우리는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신 예수 안에 있다’는 영원불변의 참 지식을 소유한 성도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는 것”이다.

요한 당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죄를 지어도 영생을 얻는다’는 영지주의 이단이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의 신앙을 혼잡하게 했었다. 오늘 ‘예수 외에도,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Post- Modernism의 종교다원주의와 Positive Thinking과 초월명상으로 ‘나도 신이 될 수 있고,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적그리스도의 우상숭배 사상들이 땅거미처럼 지구촌을 덮어오는 때에 우상숭배를 멀리하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Avoid idolatry, false gods, and have no idols in your hearts and lives. Love God first and last!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 마지막 주의’로 목숨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 영생을 누리는 축복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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