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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이들(벧전1:1절)

09/24/19       박동식 목사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이들(벧전1:1절)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이들(벧전1:1)

 

베드로전서 1장의 전체 그림은 간단하다. 베드로는 박해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태초 전부터 택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셨기에 시련이 닥치더라도 주님의 말씀 붙잡고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신앙을 지킬 것을 권면한다

 

베드로전서는 사도 베드로가본도, 갈라디아, 갑다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1) 쓴 편지다. 이 지역들은 지금의 터키 지역이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본토에 있지 못하고 이렇게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추방되어 살아가게 된 이유는, 네로 황제가로마 대화재 사건’(64)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고, 정국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박해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우리처럼 이렇게 편하게 믿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목숨을 건 행위였기에 박해를 피해서 살아야 했다. 참고로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순교를 당한 이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안디옥의 주교 이그나티우스(110), 폴리캅(156), 유스티누스(165), 오리게네스(254), 키프리아누스(258).

 

  2016 4월 이탈리아에서 선교사님들과 목사님들이 전 세계적으로 네트웍을 형성하고 있는목회성경 연구원성경세미나가 있어서 가르치고 있는 학교를 소개하고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간 적이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로마에 있는 San Callisto 카타콤(지하 20m; 66ft 그리고 총 길이가 20km; 12.4mi)에 들렀다. 안내자 없이 들어갔다가는 나오지도 못하는 그런 곳이었다. 믿음의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서 땅 밑에 길을 내고 거기에 주거 공간도 만들고 공공시설도 만들고 심지어 무덤도 만들어서 죽은 이들을 장사지내면서 그렇게 공동생활을 했다. 그들이 살았던 곳을 일부 구간만 보았는데도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을지 조금은 실감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함께 모여 살았기에 그들의 신앙이 어찌 관념적 신앙이었을까. 매일 매일 하나님을 찬양하고 고백하고 기도하는 생활이 절절했을 것이다

 

카타콤에서 어느 순교한 여인의 모습이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여인은 자리에 비스듬히 누워서 얼굴은 바닥을 향해있고 머리카락으로는 그 얼굴을 가린 채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만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오른손은 손가락 세 개를 펴고 있고 왼손은 손가락 하나를 펴고 있었다. 무엇을 상징하는가?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장면이었다. 죽으면서까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었고 그 고백을 밖으로 나타내기 위해 취했던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의 신앙을 돌아본 적이 있다

 

그녀의 손가락 표현은 무언의 신앙고백 아닌가? 그리고 무언의 저항 아닌가? 아니 목숨을 건 신앙고백과 목숨을 건 저항 아닌가? 자신은 죽을지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을 드러내고 살았던 그 신앙 우리도 이어받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고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값싼 신앙의 결과가 아니라 정말로 값비싼 신앙의 결과이기에 그 신앙 이어받아야 한다. 예수 믿으면세상 복 받고 산다는 값싼 신앙이 아니라, 그런 세상 복 없더라도 그런 부귀영화 없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너무나 크기에 환란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죽기까지 자기 십자가 지고 가면서 신앙을 지키는 값비싼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리디머 교회 설립자인 팀 켈러 목사님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하나님은고난과 상관없이가 아니라고난을 통해서온전한 기쁨을 주셨하나님은십자가를 지는 고통과 상관없이가 아니라그 아픔을 통해서인류를 구원해 주셨다.”고 강조한다. 고난을 통해 맛보는 삶의 기쁨이 있다. 이것은 고난과 박해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참된 신앙, 살아 있는 신앙을 경험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순교를 강요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순교를 강요받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에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강요해야 하는 것은, 다시 말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붙여서 물어야 하는 것은, ‘나는 예수님을 정말로 바르게 믿고있는가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주님을 믿고 있는가?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그 신앙을 우리는 지키고 있는가, 그 신앙을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있는가 말이다. 초기교회 성도들이 목숨 바쳐 지켰던 그 신앙 때문에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신앙생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사실 우린 너무 편하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이렇게도 편해도 되는가 말이다. 이렇게도 편한 신앙생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줘도 되는가 말이다. 우리가 물려줘야 할 것은 편한 신앙생활이 아니라진리를 추구하는신앙생활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에 설령 어떠한 고난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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