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몸이 아프면 고통스러워진다. 왜 그럴까. 몸이 아프다는 건, 몸에 통증과 고통이 있다는 거다. 고통. 한마디로 듣기 싫은 말 중의 하나다. 그러나 몸이건 정신이건 고통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엔 아무도 없다. 어느 종교에선 태어남 그 자체를 고(苦), 즉, 고통(苦痛)이라 한다. 고통을 받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다. 사람은 살아 있는 한, 고통과 친구를 해야 한다. 너무 살아가기가 고통스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살아있음이 너무 고통스러워 안락사를 택하는 사람들.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죽음을 택해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받아야만 할까. 그렇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고통을 벗삼아 살아가야만 한다.
생명경외(生命敬畏).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거다. 생명경외는 하늘의 뜻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생명을 귀하게여기며 동시에 가장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존재가 있다. 사람이다. 동물이나 식물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동물들. 그들은 그 어떤 고통이 다가와도 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다. 동물의 세계에선 안락사도 자살도 없다.
식물의 세계는 어떤가. 동물들은 고통이 있으면 소리를 지르거나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식물의 경우는 반응도없다. 톱으로 살아 있는 나무를 잘라도 나무는 무반응이다. 그렇지만 그 나무가 고통을 진정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고통이 없어 보이지만 식물 그 자체는 식물대로 고통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채식주의자인 어떤 사람이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굶어야만 할까. 사람의 의식엔 동물이나 식물은 먹을거리로 각인돼 있다.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식물이 채집되는 과정에서 고통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먹을 수 있나. 다행한 것은 사람의 과학으로는 아직은 식물의 고통에 대해선 확인된 것이별로 없다. 그래서 사람은 식물로 만들어지는 음식물에 대해선 죄책감 같은 걸 느끼지 않고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동물로 만들어진 음식물 섭취는 어떤가. 동물의 고통은 그들이 죽을 때, 우리의 눈과 감각으로도 알 수 있다. 식물은 피를 흘리지 않지만 동물은 피를 흘린다. 동물의 죽어가는 과정엔 반드시 피가 흘려진다. 그런데 그피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은 생명경외를 외친다. 그러나 동식물의 생명은 제외된다. 사람의 먹을거리로 생각되는 그들의 생명. 사람의 입 속에 들어가기 위해 죽어가는 동식물들. 그들의 고통은 사람에겐 의미가 없다. 사람은 식물과 동물의 죽음 후에 만들어진 음식을 맛있게 먹고 살아야만 한다, 자연의 먹이사슬 피라미드에서 사람은 최고의 위치를 차지한다. 사람이 몸이 아파서 고통을 줄이기 위해 먹는 약들. 약으로 만들어지는 것에는 식물과 동물에서 추출된성분들이 대부분이다. 약뿐인가. 사람이 먹고 영양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음식물은 또 어떤가. 어쩌면 사람이란, 동물과 식물의 죽어가는 고통의 즙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받아야 하는 고통은 그보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동물과 식물의 고통을 생각하면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할 길이 막막해 진다. 사람이 동물과 식물을 먹이로 삼지않으면 무얼 먹고 생명을 유지해야 하나. 방법이 없다. 동물과 식물이 사람의 생명유지를 위해 희생돼야 함은그들의 타고난 운명(?) 혹은 자연법칙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걸까. 자연법칙. 그래 그게 좋겠다. 동식물이 자연이 가지고 있는 먹이사슬에서 사람을 위한 먹이로 이용되는것. 그걸로 죄의식을 느낀다면 사람은 물과 공기만 마시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는 살지 못한다. 자연법칙이다. 그런데 자연법칙은 누가 만들었을까. 사람만이 최고의 존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의 특권인가.
사람이 가지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생명으로 태어난 존재의 보상이다. 그런 보상 없이 살아가려는 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음을 그리워해야 한다. 사람은 병이 들면 우선 아프다. 아픔은 고통이다. 그래서 병을 치유하려고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그래도 병을 못 고치면 마지막 관문은 단 하나다. 죽음이다. 살아 숨 쉬는사람은 고통을 벗으로 삼아 함께 살아갈 줄 알아야 현명한 존재다.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고통이 심화될 수 있다. 육체적 고통은 정신적 고통을 유발한다. 반면, 정신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을 유발할 수도 있다. 공포감이 고통으로 변질된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우주에서 가장 귀한 생명의 존재는 누구일까. 신일까, 사람일까. ‘사람이 신을 만들었다’고 니체가 말했던가. 그러나 우주와 자연과 사람을 이끌어가고 있는 보이지 아니하는 큰 손이 있다. 그 손은 우주와 사람의 역사와 생명을 주관해 간다. 사람이
페이팔로 후원하기
![]() ![]() |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