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말 없는 것이 미덕인 것으로 배우고 자랐습니다. 성경도 말로 인한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 할 만큼 말과 그 사람의 인격, 말과 그 사람의신앙과는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상대를 존중해 주는 말, 배려해주는 말투를 가진 사람과 상대를 함부로 대하고위 아래 할 것 없이 반말부터 내뱉는 사람과는 벌써 그 묻어나는 인격이 다른 것입니다. 말 없이 가만히 있을 때는 한 90점주겠다 싶다가도 입을 열기 시작하면 ‘저 사람 한 40점짜리구먼’하고는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단숨에 되어 버립니다. 물론, 이렇게 성급히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잘못일 것입니다만 연세 지긋하신 어른이 젊은청년을 대하면서도 공손히 존대를 해 주는 것은 옆에서 듣기에도 참으로 흐뭇한 일입니다.
이렇게 말로 인한 오해, 말로 인한 상처, 말에서 자신의 인격과 신앙이 드러나고 하는 부분 때문인지 우리는 말을 아끼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합니다. 깊이 영성 훈련을 하시는 분들이 침묵 훈련을 하시는 것을 보아도 말을아끼는 것에는 많은 유익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면서 할 말은 좀 하고 살자는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말이 문제가 되는 것은 ‘마음 없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 없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말없는 마음’이 최고지. 마음이 중요하지 말이 뭐가 중요하냐며 마음의 표현을 밖으로 해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은 오해와 상처를 불러 일으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평생 말로 표현 한번 못한다면 아내는 안 그런 것 같아도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랑해!’라는 표현이 늘 쑥스럽고 닭살 돋아서 한 번도 하지 못한다면 특히, 북미 문화권에서 자라는 우리 자녀들은 우리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음 없는 말’도 문제고 ‘말없는 마음’ 도 문제입니다.
좋은 것은 ‘마음 담긴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생뚱맞을 수는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저 사람, 오늘 왜 저래?”하는 소리를 혹 들을 수도 있겠습니다. 혹 닭살이 확 돋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평소 안 그러다 그러니 오히려 진심이 왜곡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마음 담긴 말’을 한번 서로에게 해 보시면 어떨까요?
“여보, 고마워. 나 같은 사람하고 살아줘서…”
“아들아, 고맙구나. 그동안 아빠가 너에게 신경 많이 써주지 못했지? 미안하다.”
“아빠, 엄마, 고맙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계셔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순장님, 그동안 늘 받기만 하고 당연히 여겼네요.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장로님, 권사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늘 애쓰시는 모습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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