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정해 놓고 걷기 시작한 지 벌써 4년째입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만보’ 걸으면 좋다고 해서 만보를 목표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만보를 걷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거나 뭔가 핑계를 댈만한 것이 있으면 걷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첫 해 통계를 보았더니 1월과 8월에 걸음걸이가현저하게 낮았습니다. 하루 평균도 7000보 정도였습니다. 좋아서 걸었다기보다는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억지로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 해 하루 평균이 11,000보를 넘었고, 요즘은 하루 평균 17,000보 정도 됩니다. 걷기 시작할 때 잠깐 드는 싫은 마음도 마음도 많이 줄었습니다.
걸으면서 느끼는 감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기억이 별로 없는데 걷는 것이 감사거리가 됐습니다. 특별히 허드슨 강을 따라 걷다가 드넓게 펼쳐진 대서양이 눈에 들어 오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습니다. 얼굴을 따끔거리게 하는 차가운 바람도, 몸을 움츠리게 하는 추위도, 비를 맞아 옷이 눅눅해져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그 쾌감이 특별합니다. 뭔가 살아 있다는 느낌, 내가 가야할 길을 가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걸을 때에는 아주 세세한 것까지 눈에 들어들어옵니다. 또 늘 같은 시간에 걷다 보니 같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제는 그냥 지칠 수 없어 가볍게 인사를건네게 된 사람도 몇 있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건넬 때 마다 나도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티벳 말로 ‘사람’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티벳 사람들은 사람을 걷는 특징이 있는존재로 인식한 듯합니다. 스스로 걸으면서 누군가에게 의존되거나 속한 자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 책임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걸을 수 없는 사람은 누군가에 혹은 무엇인가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에 비유하자면 날개를 펴서 푸른 창공을 마음껏 날아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푸른 하늘을 마음껏날며 자유를 만끽하는 새처럼, 오늘 걷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풍성하게 하듯, 걷는 것은 나를 풍성하게 하는 존재의 광합성 작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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