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두 아들이 고교 시절에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로서 선언한 말이 있었다.
“너희 아빠는 부자가 아니니 대학 등록금을 너희가 감당하여야 한다. 그러니 알아서whole scholaship 주는 대학을 가거나 아니면 student loan을 내서 너희가 나중에 갚아라.그 대신 아빠는 기숙사비를 내주겠다.“
그런 연고로 큰 아들은 whole scholarship을 받고 시카고로 갔고 둘째는 New Orleans로 가서 대학을 졸업했다.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잘 한 일이라 생각했던 결정이 대학 후에는 두 아들이 뉴욕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살게 되어 ( 둘째는 그나마 Baltimore) 필자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약간의 후회가 되어지는 일이 되었다.
큰아들을 보기위해 시카고는 작년에 한번 방문한 일이 있었지만 둘째가 있는 Baltimore는 차로 3시간 거리이기에 가끔 방문했었고 특히 아내는 가기 이틀전부터 온갖 반찬과 요리를 준비하여 아이스박스 한가득 엄마의 사랑을 담아 날라주고는 했었다.
그런데 코비사태가 벌어지고는 재택근무로 인해 게을러진 둘째가 샤핑도 대강대강, 식사 준비도 대강대강 하고 있음을 전화 통화로 간파한 아내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이 되었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에는 둘째애에 관한 한마디로 대화가 끝나버리니 필자는 무언가 조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궁리 끝에 찾아낸 것이 우체국에서 서비스하는 종류중에 SMALL FLAT RATE BOX 라는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우체국에서 박스를 갖다가 집에서 내용물을 채워 넣으면 무게에 상관없이 크기에 따라 요금이 정해지는데 필자는 가장 작은 박스를 사용했고 그 요금이 8불 30전이었다.
아내는 콧노래를 부르며 사온 무를 자르고 양념을 버무르더니 깍두기를 완성했다. 그래서 혹시 냄새 날까봐 비닐 봉투에 겹겹이 포장하여 큰애, 작은애 주소를 적어 빌송했다. 그런데 Baltimore는 3일 후에 도착했는데 시카고는 멀어서인지 아직 도착했다는 연락이 없었고 아내는 “ 혹시 깍두기가 너무 익어 밀봉 봉투안에서 가스가 발생해서 냄새가 나거나 터지면 어떻게 하지”하며 급기야는 기도까지 하는게 아닌가. 다행히 그 다음날 큰 애에게서 박스가 도착했고 맛있게 먹고 있다는 전화에 아내는 행복한 얼굴로 다음 메뉴를 생각하는 중이다.
코비 사태가 우리의 일상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켰다. 그래도 잘 살펴보면 그 와중에도 우리는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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