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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가진 자와 믿음이 없는 자의 차이

08/28/20       김명욱목사

믿음을 가진 자와 믿음이 없는 자의 차이


신앙을 가진 자와 신앙을 가지지 않은 자의 비교는 위기를 맞았을  가장 극명하게   있다. 아니, 나타난다.  객관적으로  수도 있다. 신앙이란  믿음이다. 믿음이란 의지의 대상을 향한 바램이다. 바램은기도다. 그러니 신앙인이란 믿는 자를 말한다. 반대로  신앙인은 믿지 않는 자를 말한다. 믿는 자는 반드시 대상이 있다.

아기는 젖을 주고 재워주는 엄마를 찾는다. 이런 아기에게 있어서는 엄마가 믿음의 대상이다. 아기에게서신앙이란 말은 그리 적합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아기가 엄마를 믿고 따르며 엄마가 젖을 주리라는 것을 바래서 우는 것이, 어른들의 용어로는  신앙이라 불릴  있다. 아기에게는 자기를 낳아  엄마가 작은창조자가 되기도 한다. 

예를 하나 들어 본다.    낭떠러지 벼랑 사이에 아기와 엄마가 서로 떨어져 있다 하자.   엄마가아기를 향해 팔을 벌리면 아기가 올까  올까.  번이면   , 아기는 엄마를 향해 온다. 엄마의 품에안기려 한다. 이건 맹목적이 아니다. 아기가 가지고 있는 엄마에 대한 믿음이 낭떠러지보다  깊기 때문에생기는 현상이다. 

아기는 낭떠러지 같은   일도 없겠지만, 아기의 믿음은 순수하다. 의심이 없다. 100% 엄마를 믿는다. 아기의 마음엔 엄마의 얼굴만 보인다. 빨리 엄마의 품에 안기려 한다. 그렇다면 아기가 당신이고 엄마가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이    낭떠러지에서 당신을 향해 손을 벌리고 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안에 안기겠는가. 

신앙과 믿음이 있는 자는 안길 것이요,  신앙인은 안기지 못할 거다. 아니, 안기지 못하는 거가 아니라 아예 그런 엄마 같은 하나님은 존재하지도 않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신앙인이란 믿음의 대상이 없기에 그렇다. 아무리  신앙인이라 해도 자신을 믿음의 대상으로 믿는 사람들은 있다. 이들은 자신이 자신에게 신앙의 대상이 된다.

요즘과 같은 코로나19 판치고 있는 팬데믹 상황에서는 자신이 자신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생각해  문제다.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정말 어려운 질문일  있다. 자신이 자신에게 신적인 존재다. 그래서 신적인 자신을 믿음과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양성 확진이 나왔다면.

 신앙인에게의 소망이란  한정돼 있다. 자신이 자신을 믿든,  신앙인에겐 한계가 있으니, 인간의 한계다. 이것이  신앙인의 미래에 대한 한정된 단계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의 소망은 한정이 없다. 끝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에게의 한정은 하나님의 세계가 지닌 한계가 바로 신앙인의 한정된 단계이기에 그럴  있다. 

하나님에게서는 끝이 없다. 한정 이란  자체가 필요 없다. 하나님은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시고 온갖 동식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이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만드시고, 시간과 공간의 역사 안에서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삶과 죽음도 주관하신다. 지구와 태양과 별과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기댈 곳이 있는 자는 서럽지 않다. 두렵지 않다. 하물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에게 기대는 자가 무슨 서러울 것이 있겠나.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을까. 믿음의 차이다. 아기가 엄마를 믿듯. 당신이 하나님을 100% 믿는다면 당신은 두려움도 떨림도 없는, 팬데믹 속에서도 은혜 속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은총의 복된 자녀가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한 미래에 대한 소망은  확실해 진다. 믿는 자만이 살아남을  있다는 확신이다. 삶과 죽음과 영혼과 의식의 세계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죽은  어떠랴. 죽어도 하나님의 품에안기게 되니 무슨 서러움이 있을까. 신앙의 차이다. 창조주를 믿는 믿음이 우리의 신앙이라면 하루하루 은혜의 삶에 감사드려야 한다. 

위기 속에서도 감사할  아는 믿음. 이게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다. 위기가 왔다고 불평불만에 조상과 조상의 묘까지 들먹이는 사람들. ,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오는가? 아니다. 시련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온다. 다만, 시련과 위기가  ,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냐 하는 것에 하나님을 기대고 믿는 자와  신앙인과의 차이가 나타난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오히려 감사해 했다. 바울은 예수로부터 받은 거듭남의 참된 복음을 증거 하려 로마에 가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가.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하나님의 소망을 잊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세계화로 나타난 증거다. 팬데믹 속에서도, 믿는 자는 영원히 복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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