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새벽부터 비가 계속 왔다. 예배시간에도 비는 계속 내렸고 예배가 끝난 후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예배가 끝난 후 아래층 지하 식당을 내려가 보니 물이 차오르는 것이었다. 당연히 오늘은 식사를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성도들이 서둘러 교회를 빠져나갔고 나 역시 교회 밴으로 성도들을 집까지 라이드해 주는 일을 하고 교회로 돌아왔다.
계속된 비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역류하면서 교회 지하는 완전히 물에 잠기고 말았다. 교회로 돌아온 나는 어디서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대책이 안 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도대체 이렇게 물이 차오르는 모습을 보고도 누구 하나 함께 해결하려는 성도가 없다는 섭섭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언젠가 비즈니스를 하는 집사님이 하는 말이 기억난다. “종업원들이요? 다 똑같습니다. 제 할 일만 하면 끝입니다. 딱 주급 준만큼만 일합니다.”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성도들은 교회에 대해서 딱 할 만큼만 한다. 교회 와서 예배 드리고 헌금 내면 내 할 도리 다 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식사 준비해 오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최고의 봉사라고 여긴다. 그 외에는 신경 안 쓴다,
그러면서 오히려 왜 오늘은 국을 준비하지 못했냐고 사모를 나무라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교회가 지저분해요. 누가 청소 좀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한다. 아니, 누구더러 청소를 하라는 말인가?
교회에 물이 들어와도, 교회 화단에 꽃 하나 심을 줄 모르면서, 말은 주인이다. 교회는 우리 것이고 목사와 사모는 관리인으로 채용된 종업원이 된 셈이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반은 4분단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각 분단에는 분단장이 있었는데 그때 유일하게 분단장을 한 것이 나에게는 큰 자랑거리였다. 각 분단이 해야 할 가장 중대사한 사업은 청소하는 일이었다. 분단마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돌아오는 방과후 청소는 우리가 해야 할 중노동이었다고 생각된다.
건물 바깥쪽 유리 닦기, 복도 쪽 유리 닦기, 빗자루로 바닥 쓸기, 칠판지우개 털기, 복도에 걸레질하기, 책상을 정확하게 정렬하여 맞춰놓기를 하면 청소는 끝난다. 그럼 최종적으로 분단장인 내가 점검을 하고 담임 선생님에게 끝났다는 보고를 하고 돌아와 종결되었음을 선포하면 우리 분단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손이 안 닫은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학교를 깨끗하게 유지시켰다. 그렇게 6년, 졸업식 때 난 펑펑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기억에는 없지만 그 동안 갈고 닦은 학교 교실, 늘 밟고 다니던 운동장을 떠난다는 것이 마치 내 집을 떠나는 것 같은 아쉬움이 그 어린 시절 눈물 속에 배어 있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교회도 똑같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어린시절 교회 건축을 한다고 벽돌, 나무판자를 나르고 벽에 칠하고 천정에 올라가 못질을 하면서 세워진 교회가 우리 교회였다. 더욱이 교회 청소는 우리 학생회에서 맡아서 했던 그 고향 같은 교회가 왜 그리울까? 바로 내 땀과 수고가 곁들여져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런데 오늘날 주객이 전도된 교회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물론 모든 성도나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이민교회를 보면 많은 성도들이 내 교회라는 의식이 매우 약하다.
요즘 성도들은 교회에서 내 할 도리만 하면 된다는 의식이 결국은 돈으로 귀결된다.
물론 바쁜 이민 생활 속에서 누가 시간을 내어 교회 와 청소하고, 교회 와서 봉사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교회 건물 벽에 서린 곰팡이를 제거할까? “돈 낼 테니 사람 써요.” 그게 성도들의 가장 보편적인 해결책이다.
하지만 그렇게 돈이라도 내서 해결을 하려는 성도가 없는 교회는 그 몫은 다 목사와 사모가 알아서 해야 한다. 목사와 사모는 교회 건물 관리인이기에 여름에는 에어컨 잘 틀어 놓고 겨울에는 온풍기 잘 조절해 놓고, 교회 청소, 화장실 청소는 기본이고 눈이 오면 주일예배 준비하다 양복입고 밖에 나가 눈 맞으면서 눈을 치워야 하는 게 이민교회 목사 실태이기에 교회는 목사와 사모의 땀만이 묻어 있는 교회가 부지기수이다.
교회는 섬기는 곳이라고 했는데 누가 누구를 섬겨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헌금, 십일조 했으니까 나머지는 목사님이 알아서 하세요.
돈을 내었으니 교회는 목사가 관리해야 하고 돈을 낸 성도는 목사가 제대로 일을 못하면 왜 교회가 이 모양이냐고 한다면 누가 누구를 섬기는 것이 되는 것인가?
하나님께 드렸다는 헌금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 목사를 교회 관리인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더욱이 교인들 병원이나 메디케이드 인터뷰에 통역을 해 주고, 공항 라이드나 픽업해 주고, 교회 잘 오도록 집 앞에 가서 데려오고 집 앞에까지 데려다 주는 종업원 목사를 보고 섬김의 목사라고 부르는 이 잘못된 시각은 이제는 고쳐져야 할 때가 아닌가 본다.
당신은 지금 ‘섬김’이라는 교회 질서를 거꾸로 사용하면서 드려진 헌금으로 주인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기를 촉구해 본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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