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들이 있어서 교협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뉴욕교회협의회 제46회기 총대의 한 사람으로 정기총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최근 교협 총회 선거를 앞두고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지난 해까지는 최근 3년간 총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는 교회는 밀린 3년치 총회비를 모두 납부한다 해도 해당연도 총회에는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금년 총회에는 밀린 회비를 모두 납부하면 총회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통상 총회에 60-70여 교회들이 참석하지만 금년에는 그 배가 되는 130여개 교회가 총회에 참석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한편,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여러 교회들의 밀린 회비를 대납해 주고 총회에 와서 투표하도록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총회 석상에서 총회 앞에 질문했다. 총회에 참석하여 자기에게 표를 찍어달라고 회비를 대납해 주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총회에서 결의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만약 이것은 매표행위이자 불법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결정한다면 선거 후에라도 이와 관련한 사실이 드러나면 당선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총회에 참석했던 대부분 총대들은 내가 하는 질문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그것이 무슨 문제냐는 반응이었다.나중에 어떤 증경회장 총대는 이런 질문들이 공연히 문제를 만든다는 듯한 발언을 해서 놀랐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지금까지 이와 관련하여 정식으로 고발된 것이 없어서 문제가 없다고 발언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증거가 없으면 괜찮다는 것이다. 즉,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 내가 한 질문은 증거가 아니라 팩트였다. 걸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총회 중, 투표과정에서 일어난 또 다른 문제는 위임장이었다. 몇 사람의 총대가 위임장을 제출하고 투표를 하려고 했다. 여러 논쟁 끝에 결국 위임장을 낸 총대 중, 3사람만 투표했다. 위임장 관련 논쟁 중, 어떤 목사님은 국민투표와 사무총회(공동의회) 투표를 예로 들며 위임투표는 안된다고 했다. 총대에 대한 상식이 없어서다. 교회협의회는 교회를 회원으로 하는 협의회다.따라서 모든 회원교회 교인들이 전부 총회에 참석해서 결의하거나 투표해야 한다.
하지만 편의상 회원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담임목사) 한 사람과 평신도 한 사람 씩을 총대로 파견하도록 정관(헌법)에 정했다.그렇기 때문에 담임목사가 부득이 총회에 참석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대신 총대로 보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또 총대를 총회 전 사전 등록을 할 경우, 등록했던 총대가 부득이 총회를 참석할 수 없을 경우 목회자 총대든, 평신도 총대든 다른 총대를 대신 보낼 수 있어야 논리적으로 맞다. 필요에 따라 위임장이나 기타 다른 증빙 서류로써 이를 증명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총대들은 목사회와 교협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목사님은 “선거관리를 맡은 회원으로...”라는 서두로 보고를 했다. 교협의 회원은 교회이지 개인이나 총대가 아니다. 또 신입회원 가입승인 시간에는 신규 회원교회를 소개하지 않고목사를 소개했다. 교회이름, 교단, 교회역사, 위치 등등 회원 교회에 대한 소개가 핵심이어야 했다. 이도 회원교회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느껴졌다.
또 다른 이슈는 “모법”에 관한 것이다. 총회나 회의 때 모법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이와 비슷한 법률적 용어로는 “상위법이 하위법에 우선한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국가법에는 주로 헌법 -> 법률 -> 명령(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 조례(지방자치단체) -> 규칙의 순으로 되어 있다. 뉴욕교협은 2단계인 헌법(정관)과 그 아래 시행세칙을 두고 있다. 시행세칙 중 하나인 선거관리세칙은상위법(모법)인 정관(헌법)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총회에서 어떤 총대 목사님들은 헌법에 없는 조항을 세칙에 넣는 것은 잘못이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하위법은 상위법에서 기술하지 못한 것을 상세히 기술함이 목적이다. 교협의 선거세칙은 교협의 정관(헌법)이 기술하지 못한 것을 보충하고자 상세히 기술함이 목적이다. 때문에 당연히 헌법에 없는 것을 세칙 조항에 넣어야 하는 것이다. 하위법이 상위법에 없는 것을 기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위법의 내용을 하위법에서 다르게 기술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예를 들어, 헌법에서는 의결정족수를 재적 2/3라고 적시했는데 선거세칙에서는 과반수로 한다든지, 회장 후보자격과 관하여 헌법에서는 담임목사 경력 5년 이상이라고 한 것을 선거세칙에서는 10년 이상 아니면 3년 이상으로 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실 수 있다. (고전 1:27)"
총회에 참석한 총대 목사님들이 지혜나 지식이 부족하고 상식이 모자라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교양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상식이나 지식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신앙적 교양이 부족하면 마음을 높은데 두거나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게 되는 것이다. (롬 12:16)
뉴욕교협 총회 때마다 왜 사람들이 다투고 서로 불편해질까? 이번 46회기 총회를 지켜보면서 씁쓸한 기분이 든 것은 3무 때문이었다. 돈으로 표를 만드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구분 못하는 도덕적 양심의 부재, 총대가 뭔지, 법이 뭔지 모르는 상식의 부족, 그 부족을 넘어설 수 있는 신앙적 교양이 모자란다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었다고 느꼈다.
총회에서 이 3무는 결코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없다.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이 토론하는 격인 셈이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도덕적 양심, 상식적 판단, 그리고 신앙적 교양을 가지신 목사님들이 몇 분 계셨다는 것이다. 이 분들이 있어서 나는 아직 뉴욕교협의 미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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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개)
19 세기 불란서 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은 “ 모든 시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을 권리가 있다” 라고 했다. 그의 말이 뉴욕의 이민 교회 목회자 와 교인에게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