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 46-56절 12. 27. 15
유엔자료에 의하면 1세기 지구 인구를 3억으로 추산하고 있고, AD(주후) 2년의 중국의 인구를 5,800만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노아홍수 이후 대략 2,000년 동안에 지구촌의 사람이 8명에서 3억으로 증가한 숫자이다. 그렇다면 아담부터 노아홍수까지 1,656년 동안에 천문학적으로 증가한 지구 인구는 역사가들의 추측대로 대략 10억에서 12-3억 정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홍수이전의 인간수명은 전쟁이나 전염병이 없이 좋은 환경에서 7-800세, 900세를 넘게 살면서 자녀들을 낳았으니 인구가 기하급수로 증가했지만, 홍수이후 예수님 탄생까지 대략 2,300여 년 동안에, 짧아진 평균수명과 각종 재해와 전쟁과 질병 등으로 인구증가가 둔화됐음에도 8명에서 3억의 인구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탄생 이후 세계역사가 BC.에서 AD.로 바뀌고 다시 2,000년이 지난 오늘, 지구 인구는 수많은 자연재해와 전쟁과 질병과 악조건 속에서도 기하급수로 증가해 75억을 육박하고 있고 중국의 인구는 2,000년 전과 같이 여전히 지구촌인구 ⅕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이 돌아보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욥 3: 4에서 동방의 의인 욥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셨기 때문”(God regard it from above)이라고 말했고, 한나는 삼상 2; 21에서 자신은 여자로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아이를 날 수 없는 태생적 불임여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권고하사”(The Lord visited me: “여호와께서 나를 돌아보셨기 때문에”) 아이를 낳았다고 고백했다. 그렇다, 당신과 내가 수많은 경쟁을 뚫고 세상에 태어나서 3-40년 50년, 8-90년 100년을 사는 것은 하나님이 돌아보셨기 때문이다.
아무라도 하나님이 돌아보시지 않으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임신 중에 7-8번이나 자연유산을 하여 아이엄마가 되고 싶어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임신이 안 되는 사람도 있으며, 원치 않은 임신으로 뱃속의 아이를 의사의 칼질 가위질로 살인을 해야 하는 사람과 억울하게 말 한마디 못하고 그 처참한 살인을 당해야 하는 태아도 있는데...한국 일본 미국 중국 유럽 등 해마다 지구촌에서 임신중절로 죽는 아이들만도 1,0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며, 또 어렵게 태어났다가 며칠 만에 남의 아이로 입양되는 경우도 있다.
며칠 전 한국에서,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던 개가 비닐봉지에 담겨져서 배고파 울고 있던 핏덩어리 갓난아이를 찾아 낸 것이 뉴스가 됐는데, 다행히 이 아이는 살아났지만, 이렇게 남의 집 앞에, 쓰레기 통해, 화장실에, 산과 들과 개천에 버려졌다가 죽는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우리가 수천만의 경쟁을 뚫고 김씨 이씨 박씨로 태어나고, 부자로 가난한 자로, 남자와 여자로, 흰색 검은색 노랑색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이 돌아보셨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태어난 자신의 인생’을 생명의 호흡이 계속되는 동안, 소중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돌아보심을 받아 수천만의 경쟁을 뚫고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自殺)은 고귀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대적한 죄와 온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인한 죄를 지은 자로, 그런 사람은 죽음 건너편에서 영원한 지옥이 있을 뿐, 어떤 하나님의 긍휼도 없기 때문에 자살은 어떤 이유에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돌아보신 ‘지구촌 출생’을 감사하며 모든 것에 감사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한다.
전능자 야훼의 돌아보심, 성탄
‘돌아보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뒤를 돌이켜 본다”, “살펴보다”는 뜻이지만 성경에 기록된 ‘돌아보는 것’의 헬라어적인 의미는 훨씬 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돌아보다’로 기록된 헬라어는 ⑴ 블레포로, “눈을 돌리다”, “응시하고 직시하다”, “감각에 의해 인식하다”, “생각을 돌이키다”, “심사숙고하여 고려하다”, “이해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심사숙고하여 우리를 향해 생각을 돌이키시고 눈을 돌리셔서 우리 사정을 이해해 주시는 것”을 의미하고 ⑵ 에페이돈으로, “주시하고 주목하다”, “주의 깊게 살피다”, “관심을 두다”의 뜻으로 “무관심하시던 하나님이 마음에 기억하시고 우리를 주시하여 주의 깊게 살피시고 관심을 가져주심”(눅 1; 25, 행 4: 29)을 의미하며 ⑶ 에피스켚토마이로 “하나님이 우리를 방문하여 돌보신다,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세밀하게 보신다”(눅 1: 68)는 뜻이며 ⑷ 스코페오로 “하나님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주시하여 보살핀다, 하나님이 주의 깊게 감시하시고 관찰하여 보살펴 주신다”(눅 1; 35)는 뜻이 있다. 그 외에도 “한 곳을 응시하고 쳐다보신다”는 에피블레포와 “관심을 가지고 돌보신다”의 메림나오 등이 있지만 ‘하나님의 돌아보심’은 “지금까지 외면하셨던 하나님께서 생각을 바꾸어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쳐다보시고 우리를 자상하게 돌봐 주시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돌아보심이 당신이 천국에 들어가 영원토록 돌아봐주시는 때까지 계속되기를 축원한다.
1.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실 때!
욥과 한나의 고백처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돌아보시는 축복역사의 시작으로, 이것은 양의 동서와 극의 남북을 초월해 지구에 태어난 75억 인류 모든 사람이 누구나 받은 보편적인 축복이다. 그렇다면 출생의 보편적인 축복 외에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시고, 우리 가정을 돌아보시며, 내 사업과 내 신앙을 돌아보실 때’ 우리가 받는 특별축복은 어떤 것이 있는가? 하나님이 돌아보시는 Benefit(“이익, 은혜”)은 무엇인가? 나와 당신은 왜 하나님의 돌아보심을 받아야 하는가? 어째서 하나님의 돌아보심이 우리에게 필요한가?
⑴ 기도의 응답
삼상 1: 11, 2: 21에서 한나는 여자로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의 간구를 응답해 달라며 기도했다가 아들 사무엘과 3남 2녀를 더 낳아 6남매의 어미가 되는 축복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시 102: 17에서 시편저자는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고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않았다고(He has not despised their prayer)” 고백했으며, 왕상 8: 28, 대하 6: 19에서 솔로몬은 “나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고 내가 오늘날 주 앞에서 부르짖는 것과 비는 기도를 들어 달라”고 간구하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돌아보실 때, 우리의 기도를 멸시치 않으시고 응답해주신다는 것을 말했다.
그렇다. 만일 우리 기도가 응답이 안 된다면, 그것은 죽은 우상 앞에 정성을 드리고 아무 응답도 받지 못하는 허무맹랑한 짓이나 마찬가지며, 금은동철과 돌로 만든 사신 앞에서 주문을 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헛된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기도응답은 하나님이 우리를 돌아보실 때만 가능하다. 만일, 기도응답을 하시는 하나님이 내(우리) 기도를 외면하거나 멸시한다면 그 기도는 시간만 죽이는 죽은 기도이고, 공치사 염불이고 주문이며, 아무 의미 없는 하소연이고 넋두리일 뿐이다. 당신이 구하는 모든 기도, 자신의 신앙과 건강과 사업과 행복을 위한 기도와 부인과 남편을 위한 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 자녀들의 장래를 위한 기도, 교회와 주의 종과 선교를 위한 당신의 기도들이 야훼하나님께서 돌아보시므로 응답되기를 축원한다.
⑵ 예배의 열납(悅納)
암 5: 22에서 선지자 아모스는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 제사들을 거부하시고 받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Because God did not regard it)이라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의 열납은 하나님이 그 예배를 돌아보실 때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 년, 365일에서 매일 그리는 새벽예배와 수요, 금요일예배와 구역예배를 제외하고 대예배라고 생각하는 52번의 주일예배 중에서 몇 번이나 하나님이 돌아보시는 예배, 하나님이 기쁘게 열납하시는 예배를 드렸을까?
예배(禮拜)는 인간이 신적존재에게 드리는 경배이고 제사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든지 사단마귀 귀신이 받는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일 년에 52번 드린 주일예배는 두 신(神)중 하나, 하나님이 받으셨든지 마귀 귀신이 받았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아무리 많이 드렸어도 하나님이 받지 않은 예배였다면 주일날 교회엔 왔지만 하나님 대신 마귀를 예배한, 마귀가 예배를 받아버린 잘못된 신앙생활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당신이 드린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셨는가, 아니면 마귀에게 빼앗겼는가?
당신이 만일, 예배시간에 늦어서 앞 시간 잘라먹거나 축도 전에 에배를 떠나서 끝 시간 잘라먹고 반 토막 예배를 드렸든지, 예배시간을 잡념과 잡담으로, 문자 보내고 편지 쓰는 시간으로 보내고 졸다가 보냈든지, 손톱 깎고 화장하고 들락날락하다가 보냈다면, 예배를 정성과 준비 없이 드리므로 하나님이 멸시하거나 외면하시는 예배를 드린 것이며, 그 예배는 사단마귀와 귀신들이 먹어버린 예배제사였다. 그런 예배실패를 회개할 것이다.
모세는 창 4: 4에서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을 열납(悅納) 하셨다”(The Lord had regard(respect) for Abel and for his offering: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사를 존경하고 관심 있게 돌아보고 인정했다”)고 했고, 창 8: 21에선 노아가 돌로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를 드렸던 번제를 The Lord smelled a sweat savour(“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셨다-The Lord smelled the soothing aroma)고 했다. 야훼하나님이 아벨의 제사와 노아의 번제제사를 기쁨으로 받으셨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돌아보셔서 달콤한 향기로 흠향하시고 기쁨으로 열납하시는 예배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⑶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심
눅 1: 25에서, 나이 늙도록 아이를 낳지 못했던 엘리사벳은 늙어서 아이를 갖게 되면서 배가 불러오자 “주께서 나를 돌아보시는 날에(In the days when God looked on me)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셨다”고 노래한다. 엘리사벳은 임신하지 못한 것을 자신의 ‘부끄러움’(Reproach, 오네이도스: “비난, 모욕, 불명예”)이라고 했다. 당시 히브리여인들은 결혼한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아기에게 젖을 먹여보지 못하는 것을 최대의 부끄러움, 오네이도스(“여자의 모욕과 불명예”)로 알았는데, 이것은 신구약성경의 중심사상이고, 전통적인 동양 여인들 아니 지구촌 모든 여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며, 앞으로도 변치 않는 여인들의 생각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자들에게 두 가슴봉우리를 주신 것은 여자만의 미모와 아름다움을 뽐내거나 남자에게 사랑받고 사랑을 주기 위해 주신 것만이 아니라 자기가 낳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행복을 주고받기 위해서이다.
늙어서 임신한 엘리사벳은 자기아이를 갖게 된 기쁨과 늙어서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탄력이 빠지고 쪼그라들었던 두 가슴이 살이 차오르고 팽팽해지면서 그 아기에게 젖을 물리게 될 것이란 설렘과 감격에 ‘주께서 나를 돌아보셔서, 내 부끄러움이 없어지는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나에게 생겼다며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렇다. 하나님이 돌아보시면, 엘리사벳처럼 나이 많은 불임여인이 아이를 갖게 되는 일은 물론,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어떤 부끄러움도 당하지 않는 축복이 있다.
세상엔 한 때, 남보다 뛰어난 성공과 최고의 아름다움과 막강한 권세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특별대우를 받고, 신(神)처럼 떠받혀 존경받으면서 구름 위에서 살다가 한 순간의 실수로 끝 모르는 나락으로 추락하여 시궁창에 쳐 박혀서 가십거리로 뉴스에 오르내리며 부끄러움을 당하고 인간쓰레기 취급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때, 모든 눈과 입이 선망의 눈으로 쳐다보며 칭송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안면 바꾸고 뾰족한 눈으로 멸시하며 머리 흔들며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는 정치가 사업가 장군 대학교수 박사 미인 그리고 한때 유명한 교회의 장로, 목회에 성공한 대교회 목사였던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이 당하는 수치와 부끄럼과 치욕은 자신이 저지른 죄의 값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이고 명예회복의 기회이다. 그래서 부끄러움과 멸시와 수모 질시 비웃음은 회개로써 거기서 끝나야 한다. 남의 아내를 유혹해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을 계획적으로 살인하므로 간음죄와 가정파괴 죄와 살인죄를 저질렀던 다윗이 죄의 대가로 불륜의 씨가 저주로 죽고, 자기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사람들이 쳐다보는 백주대낮에 후궁 10명이 압살롬에게 강간당하는 것을 보여야 하는 치욕적인 부끄러움을 당했다가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고 돌아보심을 받아 다시 명예를 회복했듯, 당신의 명예회복은 죄를 회개하므로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돌아보시는 일 외에 인간적인 다른 방법은 없다.
O. J. Simpson처럼 유명한 변호사를 사서 자기 죄를 숨기려고 노력만 할 것이 아니다. 많은 돈을 드려 언론을 봉쇄하고 고소자의 입을 막으려고만 하지도 말 것이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얄팍한 제스처로 군중의 동정을 사려고 하지 말 것이다. 나를 돌아보시고 내 죄를 용서하사 실추된 명예까지도 회복시켜 부끄러움을 만회케 하실 수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회개할 것이다. 그 길만이 당신이 살 길이다. 만일 회개치 않으면 그 부끄러움의 저주는 이 세상에서 저 영원한 지옥으로까지 이어지고 사후의 저 세상에서도 마귀와 귀신들에게 영원한 고통과 괴로움과 치욕을 당하는 영원한 부끄러움의 사람이 될 것이다.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이 돌아보심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명예가 회복되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⑷ 죽음의 사경에서 건짐 받음
곤하게 예수님이 주무시는 배의 노를 저어 바다 건너편 거라사 지방으로 가던 제자들은 바다 가운데서 갑자기 거대한 광풍(狂風, A Great storm of wind ; “천둥번개와 억수같은 비를 동반한 미친바람”)을 만난다. 배에 탄 제자12명 중 반 이상이 어렸을 때부터 크고 작은 풍랑을 경험했던 노련한 뱃사람들이었지만 그날의 풍랑은 그들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미친바람이었다. 처음엔 자기들의 노력으로 항해를 계속하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천둥번개와 비와 바람과 파도는 배를 삼켜 바다에 수장시킬 위기상황이 된다. 마침내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잡아 흔들어 깨우기 시작한다. Master, why don't you care that we are perishing?: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왜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막 4: 38) 그러자 곤하게 주무시던 예수님이 일어나서 바다와 바람을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Peace be still)고 명령하자 미친바람은 꼬리를 감췄고 거칠게 꿈틀대던 바다는 용트림을 멈췄다.
그렇다. 하나님이 인간을 돌아보시고, 예수님이 사람을 돌아보시면, 죽을 지경의 우리 환경이 삶의 환경이 된다. 막혔던 문들이 열리고, 없었던 일자리가 생기며, 난마처럼 얽혀 우리를 옥죄이던 사건들과 질병들이 뜨거운 물에 얼음 녹듯 풀어지고 해결되고 치료되며,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하게 된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돌아보심으로 죽음과 어둠의 환경이 생명과 빛의 환경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한다.
⑸ 성탄의 기적역사
무엇보다 인류역사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돌아보신 최고의 사건은 마리아를 통한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이다. 눅 1: 47, 48에서 마리아는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주께서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이제 후로는 나를 복이 있다 일컬을 것이라”고 노래하므로 하나님이 자기를 돌아보셨기 때문에 수억의 지구촌 여인들 중에서 자기가 ‘구세주 예수를 낳은 여인이 됐다’고 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이 태어날 것을 말씀하신 이후, 수천 년 동안 히브리 여인들 가슴 속엔 ‘메시야를 낳는 여자’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이 4,000여 년 만에 ‘예수 성탄’으로 마리아를 통해 이뤄진 것인데, 마리아는 그 ‘메시야 탄생, Merry Christmas의 성탄사건’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돌아보신 사건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렇다. 구주 예수님의 성탄은 하나님이 인간을 돌아보신 사건 중에 최고절정 사건이다.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탄생하신 Merry Christmas, 성탄(聖誕)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이 한 여인 마리아를 돌아보신 사건이고, 국가적으로는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돌아보신 사건이며, 우주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지구촌인류를 돌아보신 대사건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와 여러분(우리) 마음에 구세주로 탄생하시고 다시 오실 메시야로 탄생하시는 성탄절도 하나님이 나와 당신을 돌아보셨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이 돌아보지 않았다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베드로(마 16: 16)와 나다나엘(요 1: 49)과 베다니의 마르다(요 11: 27)와 의심쟁이 도마(요 20: 28)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 “당신은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 “주는 그리스도시여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고백을 할 수가 없다. 우리를 돌아보아 우리가슴 속에 ‘예수를 메시야 구세주’로 고백하는 성탄이 있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런데 지난 2천여 년 동안 불렀던 Merry Christmas 성탄절이 예수탄생을 기념하는 날인 것은 양의 동서와 극의 남북을 초월하고 종교와 사상을 초월해 지구촌 모든 사람, 세상 끝 가난한 나라의 삼척동자까지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오늘날, Merry Christmas, 성탄절(聖誕節)을 Happy Holiday로 부르자는 운동이 도처에서 일어나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것은, 역사와 전통과 문화에 바탕을 둔 기존가치와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시대적가치의 충돌에서 오는 사회적 현상이나 문화충돌이 아니고, 단순한 종교적 이슈도 아니며, 이것은 기독교를 대적하는 One World, One Order(단일세계와 하나의 질서)의 New Age(새 시대)를 만들어 세계통치를 꿈꾸는 적그리스도의 거대한 역사가 이미 발동되기 시작했고, 불법의 비밀이 활동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을 휴거가 임박했음(살후 2: 7-8)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당신에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바른 신앙을 지키는 은혜들이 많아지기를 축원한다.
2. 하나님이 돌아보는 사람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돌아보시는가?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돌아보시는가?
⑴ 하나님의 초청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
하나님이 특별소명을 주려고 초청할 때, 자기 믿음과 신앙을 올바로 고백하는 자이다. 눅 1: 38을 본다. “마리아가 가로되, (나는)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Mary said, Behold the handmaid of the Lord-Behold, the bondslave of the Lord(“보십시오. 나는 당신의 노예몸종 하녀입니다”) Be it upon me according to thy word-Be it don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당신이 내게 말씀한 그대로 나에게 이뤄지게 하소서”) And the angel departed from her”
요셉과 정혼하여 결혼 날을 기다리고 있던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네가 처녀의 몸으로 임신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어 그가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할 것이다’고 했는데, 이때 황당한 마리아는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의 온갖 비난과 약혼자와의 파혼은 물론,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끌려가 공개재판을 받고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침착하고 단호하게 “나는 주님의 노예와 시녀 몸종이니 주님 말씀대로 내게 이뤄지게 하소서”라며 자기신앙을 고백하고 그 사실을 받아드리고, 열 달 만에 처녀의 몸으로 성육신의 예수를 아들로 낳는다.
그렇다. 하나님의 돌아보심으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고, 드리는 예배가 열납되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축복을 받고, 죽게 된 사경에서 건짐을 받으며, 성탄의 거룩한 역사가 나타날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 초청하시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께 즉시 반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고민하고 주저하거나 뒤로 미루지 않고 곧바로 자기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다.
카메룬교회가 자매교회로 우리 교회에서 주일 오후예배를 드린 지가 두 달(2015년 10월 18일)이 지났다. 그 동안 우리교회의 사랑과 기도로 부흥됨을 감사하던 중, 지난 화요일(22일) 카메룬교회 Jean(진)목사의 부부 초청으로 우리 부부가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그날 식사 중 진목사가 들려준 간증 일부를 소개한다. 며칠 전부터 성령께서 근처에 있는 어느 집을 보여주시며 심방전도를 가라고 명령하셔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간 어느 날, 갑자기 성령께서 ‘오늘이다. 빨리 가라’고 하여 그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놀라면서 ‘당신이 누구냐? 누가 보내서 왔느냐?’며 당황하며 물어서 ‘나는 목사인데 성령께서 나를 당신 집에 가라고 해서 왔다’고 했더니, 마지못해 문을 열어주어 집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진목사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내게 말씀하셨다)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신은 매우 위험한 상태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길 원하는가?’고 말한 후, 복음을 전하며 여러 가지를 상담하고 위로하며 전도했는데...얼마 후, 그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면서, 속주머니에서 총 세 자루를 꺼내 놓으며, ‘오늘 밤에, 이것으로 아내를 쏘아 죽이고, 저것으로 아이를 죽인 후, 저 총으로는 자신을 쏘아 자살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목사님이 오셨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진목사가 그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신앙상담을 통해 주님을 영접시키고 위하여 기도해주었는데, 그 날 밤에 그가 죄와 마귀의 묶임에서 자유를 얻었고 구원을 받았으며, 다음 주일부터 교회를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며 감사한다. 그의 간증으로 네 사람이 은혜를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그러면서 ‘이런 기적들은 내게 말씀하시는 성령님께 내가 순종할 때마다 나타난다’고 겸손하게 간증을 한다. 그리고 Jean목사는 자기 생일이 1월 21일인데, 지금까지 목회하는 동안 해마다 1월 1일부터 21일까지를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왔다며 2016년에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하나님이 돌아보는 축복들, 하나님이 돌아보시는 기적들을 체험하기 원하면,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초청에, 하나님이 꿈과 환상과 계시와 음성과 감동과 다른 사람을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실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라. 뒤로 미루거나 지체하지 말라. 손익계산 하다가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 만일 마리아가 인간 생각으로 계산하고 지체하다가 거절했다면, 성탄의 기적은 다른 사람에게 옮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의 돌아보심은 하나님께서 초청하시고 말씀주실 때 즉시 반응하고 순종해야 한다.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즉시아멘’으로 받아드리므로 하나님의 돌아보시는 기적들이 넘치게 나타나길 축원한다.
⑵ 믿음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람
오늘 본문 46-56절은 ‘네가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을 것이다’란 천사의 말에, ‘즉시 아멘’을 한 후, 마리아가 흥분된 마음을 안고 서둘러서 멀리 지중해 바닷가 산지(The hill country)에 있는 친척 엘리사벳 집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이야기다. 40-45절에선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문안(Salut, 에스파사토: “껴안다”란 뜻으로, 중동사람들의 “포옹과 반가운 말의 문안을 포함하는 매우 열렬한 인사”를 가리킨다)했을 때, 6개월 된 아기 세례요한이 엘리사벳 뱃속에서 뛰놀았고(The baby leaped in her womb)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후(Elisabeth was filled with the Holy Spirit) 성령으로 마리아를 축복했는데 그 축복예언은 ①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고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다(Blessed are you among women, and blessed is the fruit of your womb!)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말을 듣기 전에 성령의 계시로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았고, 그녀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마리아가 임신한 아이가 만백성을 구원할 메시야이시기에 마리아가 복이 있는 여자라고 했다.
② 내 주의 모친이 내게 오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How has it happened to me, that the mother of my Lord should come to me?) 이 말은 가톨릭에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런 뜻이 아니다(가톨릭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부르다가 이제는 ‘원죄가 없는 여인’으로까지 신성시하여 숭배하며 마리아에게 기도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사상이다) 세상에 그 많은 여자가운데 메시야요 주이신 예수님의 어머니로 마리아가 선택됐음을 축하하는 말이다.
③ 너의 문안하는 소리를 들을 때, 내 태중의 아이도 기뻐서 뛰놀았다(For, behold, as soon as the voice of your salutation sounded in my ears, the baby leaped in my womb for joy) ④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다(Blessed is she who believed)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룰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은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반드시 이뤄지기 때문에 이것을 믿은 여인 마리아, 네가 복이 있다는 말씀이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문안하는 것과 동시에 엘리사벳이 성령 충만하여 마리아에게 예언축복을 했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을 서로 함께 나눌 때, 믿음의 시너지(Synergy; 상승작용, 협조 작용)효과가 있음을 알게 된다.
전기물고기(Electric Fish) 몸에는 전류가 흐르는데 송사리를 죽일 수 있는 전류, 붕어나 잉어를 죽일 수 있는 전류파장, 상어나 악어를 졸도시키는 파장까지 각각 다른 전류파장이 흘러 자기 몸을 보호하듯, 우리 믿음에도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각자의 믿음의 양만큼 그 안에 영적파장이 있다. 그래서 믿음만큼 병균을 파멸시키는 파장이 흘러나와 병을 고치기도 하고, 문제들이 해결되는 기적의 파장이 나타나기도 하며, 영적파장으로 없던 일이 생겨나는 기적, 마음에 가득 찼던 불안이 파괴되는 기적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작은 전류들이 합해지면 강한 전류가 되고 강한 전자파장을 일으키듯 그런 믿음들이 뭉쳐지고 합해지면 큰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데 이것을 ‘집단 기름부음’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믿음은 약할 수 있지만 작은 모닥불들이 함께 모이면 거대한 불길이 되고, 작은 개울물들이 합류하면 사나운 강물이 되듯 믿음과 믿음이 함께 하면 강력한 믿음의 파장이 일어난다. 목사의 믿음과 성도의 믿음이 하나가 되어 집단 기름부음이 일어나므로 많고 강한 기적들이 나타나는 주기도문 교회가 되길 축원한다.
⑶ 부부의 가정생활이 충실한 성도
말 2: 13에서 구약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 않고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 않을 것이라”(Insomuch that He regarded not the offering any more, or received it with good will at your hand)고 말했다. 이것은 말라기 당시 남편들이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이방여인이나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아내들을 괴롭힌 죄를 책망한 말씀으로, 오늘 남편이 아내를 무시하고 괴롭히거나 아내가 남편에게 고통을 주어, 부부사이에 눈물과 울음과 탄식이 보이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물과 예배를 받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보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돌아보시는 성도는 부부사이가 행복한 성도와 가정생활이 충실한 사람들이다.
말세에 마귀가 가장 쉽게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것은 탈선과 성적방종과 이혼이다. 심지어 마귀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까지도 이혼으로 신앙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래서 오늘 세상 사람들의 탈선과 성적방종은 외식 한번 하는 정도로 일반화 됐고, 부부가 헤어지는 이혼은 감기 한번 앓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 결혼생활 5, 10년차 부부의 이혼은 예사이고 20, 30년의 부부생활 심지어 40-50년 결혼생활 부부의 황혼이혼도 점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래서 실제로 부부가 헤어진 이혼과 마음으로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과 부부가 서로 만족치 못하고 딴 생각을 품고 성적방종의 일탈을 꿈꾸는 사람까지 계산한다면, 정상적인 부부의 가정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될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부부생활이 만족치 못하고 부부가 서로 미워하고 의심하며 상대방에게 눈물과 울음과 탄식을 준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지 않겠다고 했다. 몰래 먹는 떡이 맛있어 보이고 도적질해 먹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도 그것은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이요 스스로를 상함과 능욕을 받게 하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하며, 간에 구멍을 내게 하는 독약과 같은 것이며, 지옥음부로 가는 직행길이니(잠 6: 32-33, 7: 23, 27) 이런 죄들을 멀리하고 부부가 행복하고 가정이 평안하므로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는 모든 축복을 받고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⑷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무는 성도
바울은 히 8: 9에서 “저희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않았다(Because they did not continue in My covenant-(For they did not continue in My covenant) And did not regard them-(And I did not care for them)”는 렘 31: 32절을 인용하여 ‘너희는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했다. “돌아보지 않았다”(I did not regard them)의 에멜레사는 “내가 무시했다, 내가 등을 돌려 버렸다”는 뜻이다. 그렇다. 오늘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무시하는 자들에겐 등을 돌리시고 그들을 무시해 버리시지만’, 성경말씀으로 언약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성도 개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고 그 약속 안에 거하는 성도들은 ‘돌아보시는 축복’을 주신다.
Guideposts에 실렸던 간증이다. 약혼 전부터 갑상선 기능항진증으로 심하게 고생하던 자매가 결혼날짜가 정해지면서 고민하다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병상에서 정신이 돌아온 자매는 “이런 몸으로 결혼해 보았자 남편에게 부담만 안겨다 줄뿐이다. 결혼식장 예약을 취소해야 겠다”며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굳힌 후, 전화를 걸려고 수첩을 꺼내기 위해 머리맡에 있는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몸이 도대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어버렸다.
이 자매는 항상 그리스도인임을 자부하며 살았던 믿음이 좋은 처녀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좋지 않은 일도 변하여 좋은 일로 바꿔주신다고 믿어왔기에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막상 결혼을 며칠 앞두고 이런 상황을 만나자 깊은 절망에 빠졌다. 지금은 아무것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오후에 병상에서 정신이 돌아온 자매는 움직여지지 않는 오른손은 침대에 그대로 둔 채, 가까스로 왼손을 들어 가슴 위에 올려놓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다.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여기 저와 함께 계시지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힘을 믿습니다.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흐느끼며 기도하는 도중,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상쾌해지고 무언가 희망적인 일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서서히 자매의 부정적인 상념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병실 전체가 환해지더니 찬란한 빛으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비몽사몽간에 종소리만한 분명한 소리가 병상의 그녀에게 들렸다. “3년 6개월 후에 네 병이 낫게 되리라”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매는 “믿습니다”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마침내 약혼자와 결혼을 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편은 이 자매를 아내로 맞아주었고, 사랑하고 보살펴 주었으며, 힘든 중에 자매는 아들을 낳았다. 겉으로 보기에 자매가정은 단란하고 행복했지만 여전히 자매는 질병으로 고생을 해야 했고, 3년의 세월이 힘들게 느릿느릿 지나갔다. 그래서 자매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그릇처럼 아슬아슬하게만 느껴졌다. 자매의 몸은 점점 야위어 갔고, 아이 요한이 성장할수록 집안일은 점차 불어가 더욱더 하루하루가 힘겹게 느껴졌다.
그해 11월이 끝나갈 무렵, 병원에서 집으로 막 들어서려는 순간, 친정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자매는 부리나케 어머니가 가르쳐준 병원으로 달려가 약을 신청했다. 약은 신청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서 ‘평생을 이 지긋지긋한 병에 길들여져 살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부질없는 생각과 온갖 상념 때문에 자매는 큰 기대를 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이 빗나갔다. 약이 도착했다는 통보를 받고 병원에서 약을 받아 복용한지 한 달 만에 40kg도 안 되던 몸이 평균치에 가까워지는 놀라운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을 복용한지 넉 달이 될 무렵, “당신, 처녀시절 그때 그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왔는데!”라며 자기를 쳐다보는 남편의 모습에서 불현듯, 지금까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3년 6개월 후에 네 병이 낫게 되리라”는 ‘병상에서의 하나님의 약속’이 생각났다. 자매는 “여보, 3년 6개월이에요. 3년 6개월...!”을 소리치다가 몇 번이고 손가락을 꼽고 펴기를 반복하면서 3년 6개월을 확인하고 다시 확인하고는 마침내 마루에 무릎을 꿇고 자기에게 약속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기도들마다 응답되고, 예배가 열납되며, 더 이상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치 않으며, 위기에서 건짐을 받고, 하나님이 돌아보아 마음에 예수님이 탄생되는 성탄축복을 소원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과 초청에 즉시 반응하시라. 이웃의 믿음과 내 믿음을 화합하고 믿음을 함께 나누라. 멀었던 부부의 가정생활을 충실하라.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 안에 머물러 약속을 부여잡으라. 하나님의 돌아보심이 충만한 삶이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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