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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메이플라워호 탑승자 청년이 폭풍으로 바다에 빠져?

04/05/21       정부홍 목사

7. 메이플라워호 탑승자 청년이 폭풍으로 바다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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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칼럼에서 살핀 대로, 영국 청교도 순례자들은 1608년에 화란으로 가서 3백 여명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 중 60(총 승객100)이 다시 신대륙 아메리카로 이주하기로 하여 스피드웰이란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 메이플라워 호와 동행했으나 누수가 연속 발생하여 동년 9 6일에 후자로 옮겨 타고 최종적으로 플리머스 항을 떠나게 되었다. 순풍이 이어지고 모두 행복한 기대로 가득 찼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배 갑판에서 물이 새고, 거센 바람을 못이긴 중앙 돛대가 휘어져 긴급 수리를 하고 계속적인 항해 여부를 두고 선장과 승객들은 격론을 벌였다. 그러나 일단은 계속 항해하기로 했다. 또 다시 폭풍과 높은 파도로 전진할 수 없었다. 결국, 배는 운행을 중단한 채 며칠 동안 표류했다. 미래를 기약 못하는 암담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표류하는 동안, 존 카버 초대 주지사의 하인으로 동승했던 28세의 청년 존 하우랜드(John Howland)가 물에 빠졌다. 이 사건에 대해 제2대 주지사를 오랫동안 역임한 윌리암 브레포드는 자기 일기에 자세히 기록했다.

 

“수 차례 폭풍우들 중에서 이번 바람이 너무 세어 바다는 아주 흉용하였다. 돛 매듭이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여러 날 동안 그냥 배를 동여 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강한 폭풍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존 하울랜드라 는 건장한 청년이 갑판 위로 올라왔다가 바다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은, 배의 꼭대기까지 걸려 있는 돛 줄이 갑판 위에 길게 흘러 바닷물에 빠져 있어 그가 그것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는 그 동일한 줄을 꼭 잡고 있었다, [선원들이] (빠져 있던 그를 물 속에서) 끌어 올렸다. 그리고 보트 갈고리와 또 다른 도구들로 그를 배위로 건져 올 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그의 생명을 구했다. 이 때문에 그가 당시는 아팠으나, 오래 살면서, 교회와 연방공동체에서 유익을 끼치는 회원이 되었다.” William Bradford, Of Plymouth Plantation 1620-1647, ed. Samuel Eliot Morison (New York: Knopf, 1991), p. 59. 

 

 논자의 전공은 역사적 인물들을 뒷조사하는 것이다. 브레포드가 평가한대로 과연 하인으로 팔려 왔던 청년이 교회와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회원이 되었다고 칭찬했는데 관연 그렇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다. 그의 묘비대로 존 하울랜드(1592-1673)는 당시 28세였던 ‘건장한 청년(a lusty young man)’으로 1591-2년경 영국 헌틴톤셔 지역 펜스텐톤에서 여만(Yeoman) 하울랜드와 마가렛 하울랜드 사이에서 태어났다. 뉴잉글랜드 플리머스의 첫 번째 주지사였던 존 카버 집사의 하인(‘servant’)으로 따라와 끔찍한 일을 겪었다. 

 

 

 배의 누수로 두 배에 나눠 타야 할 인원이 한 배로 옮겨 탔으니 그것도 여객선이 아니 화물선 속에서 젊은이에게 비좁고 갑갑하고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폭풍우가 몰아치지만 갑판에 올라 왔다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차가운 바다 속으로 빠져버렸다. 그런데 다행히 돛 줄이 배 밖으로 걸쳐 있었기에 잡을 수 있어 매달렸고, 선원들이 그를 갑판으로 잡아 안전하게 끌어 올렸다. 그가 물속에 빠진 순간, 죽음이 엄습했음을 실감했을 것이지만, 오직 희망이 있다면 실오라기라도 잡는 것이었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리며 어려서부터 가진 믿음으로 죽음에서 구출된 요셉과 다니엘을 기억하며 오직 구원의 돛 줄 같은 하나님을 붙잡았다(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얼마 후 선원들에게 발견되고 승객들의 도움으로 끌어 올려져 살게 되었다. 그는 마치 바다 물결 속에 던져진 요나와 같이 회개하고 구출되는 체험을 했을 것이다. 그는 빠진 험한 물속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을 만나고 일생을 주께 헌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메이플라워호가 도착한 이틀 후 11 11일에 41 명의 남성 승객이 소위 메이플라워 합의문(Agreement Between the Settlers of New Plymouth; 뉴 플리머스의 정착민들이 맺은 합의문), 즉 향후 미국 헌법의 기원이 된 문서에 서명했는데, 여기에 하인이었던 하우랜드의 서명도 발견된다. 그의 주인 존 카버 주지사는 이듬해 4월 중순경 낮에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며칠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어 하울랜드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 후 2년이 지난 새해 첫날(1623 3 25)에 함께 왔던 동료 승객 엘리자베스 틸리와 결혼하여 딸6, 아들4, 그리고 손주77명을 두었다

 

존 하울랜드(JOHN HOWLAND),

여기서 순례를 마치다.
1672/3년 2월 23일 80세 이상 살고 돌아 가시다

1620년 12월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함께 왔던

존 틸리(JOHN TILLEY)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다

이 두 사람으로부터 수많은 후손들이 나오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자 

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던 변함없었던 신앙고백자였습니다

그는 이 땅에 개척자들 중 하나였으며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온 사람들 중 끝까지 플리머스에 남았던 마지막 사람이었습니다.

-플리머스 역사기록문서-

 

과연 그 후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 페이지에 보시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조지 부시 대통령, 사라 펠린 부통령 후보 등 많은 유명인들이 최초 51명 순례자들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https://pilgrimjohnhowlandsociety.org/Notable_Howland_Descendants). 존 하울랜드는 그의 형제들도 데려와서 헨리 하울랜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조상이 되었으며, 아써 하울랜드는 윈스턴 처칠의 조상이 되었다.

 독자 여러분의 라이프도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은 잘 모를 수 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살아나 약 2백만명의 후손을 이루었다고 한다. 우리도 자기 생명을 포기하면 안 된다. 우리가 더 위대한 후손들의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다. 현재 처한 고난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가 처한 것보다 절박하랴. 어려움, 현재의 고난을 참으라. 롬8:17,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는 포기할 없다. 우리가 위대한 후손들을 위한 믿음의 조상이 것이다. 현재 처한 어려움이 아무리 클찌라도 그가 처한 것만 하랴. 현재의 어려운 고난을 참으라. 8:17,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 끝까지 견인하여 구원받는 렘난트(Remnant; 그루터기 남은자 생존자, 6:13) 되자.                                                                                                                                           https://www.scmp.com/news/world/article/1884045/meet-john-howland-lucky-pilgrim-who-populated-America-2-mi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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