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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틴스: 노예해방데이

06/28/21       김금옥 목사

준틴스: 노예해방데이


수백 년 전 미국의 흑인(African American)들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들이 살던 아프리카 고향 집에서 어느 날 사냥꾼들이 짐승들을 포획하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포획되어 강제로 미국 여러 곳에 노예로 팔렸다. 백인이 주인이었던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장에서 노예가 되어 살았는데 링컨대통령의 남북전쟁이 승리한 후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독립선언을 했지만 미 전역에서 시행되지 않았는데 156년 만에 연방공휴일이 되면서 법적으로 자유를 찾게 되었다. 사실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북군의 고든 레인저 장군이 노예해방을 1865년 6월 19일 선포했는데 텍사스주가 먼저 준텐스를 텍사스주의 공휴일로 했다. 작년 흑인인 조지프로이드의 죽음 후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는 ‘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세계와 미 전역에 퍼지면서 이 날을 공휴일로 정하는 주가 증가했다. 대통령 조 바이든이 서명함으로 연방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번 6월 19일이 첫번째 휴일이나 토요일이므로 전날을 공휴일로 지켰다. ‘준틴스’라는 말은 6월의 ‘June’과 19일의 nineteens의 ‘teens’를 합쳐 ‘Juneteens(준틴스)’가 되었다.

 

 필자는 이날 ‘노예해방기념일’ 인 ‘준틴스’ 데이를 기념하면서 수 십 년 전 필자와 같은 병동에서 일했던 두 명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더 이상 노예 후손의 자식” 이라는 고통과 백인 상급자에게서 받는 이유 없는 압박감에서 해방되어 편한 마음으로 일하기 바란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겠으나 한 분은 제가 근무하던 병동에서 가출한 아들의 자식인 손주들의 양육을 위하여 일하던 직원이었는데 아들이 갈등과 삶의 좌절을 감당 못하면 집을 떠나곤 했으므로 부인이나 할머니가 고생했다. 당시 인종차별로 흑인 남성들이 고통과 좌절이 많았는데 가족을 버리다시피 떠나버리곤 했다. 지금은 가정적이고 가족들에게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 제가 근무하던 70년대만 하더라도 아버지가 없이 자녀들과 어머니 또는 조부모와 같이 살던 가정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남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 한동안 정착할 것 같던 남편들이 다시 집을 떠났었다. 할머니 등dl 그 모든 케어를 했는데 필자와 같이 근무한 그분도 그런 할머니 중의 한 분이었다. 증조모가 자유노예였다고 고백하던 그분이 방황하는 아들을 바라보던 고통이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노후를 맞았기를 바란다. 

 

 또 한 분은 근무도 성실히 잘하고 성격도 부드러워 당시 같은 병동에서 일했으므로 필자와도 관계가 좋았는데 그곳에 백인 상급자가 있었다. 깐깐한 성격이지만 특별히 그 직원에게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데도 그녀는 백인인 그녀에 대하여 늘 긴장했다. 필자가 그녀의 불안을 알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만 보면 이유없이 긴장했다. 그후는 어떻게 됬는지 모르나 그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노예해방의 기쁜 소식을 듣기를 바란다. 이제는 더 이상 노예라는 듣기 불편한 단어는 흑인들의 세계에서도 없을 것이고 백인들을 만나면 긴장하고 불안해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당시 ‘60년대의 분노와 좌절을 견디지 못했던 이들의 행동을 우리는 안다. 좌절을 극복하지 못하고 70년대로 넘어온 이들이 크랙, 코케인 같은 마약으로 분노를 해결하려 함으로 그때 정신병동은 그런 환자들로 찼었다. 노예해방이라고 하니 대단한 것은 사실이나 한국에서도 이조 때 4계급의 가장 말단에 종이라는 계급이 있어 영원한 종인 그들의 신분이 비참했었다. 이제는 이러한 신분의 문제 차별의 문제가 더 이상 없기를 바라고 조지프로이드로 인한 사망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을 종의 신분이라고 차별하지 않으셨고 가장 천대받았던 세금 징수원들에게도 주님은 세상은 차별했으나 같은 밥상에서 식사를 하셨다. 사람들의 차별의식은 자신들의 열등감이나 자존감의 문제와 비교하여 발생할 수 있으므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타인에 대한 이유 없는 열등감이나 차별의식이 사라질 수 있다. 많은 훌륭한 흑인들이 미국사회에서 봉사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아직도 존경을 받는다. 차별은 주님의 심중에는 없으며 모든 백성이 같이 주 안에서 하나라는 명제가 더 확실히 이름을 발휘한다. 갈라디아서 3:28은 주 안에서 모두가 하나임을 말한다. 마틴 루터 킹은 살아 생전에 백인과 흑인의 자녀들이 같이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는 꿈을 말했다. 이런 것이 더 이상 문제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흑백의 문제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족속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하나가 되어 같이 공존하면서 세상의 발전을 위하여, 서로를 위하여 나누며 사는 것이 흑인 해방의 날을 맞아 생각해야할 또 하나의 명제이다. 예수님이 말한 세상은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은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할 때 세상은 서로 케어하는 사랑의 세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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