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 July 23, 2024   
외로움은

01/24/16       김금옥 목사

외로움은


외롭다 또는 외로운, lonely라고 말하는 외로움을 말하는 단어가 있다. 우리 주위에 홀로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혼자있다” 라고 해서 다 외롭고 쓸쓸하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의도적으로 혼자있는 분도 있고 기도를 위하여, 자신의 영성개발과 정진을 위하여 혼자 있기도 하다.

어제 생일을 맞은 분이 계셔 식당에 갔다. 아무도 생일을 차려주거나 기억을 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서 그동안 외로웠다고 말했다. 이 어머니는 우리 교회에서 생일을 맞았는데 그렇게 좋아하고 감격할 수가 없었다. 식당의 식사와 생일케익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고 외로움에 지친 분에게 작게나마 위로가 됐다는 사실이 우리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하게 했다. 누구를 배려하고 그를 위하여 무엇인가 한다는 사실은 즐거운 것이다.

외로움은 누구나 다 한번씩 경험하지만 일생 외로운 분들도 있다. 누가 내 곁에 있는데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미국에 이민와서 살고있는 한인들에게 외로운 사람들이 있어 단체를 만들고 모이고 만난다. 내 나라 한국이 아닌 이방나라에 와서 외로움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만치 외로움은 우리들 한인은 한번씩 겪어본 아픈 경험이다. 외로움은 우울증 같은 정서장애나 망상이나 환청같은 정신장애를 가진 분도 마약이나 음주를 하는 사람에게서도 외로움이 문제이다. 부엌이나 방안에서 술을 마시는 분들의 원인도 외로움이다.

정신적인 정서적인 문제를 가지고 사람들에게서도 “홀로”인 사람들이 있다. 최근 사회적인 큰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있다. 흔히 외로운 늑대,  lone wolf 라고 부르는데 친구가 별로 없고 총격사건이나 폭발 등의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사회문제를 일으킬 잠재적 상태에 있는 문제를 가진 사람으로 사회는 이들을 찾아내서 위험한 일을 일으키기 전에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 외로움이나 홀로 혼자인 것이 좋은 것만 아니고 차라리 위험할 수있는 이유이다.

한 부인이 말했다. 남편이 부인보다 6개월 먼저 미국에 왔다. 그후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왔는데 그날 자기를 데리고 집 모통이로 가더니 부인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미국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치고 외로웠다고 말하면서 울더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이 친절하고 친구가 있어도 외로움은 어쩔 수없다.

외로움은 그것을 경험한 주위가 배려해 주어야 한다.

목회자가 되기 전 본인은 정신신경과 의사로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우울증과 외로움으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것을 보았다. 건강한 사람에게서 외로움은 자기 정진의 걸음이 될 수도 있다. 외롭고 홀로인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도 될 수 있고, 자신을 정직하게 성찰할 수있는 시간도 된다. 혼자 만의 시간은 나를 바라볼 수있는 시간이 되고 나를 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지나치거나 오래가는 것은 정서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을 뿐더러 바람직하지  않다. 혼자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지면 자기 만의 상상의 세계로 빠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세계는 나만의 세계, 나의 세계가 되고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있는 망상의 세계다. 상상의 세계에서 자기가 상상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한다.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는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의 경우 망상과 환청으로 현실도피의 세계이고 비정상적이고, 현실적이지 않다.

최근에 한국에서 한 분의 훌륭한 교수가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했다고 하는 그분은 희망에 대하여 말했다고 한다. 하루 몇 시간 창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햇살을 통하여 행복을 발견했다는 그의 말을 통하여 내면의 외로움과 고마움,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를 느낄 수있었다. 그는 내면의 외로움과 고통을 행복과 희망으로 바꾼 사람이다.

인간의 외로움이 문제를 만든다. 대화가 안될 때 필연적으로 오는 부부들의 외로움이 있다. 대화의 단절은 외로움을 불러온다. 부부는 각자 성격과 결혼 전까지의 삶과 사고가 다르므로 대화로 합의점을 찾아야 하고 모든 일에 같이 의논하고 결정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부부싸움의 결과는 의사소통이 안되서 필연적으로 느끼는 절망과 죄절과 외로움으로 이것은 상대의 의사를 인정해주고 상대가 내가 하는 말을 바로 들으려할 때 해결된다.

가장 외로웠던 분은 우리 예수님이시다. 그날 저녁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고 성만찬을 처음으로 시행하고, 싫다는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 배반당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비참한 마음은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으로 간 주님은 제자 3 명을 따로 데리고가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후 혼자서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괴롭고, 무섭고, 두려운 이 잔이 나에게서 피해가기를 바라는 기도도 드렸고, 왜 나를 배반하시냐고 하는 눈물의 기도는 핏방울이 되어 떨어진 주님의 땀이었다.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예수님은 육체에 가해지는 이 모든 고통을 몸소 감당해야 했다. 주님은 그때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분이었다. 예수님은 눈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기도하고 잡히고 온갖 모욕을 받고 십자가까지 지셨다.

“외로움, 외로운”의 이미지는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배척당하거나 무시당했을때, 불합리적인 사회적인 압박이 외로워지게 만든다. 사람들이 할수있는 만큼 그들을 돕고 배려해 줄 것이다. (끝)

김금옥 목사(에버그린장로교회,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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