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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 부재의 시대

09/17/21       한준희 목사

의리 부재의 시대


초등학교시절부터 함께 딱지치기를 하고 자치기를 하면서 즐겼던 친구들이 있다. 이들과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꽤나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하지만 20대에 접어들면서 대학 진학을 한 친구들, 군에 입대한 친구들, 새 개발지역인 강남으로 이사를 간 친구,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 등 여러 친구들이 하나 둘씩 내 곁을 떠났다.

 

 나 역시, 군에서 제대한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직장에서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이 생기면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었다. 물론, 직장 친구도 친구이지만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이 더 정이 가고 친구다웠기에 가끔씩 연락을 하여 만나서 술 한잔으로 지난 추억들을 유쾌하게 나누는 시간도 많이 가졌다.

 

 그 이후 사명을 가지고 나는 신학을 공부하였고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학생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신학공부를 하다 보니 옛 친구들, 직장 친구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면서 오래된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지고 신학교 친구들과는 가까워지는 시기를 보냈다.

 

 세월이 지나 목사가 된 친구, 선교사로 해외로 나간 친구, 교수가 된 친구 등 다양하게 형성된 친구들과 교제를 하면서 지낸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나와 연관된 친구들은 손꼽을 정도로 적다. 같은 노회 소속으로 형성된 친구, 목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만난 나이 차이를 초월한 선후배 친구들과 연관되어 교제를 하고 있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는 그 많은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10여 년 전, 죽음같은 처절한 고통을 당하고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내 주위에 있었던 그 많던 친구들이 하나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도대체 친구란 뭔가? 어린시절부터 배워왔던 친구의 의리라는 것이 뭔가? 왜 나에게는 진정한 친구는 없는가? 어쩌면 그 이유는 나에게 있다고 본다. 내가 친구들에게 진정한 친구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그 해답일 것이다. 한마디로 난 지독히 의리가 없던 인간이었다 라고 스스로 자책해 보았다.

 

 내가 의리 있는 친구가 못되듯이 나에게도 의리 있는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직접 체험을 해서 더 잘 안다, 나에게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친구가 있었다. 거의 20여년을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난 친구다, 더욱이 내가 어려울 때, 그래도 나에게 많은 힘이 되어 준 친구이다. 그런데 가깝게 지내다 보니 격이 없어졌고, 격이 없어지다 보니 아무 말이나 쉽게 해 버리는 경우도 있어지게 되고, 심지어는 자존심마저 무너뜨리는 언행도 자주 하게 되는 무례함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어쩌면 가까울수록 더 지켜져야 할 친구에 기본예절을 무시해 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면서 두 사람의 의는 무너지게 되었다. 좋은 친구인데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깨어진 실례이다. 그 이후로 나는 과연 친구의 의리라는 것이 어느 선까지 지켜져야 의리가 형성되는지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더욱이 목사가 되어 목사들에게 의리가 있는가? 어쩌면 목사는 목사로서의 의리보다 지금 내가 이끄는 목회 현장의 성도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목사, 내 가족보다 더 기도해 주고 아껴주는 성도와의 관계가 더 의리가 있는 것 아닌가 여겨진다. 그런데 오랜 세월 목회 경험을 해 보니 역시 성도들과 목사와의 관계도 너무나 쉽게 깨진다는 것을 배웠다. 말  한마디 농담한 것이 오해가 되어 30년 지기 성도와 목사 간에 의리가 무너지면서 다시는 안 보는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도 많이 발생한다. 안보면 그만이고 안 만나면 그만이다. 그렇게 쉽게 헤어진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사람들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친구라는 것은 필요 관계일 뿐이다. 내가 필요하면 친구가 되는 것이고 필요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안 만나면 된다는 그런 관계가 만연된 사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보니 친구라는 것이 그저 밥이나 같이 먹고 농담이나 하고 한국 정치이야기, 한국드라마이야기, 이민 교계 이야기가 전부다, 그 이상 깊숙한 개인적인 진지함은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아주 의리 없는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친구 가족들의 경조사가 발생하면 최소한 참석은 한다, 마음을 같이 하는 기쁨과 슬픔보다는 물질로 보답하는 것이 최소한의 의리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의리의 문제는 무엇을 탓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시대가 악해졌고 극단적 개인주의 사상이 깊어졌고, 물질을 가지고 친구를 만들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그런 물질만능시대가 친구들과의 보이지 않는 계급도 만들어 논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도 더럽게 의리 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많은 친구들을 필요 관계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친구로 만난 이상 적어도 배신자는 되지 말아야겠다. 그 친한 친구를 등쳐먹는 의리마저 배반하는 자가 목사였다는 말은 들려지지 않는 그런 목사라도 되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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