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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생각하다

10/27/21       김금옥 목사

이웃을 생각하다


코로나바이러스19으로 앓고 있던 친지에게 병문안도 못간 것이 일년여가 넘었다. 백신 주사도 맞고 병의 전파가 작년과 같지는 않아도 아직도 쉽게 문안을 갈 수 없다는 것에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만일 병을 심하게 앓아서 전화도 받지 못할 정도로 쇄약한데 보고 앉아만 있을 수없다고 생각하면 병문안을 갈 수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제 조금씩 만나게 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또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코로나로 사망한 분들이 상상외로 많고 코로나 감염을 집에서 앓았다는 분들이 많은 것을 알게된다. 몇일에서 심하면 몇개월 아펐다는 그분들의 말을 들으면서 회복된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갈5:14) 말한다. 많은 분들이 이웃을 더 사랑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 장례식에도 참석하고 병원에도 방문하고 집에서 앓고 있는 혼자사는 분들도 찾아 위로해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 모든 것들이 이뤄지지 않았다. 문병도 가지 못하고 전화로만 문병할 뿐이다. 뿐인가 만나지도 못한다. 그렇게 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우울증과 외로움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다. 

 

누가 이웃인가를 생각하면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동을 생각했다. 강도를 만나 구타 당하고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에게 그곳을 지나가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의식을 잃은 강도 피해자를 “보고 피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유대인들의 멸시천대를 받던 사마리아인이 짐승을 타고 지나가다가 의식을 잃은 사람을 발견했다. 강도를 만나 옷도 벗기고 매도 맞았다. 그는 짐 속에서 기름과 포도주를 꺼내 상처에 부어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탔던 짐승에게 환자를 태워 주막에 가서 주막주인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고 충분한 경비를 주었다. (눅10:25-37)

 

사마리아인은 먼저 지나쳤던 분들과 달랐다. 의식없는 사람에게 다가갔고, 주막으로 태워가서 그가 여행에서 돌아올 때까지 돌보아 주기를 부탁했다. 그가 언제 돌아왔는지는 모르나 여관 주인은 충분한 치료비용을 받았기에 치료를 잘했을 것이다. 당시 천시받던 사마리아인이 위급한 환자를 데리고 왔는데도 거절하지않고 받아준 주인도 누가 이웃인지 아는 선한 이웃이다.

현장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주막에 와서도 계속치료를 준 사마리아인에 대하여 예수님은 참된 이웃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이런 도움이 필요하다. 이분은 자신의 신분이나 세상의 눈을 생각하지 않고 응급 환자를 돌보았다. 예수님이 말한 내 이웃은 이런 모습이다. 

 

앞에서 말한 그 노회위원은 몸이 너무 쇄약해져서 주사약도 맞을 수 없었다. 그 상태를 알고 있음에도 방문자는 방문을 하기로 작정하고 자기는 필요한 면역조치를 끝냈지만 다시 예방 조치를 하고 만났다. 그 말을 전해주던 분이 그 분의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아픈 환자를 피하지 않고 찾아간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특히 본인이 속한 노회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 감동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한 이웃이란 이런 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피하는 외롭고 중한 환자를 찾아가서 만나고 위로해준 그분의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참된 이웃은 도움이 당장 필요한 위중한 환자를 보고도 “보고 피하여” 가지않는다. 대신 보는 즉시 달려가서 사마리아인이 한 것같이 응급치료를 하고 다음 조치를 취할 것이다. 요새 응급 심폐술을 해서 살려냈다는 이야기를 심심치않게 듣는다. 

 

최근 동물 뉴스를 들으면 유기견이나 동물들이 사람들에 의하여 구조를 받는다. 다 같은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구조되고 주인을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지금 이 세상에는 사마리아인들이 많이 필요하다. 동물을 버리거나 사람들이 상해를 입었는데도 “못본체 피하여 가는” 인물들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도움을 주는 대신 “보고도 피하여” 가는 일 만은 지양되야 한다. 이런 시기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옳고 그름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있는 태도이다. 주님이 말한 누가 이웃인가?는 단지 강도를 만난 그 분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보고도 피해가는” 일이 아닌 보는 즉시 도움을 줄 수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사마리아인 같은 분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많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 아픈자, 가난한 자들이 많고 우리의 손길을 내주어야 한다고 말한 신명기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한 누가 내 이웃인가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왜 선한 이웃이 필요한지는 여호와의 걱정이며 예수님의 걱정 때문이며 갈라디아서는 우리에게 “그들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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