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November 29, 2021    전자신문보기
뮤지컬 '퀸 에스더'를 관람하고.....

11/04/21       임병남목사

뮤지컬 '퀸 에스더'를 관람하고.....

DownloadFile: KakaoTalk_20211104_155608924.png



제목: 삼무시대(三無時代)를 소망한다

펜실배니아 랭커스터에 있는 밀레니엄 극장(Sight & Sound Theatres)에서는 1년 단위로 매년 뮤지컬 성극을 공연하는데, 금년 2021년에는 'Queen Esther(왕후 에스더)'를 공연하고 있다. 최근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에스더 공연을 관람했다.

관람객들은 극장 안에서 사진촬영과 비디오 녹화가 금지되며, 시끄럽게 떠들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위, 전화기 울림 등과 같이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누구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치며 크게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몇 번 있었다. 그 중에 기억나는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호위병들이 모르드개에게 왕의 의복과 왕관을 씌우고 왕의 말에 태워 거리를 행진하게 하면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같이 하실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올 때이며, 두 번째는 왕의 호위병들이 하만에게 검은 복면을 씌워서 끌고 가는 장면이었다.

관람 중에 조용히 해야 할 관객들이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일제히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사람들에게는 동정심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심한 수치나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박수치고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개는 슬픈 마음, 불쌍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수치를 당하는 하만, 사형을 집행 당하는 하만에게 동정심 대신 관람객들은 왜, 박수치며 좋아했는가?

동정의 대상과 징벌의 대상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이 애매히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거나 부당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동정하게 된다. 이는 동정의 대상이다. 반면에 악한 생각, 악한 행동을 하는 나쁜 사람이 수치와 고통, 죽임을 당하게 되면, 그렇지 않다. 자업자득이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면서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하는 대신 오히려 기뻐하며 환호한다. 이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징벌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는 현장을 보고 표출하는 기쁨은 감정의 조절이 어렵다는 것도 조용히 해야 할 관람장에서 박수치고 환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하수에로 왕의 신임을 얻고 왕의 옥새 반지를 넘겨받은 하만이 자기를 존경하지 않은 모르드개에게 사적인 복수를 위해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달아 죽이고 그가 속한 모든 유다민족을 한 날에 말살하려는 왕의 칙령을 멋대로 만들어 수도인 수산시에 공포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두 사람 중, 하만은 징벌의 대상이고 모르드개는 동정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조용한 극장이 한순간 환호와 박수로 채워졌던 것이다.

백성들에게 높임을 받고 싶어서 꾸몄던 계략에 스스로 넘어가 하만 자신이 아닌 모르드개가 왕의 의관을 입고 왕의 말을 탄 채 시내를 돌며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같이 하실 것”이라 외치는 장면이 나오자 관람객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면 박수를 쳤다. 징벌의 대상이었던 하만이 수치를 당하는 모습이 관객들에게는 통쾌하게 여겨졌다.

또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 했던 장대에 하만이 자신이 매달려 죽임을 당하기 위해 검은 복면에 씌워져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관객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쳤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애매히 죽임을 당할 뻔 했던 모르드개가 구원을 받은 것이 기뻤고, 반면 징벌의 대상이었던 하만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통쾌했던 것이다.

한편, 에스더를 관람하면서 특정 장면에서 환호하고 박수를 쳤던 기독교인 관람객들은 단순히 징벌의 대상인 하만의 몰락에만 기뻐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악인의 손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기뻐했던 것이다. 또 에스더 시대에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셨던 하나님의 섭리가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여전하다는 것을 믿는 믿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말도 안 되는 법과 잔꾀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수 많은 현대의 하만들이 교회와 교계 그리고 이 사회에 존재한다. 어쩌면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만의 계획은 성공하는 듯 싶다가도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에서는 결국 실패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만의 실패에 환호하고 박수치며 그의 수치를 즐거워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퀸 에스더'를 관람하면서, 나는 3무(無) 시대를 소망했다.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사람이 없는 시대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 (잠 17:15) 

둘째, 백성의 탄식이 없는 시대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잠 29:2)

셋째, 숨는 사람이 없는 시대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잠 28:12)

  

페이팔로 후원하기

댓글달기 (100자이내)

내용:

0 자   

댓글(0개)

  
인기 기사
최신 댓글

170-04 Northern Blvd. #2Fl. Flushing, NY 11358
Tel: 718-414-4848 Email: kidoknewsny@gmail.com

Copyright © 2011-2015 기독뉴스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Intonet S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