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우리는 대하기 편하고, 쉬운 사람을 ‘착한 사람’ 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착한 사람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NO’ 하지 않고, 언제나 ‘YES’ 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말은 컨트롤하기 쉬운 사람이 ‘착한 사람’ 이라는 말이 됩니다.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고 살아온 세대는 대부분 잘 참고,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자기 자신을 가치롭게 생각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배려하는 사람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착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착한 사람’은 정작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위해 자신의 진짜 모습은 꽁꽁 숨기고, 내면의 욕구를 꼭꼭 눌러 두고 지냅니다. 착하게 보이려고 자신을 포장하고 꾸밉니다.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맞다고 동의하고, 짜증나면서도 겉으로는 아닌 척 웃어 넘깁니다.
착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피력하거나 주장하지 못하고, 참고 뒤로 미룹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어느 순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리게 됩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때때로 남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지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사랑하는 데 사용해야 할 심리적 에너지를 감추고, 포장하는데 다 써버려 지치게 되고, 불행감을 느끼게 됩니다.
“전,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착한 사람은 남의 시선에 신경 쓰고 살아왔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정확하게 주장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증상을 심각하게 보이는 것을 ‘착한 아이 증후군’ 혹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 라고 합니다. 착한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매여 있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속으로는 ‘이건 아니지’ 하는 마음이 들끓으면서도 겉으로는 고분고분한 척합니다. 이런 경우, 자신을 할퀴다가 뒤돌아서 상대를 괴롭히는, 일상을 반복하게 됩니다.
보통 착한 사람으로 성장한 사람들은 어릴 때 부모가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사람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감정을 누르고 제어하는데 익숙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색하고,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가 권위적이지 않아도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린시절, 가정불화에 시달린 경우입니다.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아이는 사랑받기를 포기하고, 엄마 아빠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심리적 에너지를 사용하고, 압박을 받았습니다. 매번 갈등으로 치닫는 부모를 만족시키려 했던 역기능적인 역할은, 성인이 되어 대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형제 자매 사이에서 편애와 심한 차별대우를 받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남 또는 장녀로서 지나친 책임감을 받으며 성장했을 경우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착한 아이 증후군’에 노출되어 불행한 삶을 이어 가게 됩니다.
간혹 주변에 보면, 착한 사람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내재화하여 본능적으로 실천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성경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착한 사람’ 혹은 ‘착한 아이 증후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저 착한 성품을 지닌, 착하게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류의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쓰고, 진국’ 이라고 이름 붙여 봅니다.
‘착한 아이 증후군’에 빠져 불행을 자초하고 싶지 않다면, 이제라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상대방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좋아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상대가 가지고 있는 것, 상대가 이룩해낸 것들에 대해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고, 진정으로 상대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나갈 이 시대의 착한 사람이란, 부족함도 허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사랑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긍정적인 사람이길 기대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진짜 착한 사람’이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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