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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기억

02/11/22       김금옥 목사

어린시절의 기억


최근에 우리 전도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각자의 어린시절을 기억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린시절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정신건강 계통의 일을 하는 전문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피상담자가 어려서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어려서의 좋았거나 불쾌한 기억들은 10대를 지날 때나 성인이 된 후 그들의 성격발달이나 인간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이유는 어려서 가졌던 트라우마 등 불편한 기억 때문이다. 필자는 상담을 할 때 이런 질문을 한다 당신은 어렸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나요? 당신의 기억 중에 가장 어렸을 때 기억은 몇 살 때 입니까? 당신은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떤 기억이 생각나지요? 등등 끝도 없이 많다. 즐거웠던 기억이 있는 분도, 특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는 분도 있을 것이다. 또는 엄마아빠에게 학교, 친구, 교회 등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는 분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대신 얼굴이 마주치는 것도 싫어했던것을 기억한다는 분도 있다.

 

필자의 친정어머니는 사촌 여동생과 친했는데 나이는 드셨어도 어머니는 한국에서, 이모는 알젠틴에서 뉴욕에 오시면 본인의 집에서 지내셨었다. 두 분은 만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의 어렸던 때 이야기를 마치 어제 같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깨가 쏟아지게 재미나게 말하고 “그때 그랬었다” 라고 되풀이하여 말하곤 점심은 그들이 어려서 할머니가 말아주셨다는 비빔국수를 만들어 드셨다.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늘 재미있어했다. 그들의 언니들 이야기. 얼음이 언 시내를 건너 성탄절 새벽송 돌던 이야기, 추수감사절 연극을 한달 전부터 했다는 이야기, 성경암송대회 때 중간에 잊어버려서 언니가 강단 밑에서 알려주었다는 이야기, 할아버지에게 혼나던 이야기, 그네를 만들어주어 탔다는 이야기 등등 하도 들어서 필자도 다 아는 “그들만의 스토리를 가진”어린이들은 즐겁다. 즐겁고 재미났던 과거의 생활과 풍성한 기억이 그들에게 긍정적인 마음과 자신감을 갖게하고, 꾸지람 없는 가정 분위기에서 성장한 건강한 인간상을 본다. 이런 경험이 당시 감당하기 힘들었을 일본의 압제와 공산당화된 고향을 떠나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오고, 625 전쟁을 겪고, 그 이후의 이모님이 가족과 같이 남미이민을 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 또는 태어난 후 부모와의 관계를 알기 위하여는 어려서의 경험이나 기억하는 내용을 아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유는 인간성격이나 인간관계의 발달에 문제가 된 이슈를 찾아낼 수있기 때문이다. 제가 소아정신과의사였을 때 애기 엄마가 될 분들에게 할 수만 있으면 자녀들이 최소한 5살이 되기까지 아니면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이라도 집에서 양육하기를 바랐다. 이민생활에서 그것이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만큰 아이들의 성장과 후의 삶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애기들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엄마를 만난다. 배고파 울면 당장 엄마가 달려와서 우유를 먹인다. 이것은 엄마의 케어를 받는다는 의미이고 울음은 그친다. 만일 배고파 울어 한 시간이 지나도 젖병을 물리는 엄마를 경험을 못한 애기는 즉시 달려와 젖병을 물리는 가정에서 자란 아기와 다르다. 한 애는 당연히 상대를 믿는 믿음을 가진 아이로, 아니면 불신 속에서 남을 쉽게 믿지 못하고 불안한 성정을 가진채 성장할지 모른다. 애기가 자라면서 기고, 뒤집고 걸음마를 하고 대소변을 가리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우는 때 부모에게서 꾸중을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후일에 자신감이 없고 불확실하며 자신에 대하여 불안하고 긴장하는 아이가 될 수있다. 그러나 꾸지람보다 격려를 주는 긍적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면 후에 삶에서 약간의 잘못이나 실수도 용납하는 너그럽고 긍정적인 자녀들로 자라고 그러한 마인드를 가진채 성숙한 인간관계를 이룬다. 

 

필자의 부친에 대한 기억은 이렇다. 부친은 어린 딸을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다니셨고, 늘 아버지 옆에서 같이 신문을 읽었고, 의과대학에 입학했을 때 부친께서 친구들을 모두 불러 입학잔치를 해주셨다. 이제사 그때 뿌듯했을 부친의 마음을 생각하며 미안할 따름이다. 아이들의 기억은 어떤 큰 경험이 아니다. 부모와의 잔잔하고 작은 매일의 기억들이 많을 때에 자녀들의 마음은 풍성해진다고 전도사님과 동의했다.  

 

 

 

Ps: 필자의 외증조부는 출가한 딸들 외는 모두가 한 집에서 살았으므로 공산화됬을 때 남북으로 헤어진 가족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교회가 둘이 있었는데 한 교회에 쌀을 많이 헌납하여 유치원을 지어 손녀들이 주일학교를 다녔다. 손주들은 방학해서 돌아오면 교회에서 트럼펫으로 찬송가를 연주했다. 증조부는 일꾼들의 일당을 기다렸다가 당일로 주셨고 일찍와서 일하고 식사를 한끼 더 먹여 일찍 집에 보내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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