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한 번 태어나는 것은 수십억분의 1이란 비율로 태어나며
▶︎인간 태어남 의 희귀 성과 신비는 글로 다 할 수 없다
생명 존재의 귀중함 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생명이 가진 가치는 세상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하기에 그 어떤 가치보다 더 값지고 귀한 것 이기에 그렇다. 특히 인간으로 태어난 생명은 세상에 그 어떤 다른 생명 보다도 귀하다. 인간으로 한 번 태어나는 것은 수십억분의 1이란 비율로 태어나며 인간 태어남 의 희귀 성과 신비는 글로 다 할 수 없다
그런 귀한 인간의 생명을 사람도 아닌 동물들이 죽음에서 살려낸 일들이 있어서 우리를 감동케 한다. 2016년 8월20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한 가정집에서 불이 났다. 불난 집안엔 8개월된 여자아이 비비아나와 이 집의 반려견인 폴로만 있었다. 비비아나의 엄마 포렘스키가 아기를 2층에 두고 차에서 물건을 꺼내려 잠깐 내려 간 사이에 불이 난 거다. 불과 연기 때문에 집안에 들어가지 못한 엄마는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소방차가 오고 불은 진화됐다. 엄마 포렘스키가 2층에 올라가 보니 놀라운 현상이 벌어져 있었다. 반려견 폴로가 아기를 감싸고 길게 누워 있었던 것이다. 아기는 얼굴과 팔과 몸에 화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비비아나를 감싸고 있던 반려견 폴로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즉시 폴로를 동물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폴로는 생명을 잃고 말았다.
비비아나의 엄마 포램스키는 “폴로는 비비아나가 태어나면서부터 비비아나의 언니와 같이 어디든 따라다니던 보물같은 존재였다”며 폴로의 죽음을 슬퍼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 아닌 살견성인(殺犬成人)이다. 폴로는 불이 나자 아기를 감싸서 불길이 다가옴을 막아주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거다, 폴로야 말로 의로운 견(義犬)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고사 중에 고려시대 문인인 최자가 쓴 보한집(1230년)에 보면 오수의 개(犬)가 나온다. 전라북도 임실 오수란 마을에서 한 사람이 술에 취해 풀밭에 쓰러져 잠든 사이 불이 났다. 이 때, 주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본 개는 개울에 있는 물에 자신의 몸을 물에 적셔서 주인의 몸에 물을 뿌려주고 주인을 감싸 안은 채 죽었다. 주인은 물론 살았다. 이 광경을 목도한 임실 오수 사람들은 이 개를 위해 의견상(義犬像)이란 동상을 세워주고 지금도 그 개를 기리고 있다고 한다.
2014년 9월. 오레곤 시티의 한 개울가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중이었다. 이 중엔 8살 제시 콜 세이버(Jesse Cole Shaver)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 중 하나가 벌통을 건드렸다. 벌통 에선 수많은 벌들이 쏟아져 나왔고 아이들은 모두 도망을 쳤다. 그런데 미쳐 피하지 못한 제시는 벌들이 달려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 때, 제시와 함께 있던 핏불 하데스란 개가 제시의 옷을 물어 끌고 풀숲으로 피했고 이어 제시의 엄마 있는 곳까지 데리고 가 제시의 생명을 구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개들은 동물 이라기보다 사람보다 더 나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으로 태어났어도 사람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 구실은 마다하고 사람이 사람을 등치고 사기 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억울하게 살아가게 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개보다 못한, 짐승 보다도 못한 인간 쓰레기같은 존재들 이라 할 수 있겠다.
고양이가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경우도 있다. 2014년 2월26일. 미국의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는 고양이 미트볼을 소개한 적이 있다. 미트볼은 다세대 주택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하루는 새벽 잠든 사이에 고양이를 키우던 알렉산드라 말린이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잠에서 깨게 됐다. 깨어보니 도어에서 바닥을 긁고 있는 고양이를 봄과 동시에 매케한 냄새를 맡게 됐다. 이미 연기가 온 집을 휩쓸 정도로 불이 났는데도 그 집에 자고 있던 11명의 사람들은 불이 난걸 모르고 자고 있었다. 이에 알렉산드라는 자는 사람들을 깨웠고 소방서에 연락해 화재가 진압되어 모두 무사할 수가 있었다. 알렉산드라가 키우던 고양이가 아니었으면 11명의 목숨이 하늘나라로 갈 뻔 했다.
폴로가 아기를 놔두고 도망을 쳤다면 비비아나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폴로는 불이 난 이층방에서 비비아나를 계속 지켜보다 결국엔 아기의 곁으로 달려가 그를 감싸 안고 불길을 막다가 죽어갔다. 오수의 개. 주인을 불에서부터 살렸다. 벌에 쏘인 제시를 끝까지 살려낸 핏불 하데스. 나무를 물어 뜯어 시끄럽게 하여 11명을 화재로부터 살려낸 고양이 미트볼. 이들은 모두 사람보다도 귀한 동물들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위하여 죽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동물이 사람을 위하여 죽는 경우는 드물다. 한 번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동물 보다는 나은, 사람답게 살다 가야하지 않을까. 사람을 위하여 죽은 동물 까지는 못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위하며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명 존재의 귀중함 이란 우주 전체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런 사람의 생명을 살려 낸 동물들에게서 인간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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