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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의 자기관리와 축복

03/02/16       김엘리야 목사

갈렙의 자기관리와 축복


반세기 전만 해도, 나처럼 머리가 많이 빠져 머리숱이 적어지고 머리색깔이 은백색이 되며, 허리가 구부정해 걸음걸이가 젊은이처럼 당당하지 못한 사람에겐 늙은이, 노인네, 어르신이란 세 종류 이름으로 불렀었다. 그런데 세 가지 이름 중 어떤 이름을 듣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

식당에 나이든 사람이 들어와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조금 기다려도 될 것을 빨리 안 가져온다며, 주위 손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종업원한테 소리를 지르며 인상을 쓴다. 그러자 옆 테이블에 앉았던 아이가 노인의 큰 소리에 놀라 노인 눈치를 보며 운다. 잠시 후, 노인은 음식을 다 먹고 식당을 나가면서, 아이 부모에게 “시끄러워 밥을 먹을 수가 있나”며 “애 좀 잘 가르치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늙은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두 번째는 나이 많은 노인 대접을 하라는 ‘노인네’다. 버스나 전철에서 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졸고 있는 학생에게 “학생, 자리 좀 내주지. 노인네가 서 있는데...”라고 말한다. 무안당한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면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앉아서 간다. 아마도 젊은 학생은 속으로 “나이 먹은 것이 무슨 자랑인가? 누구나 다 먹는 것이 나이인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겐 ‘노인네’란 딱지가 붙는다.

세 번째는 ‘어르신’이다. 파트-타임으로 열심히 일하는 청년을 보고 “살기 힘들지, 세상사는 게 모두가 다 어려워. 그러나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 테니 힘들어도 좌절하지 말고 잘 이겨내”라며 미소로 위로해주고 젊은이의 어깨를 다독거려 준다. 그때 젊은이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어르신 고맙습니다”라며 인사할 것이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이 늙은이가 되거나 노인네가 되거나 어르신이 되는 것은 ‘자기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해야 할 중요한 덕목은 ‘자기 관리’다.

                          갈렙의 자기관리와 축복

창 11장에는 사람들이 하늘꼭대기까지 닿으려고 진흙벽돌과 역청으로 바벨탑 쌓는 기록이 나온다. 그때 창조주하나님을 대항하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탑을 쌓는 인간교만에 분노하신 하나님은 의사소통이 안 되게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므로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켰다. 당시 바벨탑의 높이가 얼마나 됐는지의 기록이 성경엔 없지만 중세 사람들은 바벨탑의 높이를 대략 6,000m쯤 됐을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첨단과학을 자부하는 21세기현대기술로도 상상할 수 없는 초고층빌딩이지만 당대 네피림거인들은 능히 그러한 거대 웅장한 탑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하늘을 찌르는 높은 건물, 건물이 구름 위까지 올라가는 마천루가  실제로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부터다. 1894년 뉴욕에 세워진 높이 106m의 맨해튼 생명보험빌딩이 그 시작이었고, 그 이후 1931년에 청교도 102명을 기념하기 위해 102층으로 세워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첨탑까지의 높이가 449m에 이르렀으며, 1974년 시카고에 세워진 시어즈-타워 높이는 527m, 2003년에 세워진 대만의 타이베이 국제금융센터 빌딩은 509m, 2014년 중국 상해에 건축된 상해타워는 632m이며, 2008년 4월 8일, 아랍-에미리트에 삼성물산에 의해 ‘부르즈 두바이’란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현대통령인 셰이크 모하메드 갈리파가 개장식에서 자기이름을 붙여 ‘부르즈 갈리파’로 부르게 된 세계최고빌딩은 830m의 높이를 자랑한다(부르즈 갈리파의 한 층 높이(층고)는 평균 5m로 한국 아파트의 2.7m 남짓과 비교하면 거의 2배나 된다) 여기에 맞서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불원간에 무역항인 제다에 높이 1,000m가 넘는 마천루빌딩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

21세기 지구촌은 이렇게 ‘마천루 바벨탑 건축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현재 세계최고인 부르즈 갈리파는 강한 철근과 단단한 콘크리트를 사용했음에도, 높이 솟은 건물을 아래로 잡아당기려는 무자비한 중력과 54만 톤이나 되는 엄청난 무게 때문에 생기는 ‘수직변위 현상’으로 건물이 쪼그라들어 65cm 정도가 낮아질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이렇게 빌딩이 웅장하고 멋있고, 크고 높을수록 건물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퍼 태풍 같은 기상이변과 지진, 최악의 테러와 화재와 정전사고, 무자비한 중력과 강한 수압을 견뎌내야만 하듯,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다른 사람보다 크고 많으면, 그것을 지켜내는 힘과 능력, 그것을 버텨내는 영력과 영권이 다른 사람보다 크고 강해야 한다. 지구촌에 자기가 받은 축복이 남들보다 크고 월등했다가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축복을 받고 축복을 받으려는 사람은 너나없이 무엇보다도 자기를 지키는 자기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늘 본문은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12명 중에서 최종합격자 2명 중 하나였던 갈렙이 85세 때에 “내가 45년 전인 40세 때, 40일 동안 당신과 함께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와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정탐보고를 했을 때, 모세가 말하기를 ‘네가 밟은 땅을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Surely the land on which your foot has trodden shall be an inheritance to you and to your children forever)고 약속했는데,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았으니 이제 그 약속을 지켜 달라”며 여호수아에게 요청한 말이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갈렙의 요청대로 헤브론을 그에게 주었는데, 85세 백발노옹 갈렙은 당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네피림거인장수 아낙 자손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고 작은 산중도시 헤브론을 크고 웅장한 성으로 재건축(Remodeling)했다. 그만큼 갈렙은 85세 백발노옹이 될 때까지 철저하게 자기관리에 성공하므로 늙어서도 큰일을 해낼 수 있었다.
이제 자기관리를 통해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고, 자기 딸 악사를 사사 옷니엘의 아내가 되게 하므로, 여호수아의 후계자가 되는 축복을 받게 했던 갈렙을 알아본다. 갈렙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축복을 받았는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돼야 큰 축복을 받고 큰일을 할 수 있는가?

   1. 세 사람의 갈렙

성경에 36번 나오는 갈렙(Caleb)은 사람이름의 의미로는 Bold(“두려움을 모르는”, “대담한”, “담대함”)와 Impetuous(“성격이 저돌적인”)란 뜻이고, 짐승이름으로는 Dog(“개”)란 뜻인데, 성경엔 갈렙이란 이름을 가진 세 명의 동명이인이 있다 ⑴ 본문의 주인공으로 여분네의 아들이며 정탐꾼이었던 갈렙(민 13: 6, 30, 14: 24, 수 14: 6-15) ⑵ 헤스론의 아들 갈렙(대상 2: 18-20, 42-49절) ⑶ 훌의 아들 갈렙(대상 2: 50)이 있는데, 헤스론의 아들 갈렙은 딸 이름이 악사여서(대상 2: 49)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딸 악사와 이름까지 같아서 두 사람을 혼동하기 쉬운데(나는 오랫  동안 두 사람을 혼동했었다) 두 사람의 다른 점은 헤스론의 아들 갈렙은 아수바와 여리옷과 에브랏(대상 2: 18-19) 세 아내 외에 “흑인”이란 뜻의 에바(Ephah)와 야대(Jahdai) 마아가(Maacah) 세 명의 첩을 얻어 여러 여자들을 통해 대가족을 이루었었다는 것이고. 셋째 부인 에부랏(Ephrath)을 통해 아말렉과의 전쟁 당시 아론과 함께 모세의 손을 붙잡아 주었던 훌(Hur)을 낳았고, 훌은 우리(Uri)를 낳았으며, 우리는 금속세공, 주조술, 조각술, 보석세공, 목각술이 뛰어나 모세의 성막건축을 총감독했던 브사렐(Bezalel; 출 31: 3-5, 35: 32-33, 36: 1)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본문의 주인공, 그니스 사람(The Kenezite) 여분네의 아들 갈렙(수 14: 6)은 출신성분부터 이스라엘 선민혈통이 아닌 비주류였다. 원래 그니스 사람은 팔레스타인 주변에 거주하고 있었던 에돔 족속 중 하나(창 36: 11, 15)로, 순수한 히브리혈통이 아닌데, 어느 날 이 족속 중 일부가 유다지파에 합류될 때, 갈렙도 이스라엘지파로 합류 됐을 것이다. 오늘날 이북에서 남쪽의 혈통이나 부르주아 출신성분을 속이고 살아남거나 공산당원으로 출세하기 위해선 목숨을 거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따라 이집트를 탈출한 중다한 잡족(출 12: 38)들과 애굽의 하급천민 중에서 할례를 받고 율법을 배워 이스라엘지파로 편입되는 일은 어렵지 않았기에 갈렙도 절차를 밟아 유다지파가 된 사람이다.

정탐꾼 갈렙은 그렇게 이스라엘지파로 합류한 비주류청년이었다. 그러나 그가 40세 때, 바란 광야에서 ‘가나안 정탐꾼 열두 명’ 중 유다지파의 두령(Heads of the sons of Israel)으로 선발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한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12지파에서 가장 크고 막강한 유다지파의 날고 기는 기라성 같은 청년들과의 경쟁을 뚫고 유다지파 두령으로 선택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뛰어날 만큼 갈렙은 인내하면서 실력을 갈고 닦으며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12명의 정탐꾼 중에 유다지파 두령으로 모세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는 주류사회나 대세의 중심부에만 있지 않다. 하나님은 12지파 중 가장 작은 지파, 가장 작은 가문, 가장 보잘 것 없는 가정출신의 사울을 선택해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세웠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주류사회 산헤드린 공회 회원을 제자로 삼지 않으셨다. 지식이 뛰어난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사 서기관을 제자로 선택지 않았다.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고 멸시받던 변두리 사람들, 사람들이 외면하고 관심두지 않았던 비주류의 갈릴리어부들을 선택해 지구역사를 바꾸는 사람들로 사용하셨다. 지난 2,000년의 교회사에서도 그리고 100년이 조금 넘는 한국기독교역사에서도 그런 역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변두리사람, 비주류의 사람인 나와 여러분에게도 소망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열두지파 천막 근처에서 피난민 생활하던 변두리 사람, 갈렙이 유다지파 두령으로 선발되고 여호수아와 더불어 쌍두마차로 모세를 보필하는 신앙영웅이 되며, 여호수아의 후계자 옷니엘을 사위로 삼는 축복의 거물이 될 것을 어느 누가 알았고 예측이나 했겠는가? 당신이 어느 날 세계역사에 우뚝 서는 태양 같은 존재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오늘 당신이 변두리사람이고 비주류사람이지만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하므로 이스라엘역사의 중심인물이 된 갈렙처럼 주님께 Pick up돼 지구역사 중심에 우뚝 서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2. 성실한 신앙과 겸손의 사람

갈렙은 본문 7-8절에서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고 했다. 갈렙이 40일 정탐을 마친 후, 여호수아와 함께 담대하게 가나안 공격을 주장했다가 겁에 질린 열 명 정탐꾼들의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위기까지도 겪었다는 추억의 고백이다.

갈렙은 그때를 회상하며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 모세에게 보고했다”(I brought  word back to him as it was in my heart)고 했는데, ‘내 마음에 성실한 대로’의 히브리어 가아쉐르 임-레바비는 “마음에 있는 그대로”, “내 마음에 있는 대로”, “나의 확신에 따라”, “내 마음에 믿어지는 바를”이란 뜻이다. 비록 비주류의 변두리 사람이었지만 갈렙은 자기가 훈련받으며 히브리사람이 된 올바른 야훼하나님신앙 따라 자기가 믿고 있는 바를 그대로 성실하게 보고했다는 고백이다. 그의 성실함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 마음의 성실함을 보신다.
그다음 갈렙은 10명의 정탐꾼들을 “나와 함께 올라갔던 형제들”(My brethren who went up with me)이라고 불렀다(8절) 40일 정탐을 끝내고 돌아와 백성들에게 가나안 원주민의 기세에 눌려 가나안 땅을 악평하고 불신앙적인 보고를 하므로, 그날 하나님의 저주로 죽임을 당했고, 그들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이 40년간 광야생활을 했음에도, 갈렙은 그들을 나의 형제들이라고 불렀다. 갈렙의 겸손한 인격을 볼 수 있는 말씀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놈들 때문에 우리가 억울하게 40년을 광야에서 죽을 고생을 했다. 그 놈들 때문에 광야에서 개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수십만이나 된다. 그 놈들이 아니었다면 광야고통 없이 벌써 가나안에 들어왔을 텐데...그 놈들이 하나님의 저주로 급살 맞아 죽은 것은 천만다행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들을 나의 형제들이라고 부른 갈렙의 겸손은 참으로 훌륭한 인격이다.

50여년 목회 문턱에서나마 그 동안에 나를 괴롭혔고 내게 상처를 주었던 모든 사람들이 불쌍하고 가엽게 생각되고 ‘천국에서 함께 만나 영원히 살 나의 형제자매’라는 마음을 갖게 하심을 감사한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내 마음속에 미운 사람, 보기 싫은 사람, 망했으면 좋은 사람이 없다. 갈렙의 성실한 믿음과 이웃을 보듬는 겸손을 배우는 은혜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약속을 믿고 기다린 갈렙

영국의 하블럭(Havelock)장군이 그의 아들 헨리(Henry)와 런던 거리를 거닐던 중, 갑자기 그날 오후에 있을 중요한 모임약속이 생각났다. 당황한 장군은 별 대책도 없이 아들에게 런던브리지에서 자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채, 약속 장소로 가버렸다.

30분, 1시간, 두 시간...몇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들의 마음은 초조해갔다. 기다리다가 지친 헨리의 한쪽 마음에서는 “아무리 아버지 말씀이지만 더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아마 아버지는 여기서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을 거야. 이만큼 기다렸으면 됐지...차라리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명할거야”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 마음에서는 “아니야, 약속을 지키시는 아버지는 분명히 날 데리러 이리로 오실거야. 아버지가 오셨다가 내가 없으면 얼마나 염려하실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저녁 7시가 돼, 하블럭 장군의 부인은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장군을 향해 근심 띤 빛으로 물었다. “헨리가 어디 갔을까요? 오후 내내 보지 못했는데...” 그러자 하블럭 장군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 그 아이는 런던브리지에 있을 것이오. 내가 정오에 헨리를 그곳에 남겨두고,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해 놓고는 중요한 회의 약속 때문에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마 헨리는 분명히 그곳에 있을 거요”라며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들을 찾아 나섰다.

한편 런던브리지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헨리는 하블럭 장군의 예상대로 거기에 그대로 서 있었다. 런던브리지에서 헨리는 길고 지루한 7 시간 동안 불순종의 마음과 싸웠다. 참으로 그 싸움은 힘들고 어려운 것이었지만, 아버지를 향한 두터운 신뢰가 그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나 잘 믿고 기다리고 있는가?

출애굽 2년째인 BC. 1445년(민 14: 24) 12명의 정탐꾼이 40일 동안의 가나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모세에게 정탐보고를 마쳤을 때, 모세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네가 밟은 땅을 영영토록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될 것이라”(The land on which your foot has trodden shall be an inheritance to you and your children forever)고 맹세한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BC. 1406년, 갈렙이 78세가 되던 출애굽 40년의 정월, 이스라엘의 구국 영도자요 불세출의 영웅인 모세는 갈렙에게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세상을 떠나고, 여호수아는 모세의 추대를 받고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모세의 바통을 이어받아 후계자가 돼 이스라엘을 영도한다. 그리고 7년 동안 정신없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른다. 그래서 갈렙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잊혀 진 사람이 된다.

그렇게 모세의 죽음과 함께 하루아침에 여구앙정(如狗仰頂)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갈렙은 아무런 보상이나 상급도 없이 역사뒤안길로 사라졌고, 여호수아는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린다. 이렇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45년을 묵묵히 기다렸던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45년 전에 했던 ‘모세의 약속’을 거론하면서 약속이행을 요구한 것이 본문이다. 그리고 45년 만에 산중의 작은 성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았다.

오늘 우리 중에는 아브라함처럼 25년이나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요셉과 다윗처럼 수많은 죽음의 위기와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서 어려움을 겪으며 13, 4년을 기다리는 성도도 있을 것이며,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놓고 70년을 기다린 다니엘 같은 성도, 욥처럼 고통속에서 아무 기약도 없는 세월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성도, 갈렙처럼 세월에 묻힌 채 잊혀 진 사람으로 45년 이상을 참으며 묵묵히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성도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아니신 하나님은 말을 바꾸거나 쉽게 변심해 약속을 바꾸지 않으신다. 모세를 통해 했던 약속을 45년 동안 믿음으로 묵묵히 참고 기다리므로 상상치 못한 축복을 받았던 갈렙처럼 66권, 31,102절의 말씀과 꿈과 계시와 환상, 음성과 감동과 영감으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참고 견디는 여러분께 영광스런 응답들이 임하기를 축원한다.
   4. 갈렙의 자기관리

갈렙의 축복은 무엇보다도 자기관리를 통해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자기관리를 잘한 사람이 받고, 자기관리를 잘한 사람이 축복을 오래 동안 보존한다. 갈렙은 여호수아에게 기럇 아르바(Kiriath-arba)를 기업으로 받은 후, 그 땅의 원주민인 아낙 사람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고 거대한 도성 헤브론을 세우는데, 헤브론은 훗날 이스라엘의 여섯 도피성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유명한 성이 된다(수 20: 7)

기럇-아르바로 불렀던 이 성은 ‘아르바의 성읍’이란 뜻으로 거인장수 아르바를 기념해 붙였던 이름인데, 아르바는 아낙 자손의 조상이자 이 족속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다. 민 13: 33절에서는 아낙자손을 거인괴물 네피림이라고 했는데, 오늘날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네피림의 유골을 보면 네피림 중에서 가장 작은 사람은 3-4m 정도이고 보통은 7-9m이며, 제일 큰 사람은 11m나 될 정도로 거인괴물이다(참고로 엘라 골짜기에 나타나 이스라엘을 위협하다가 다윗에게 죽임당한 골리앗(삼상 17: 4)의 신장은 3m 50cm 정도였고, 다윗의 부하장군들에게 죽임당한 4명의 골리앗의 동생 거인들(삼하 21: 15-22)도 장대한 네피림괴물이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 명의 정탐꾼이 겁에 질려 보고하기를 “우리와 그들을 비교할 때,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고, 그들이 우리를 볼 때도 메뚜기 같았을 것이라”고 보고했는데, 45년 후, 85세의 갈렙이 네피림거인 아낙자손을 물리쳐 쫓아내고 헤브론 성을 축성한 것은 갈렙이 얼마나 자기관리를 잘했는가를 보여준다.  

생각해 보라. 갈렙이 자기관리를 못해 병약한 85세 노인이 됐다면, 어떻게 네피림괴물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자기관리에 실패하여 정신력이 약하고 믿음도 약하며, 평안하고 안락한 노후만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아낙자손 네피림들과 싸울 생각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 갈렙은 유다지파 두령이 되는 40대까지 뿐 아니라 90을 바라보는 때까지도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던 사람이다.

갈렙은 건강관리와 신앙 관리를 잘했다. 본문 10하에서 11을 보자.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Now behold, I am eighty five years old)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I am still as strong today as I was in the day Moses sent me, as my strength was then) 싸움에나 출입에나 감당할 수 있다(For war and for going out and coming in)”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없고, 신앙이 없다면 이런 고백이 결코 나올 수 없다. 부족하지만 신앙관리가 어느 정도 돼가는 김목사도 이런 고백이 내속에서 용암처럼 꿈틀거리고 있는데, 관리를 잘해 건강까지 최상의 컨디션이던 갈렙으로선 자신 넘치는 당연한 고백이었을 것이다.

치아관리를 잘한 집사람은 70대인데도 아직까지 젊은 사람 치아만큼 튼튼해 치과의사에게 칭찬을 듣는데, 게으름으로 관리를 잘하지 못한 나는 충치로 치아들이 상하고 썩으면서 하나둘 뽑다보니 냇물의 디딤돌 치아처럼 돼버려 틀니 낀 늙은이가 됐다. 그전엔 못했어도 결혼초부터라도 아내 잔소리를 듣고 치아관리를 잘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하루에도 두세 번을 양치질을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후회가 많다. 그래서 이제는 건강관리까지도 젊었을 때의 만용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조심스럽게 관리를 하고 있다. 갈렙이 85세에도 건강관리가 잘돼 헤브론 성을 축성했던 것처럼 건강관리를 잘 하므로 축복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갈렙은 인격을 잘 관리했다. 갈렙은 40일 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며 목숨을 걸고 가나안 땅을 정복했다가 불신앙으로 자신들도 죽고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광야의 고통을 안겨준 배반자들을 ‘내 형제들’(My brethren, My brothers)이라고 불렀다. 인격관리는 자기 입을 지키는 것이고, 자기의 언어를 관리하는 것이며, 자기 마음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것, 자기 신앙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① 시 141: 3에서 “자기의 입술의 문을 지키라”고 했고 ② 잠 13: 3, 21: 23에서 입과 혀를 지키라“고 했으며 ③ 잠 4: 23에서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Watch over your heart with all diligence)고 했고 ④ 딤전 5: 22, 약 1: 27에서는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고 자기를 지키라고 했으며 ⑤ 요 8: 51, 계 3: 10에서는 ”내 말을 인내로써 지키라“고 했고 ⑥ 마 5: 33에서는 네가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고 했으며 ⑦ 계 2: 26에서는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지키라고 했고 ⑧ 딤후 4: 7에서는 ”믿음을 지키라“고 했으며 ⑨ 민 18: 7에서는 “자기가 맡은 직분을 잘 지키라” ⑩ 계 16: 15에서는 “자기의 옷을 깨끗하게 잘 지키라”고 했다. 지금 여러분은 얼마만큼 자신을 지키고 있는가? 자기관리의 점수는 몇 점인가?

일본의 저명한 여류소설가인 소노 아야코는 만 41살 때, “노년에 경계해야할 것을 기록함”이란 뜻의 계로록(戒老錄)이란 책을 썼다. 아이코는 ‘살아가는 자세에 있어서 좀 주제 넘는 면이 필요한 소설가’였기에 조숙했고, 어떠한 노인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 스스로 다짐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40년이 넘게 스테디셀러로 인기가 있는 책이다. 아야코는 계로록에서 ‘언제부터 노인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면서 ‘받는 것’을 요구하게 된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노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인들은 받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민감한데, 이런 마음상태가 심하면 노화상태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면서 진정한 성년이란 육체적 연령에 관계없이 베푸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남에게 베푸는 마음이 행복이요, 잘 늙어가는 비결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재앙을 가져왔던 10명 정탐꾼들을 ‘나의 형제들’이라고 불렀던 갈렙은 자기의 인격관리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자살자는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고, 그 시체는 도시 변두리에 비석 없이 매장됐으며, 중세 유럽에선 자살한 사람의 죽음은 용서받지 못할 죄였다. 심지어 자살은 ‘악마의 속임’에 넘어간 결과로 보았고, 자살자의 가족은 ‘자살자가족’이라는 낙인을 찍히고 재산을 몰수당하고 모욕과 비난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하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고통까지 받았다. 그러다가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19세기에 이르러 자살은 ‘처벌의 대상’에서 ‘치료의 대상’이 된 후, 오늘날은 자살이 일상적인 일까지 돼버렸다.

지금 한국에서는 한 해에 인구 10만 명당 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 1위다. 그런데 자살은 한 사람이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나지만, 한 명이 자살하면 주변의 5-10명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족의 자살로 고통 받는 유가족이 매년 7만-14만 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자살은 자기관리 실패며 하나님의 축복을 스스로 포기하고 거절한 인생패배자다. 갈렙은 85세에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믿음을 지켰다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 인격관리로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어느 방송인이 쓴 “노년이 포기하지 말아야 할 7포”를 소개한다. 첫째, 이웃을 따뜻하게 안아주라는 포옹(抱擁)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집과 편견에 빠지면 늙은이로 남지만 남을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포옹해주는 사람은 어르신으로 존경을 받는다. 둘째, 나를 뛰어넘어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받아주는 포용(包容)이다. 셋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지혜와 통찰과 경륜으로 반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포석(布石)이다. 넷째, 이웃을 칭찬하고 치하하며 박수쳐주는 포상(褒賞)이다.

한 동안 백발의 조부모가 홍조를 띤 손자녀를 돌보는 ‘황혼육아’가 사회적관심사였었다. 그러다가 황혼육아에서 교육이 추가돼 조부모가 손자녀를 교육하는 ‘격대 교육’이 대세인데, 할머니 할아버지의 지식과 지혜, 경험, 전통 그리고 자상한 칭찬의 교육은 부모들의 교육보다 휠 씬 효과가 좋다고 한다. ‘격대 교육이 오바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고 오프라 윈프리, 빌 게이츠, 리처드 용재, 오닐도 격대 교육으로 성공한 사례이다. 여러분의 넉넉한 품에서 손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게 하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나이 먹은 노인들이 이웃을 비판하고 깎아내리면 보기 싫은 늙은이와 잔소리꾼이 되지만, 칭찬하고 박수쳐주면 존경받은 어르신이 된다. 다섯째, 자기에게 다가온 기회와 상황을 기민하게 분별하고 놓치지 않고 붙잡는 포착(捕捉)이다. 나이로 몸이 늙었다고 상황판단마저 느린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 판단이 기민해진다. 갈렙처럼 기회가 올 때, 잘 붙잡는 사람은 또 다른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여섯째, 백수를 떨게 하는 우렁찬 호랑이의 울음소리, 포효(咆哮)이다. 호랑이가 나이 들었다고 주저 앉아있으면 여우가 비웃고 토끼가 놀린다. 그러나 기죽지 않은 우렁찬 포효는 산에서 산으로 산맥에서 산맥으로 메아리가 되어 퍼져나가 백수를 떨게 하듯 갈렙처럼 ‘내 나이 팔십오 세로되 내 힘이 45년 전과 같이 강건하다’며 포효하는 노인들이 될 것이다. 일곱 번째, 늙음과 낡음의 야만을 쫓아내고 꿈을 선포하는 야성적 충동의 포부(抱負)이다. 갈렙의 포부는 아낙자손 네피림거인을 물리쳤다. 갈렙의 꿈은 옷니엘을 사사로, 악사를 옷니엘의 아내로 만들어 냈다. 꿈과 포부를 잊지 말라. 나이들은 노인에게 꿈은 확실한 보험이다.

지금 당신의 건강과 인격과 신앙과 축복은 몇 층짜리 축복빌딩을 올려 세울 수 있는가? 지상 1,000m의 마천루빌딩을 세우고도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가? 아니면 10층 건물도 벅찬가? 85세의 갈렙처럼 ‘이제 시작이라’고 외칠 수 있는가? 아니면 어떤 사람들처럼 죽도록 일해 살만해지니 병들어 쓰러질 상태는 아닌가?

자기 자신을 관리한 갈렙처럼 마지막 황혼까지, 마지막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자기의 입과 입술을 지켜 언어를 관리하는 성도, 자기의 마음을 지키는 성도, 자기 자신을 지키는 성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성도, 예수님께 한 자기의 맹세를 지키는 성도, 하나님의 일을 끝까지 지키는 성도, 자기 믿음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성도, 자기가 맡은 직분을 지키는 성도, 자기의 옷을 깨끗하게 지키는 성도가 되어, 자기의 인격을 관리하고 신앙과 믿음을 관리하는 성도, 축복을 잘 관리하므로 축복을 받고 그 축복빌딩이 무너지지 않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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