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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힘입어 정욕을 이겨야

06/12/22       김명욱목사

성령을 힘입어 정욕을 이겨야


성(Sex)이란 참으로 미묘한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감성 중의 하나다. 섹스로 표현되는 성은 남성과 여성이 있다. 본래 섹스는 종족보존을 위한 수단으로 남자와 여자는 섹스를 통해 자식을 낳아 기른다. 이처럼 섹스로 인해 후손은 이어진다. 섹스가 아닌 인공수정도 있지만 인공수정은 종족보존형태 방법 중 하나인 대체법으로 사용될 뿐이다.

 현대적 섹스의 의미에는 종족보존을 위해 사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남자와 여자간의 사랑이 아닌 쾌락의 도구로 사용돼 온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오랜 역사를 지닌다. 인간에겐 두 종류의 본성이 있다. 하나는 식욕(食慾)이고 또 하나는 성욕(性慾)이다. 본능의 하나인 식욕에 비해 성적욕구는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 년 전 뉴욕의 한 중형교회를 담임했던 한인목사가 10대 여학생 성추행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되는 기사가 일간지에 실렸었다. 목사는 혐의를 부인하며 절대 무죄를 주장했었다. 사실 여부야 어떻든 성직자의 이름이 이런 사건으로 인해 일간신문에 오르내린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 뿐이 아니다. 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이번엔 대형교회다. 뉴욕의 한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여 성도들과의 간통 사실이 드러나 뉴욕뿐 아니라 미주와 한국에까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는 수십명의 교인을 수천 명의 교인으로 성장시킨 목사였다. 물의를 일으킨 목사는 사임했고 또 교회를 개척해 목회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열 여자 싫어할 남자 없다’는 말도 있듯이 왜 남자들은 이토록 여자를 좋아할까. 결혼 했으면 사랑하여 결혼한 부인만 좋아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예쁜 여자들이 지나가면 흘끔흘끔 쳐다본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남자들은 경적을 울려대는 등 멋있는 여자를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게 남자 같으니 타고난 본능도 이 정도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전에 일간 신문 기자를 하며 취재를 다닐 때다. 독신으로 살아가는 남자 비구 스님들을 만나면 질문하는 것이 있었다. 스님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이냐 는 질문에 많은 스님들이 성문제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성문제란, 성욕을 참아내는 게 가장 힘들다는 거다. 그래도 솔직히 말해 주는 스님들이 고마웠다. 자신의 본능을 참기 위해 손가락에 불을 지피는 스님들도 있다.

 카톨릭 4대 교부 중 하나인 성(Saint) 제롬(Jerome)은 여자의 유혹을 피해 사막으로 달려가 풀뿌리로 목숨을 이어갔고 태양에 그을린 고독한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성적인 환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여인에 대한 환영은 남자의 머리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불가사의 중 하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에 취재 다닐 때 본 것중 하나다. 뉴욕의 한 중형교회 담임목사 사무실에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 있다. 훤히 들여다 보인다. 왜 이렇게 창문을 만들었냐고 질문을 했다. 목사는 창문이 있으면 여성신도들이 찾아 왔을 때 오해의 여지를 없앨 뿐만 아니라 여성 신도들과의 상담 중에 만에 하나라도 있을 서로의 유혹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참 지혜로운 발상인 것 같다. 목사라고 왜, 유혹을 받지 않겠나. 뉴욕엔 수 백개의 한인교회가 있다. 그런데 이처럼 담임목사실이 밖에서 보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목사실은 이 교회 외에는 퍽이나 드물다. 아니 드문 것이 아니라 없다. 성적인 악(evil)은 그 싹부터 잘라내야 함이 옳지 않을까. 욕심이 장성하면 죄가 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른다.

 종족보존을 위한 남 녀 간의 섹스도 사랑이 전제되지 안는 한 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 성직자들의 성(性) 스캔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언제나 없어 지려나. 여인은 사랑의 대상이지 결코 성적 노리개가 아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거든 아름답다고 만 해라. 왜, 만지고 차지하려 하는가. 남자들이여! 참을 수 있다면 죽는 순간까지 참아라!

 성적 갈망은 정욕(情慾)에 속한다. 정욕은 sexual desire, lust 등으로 번역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성욕, 즉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욕구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욕구를 남편이나 아내에게 사용하는 것이 아닌 것이 문제다. 부부가 아닌 타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고 만족스럽게 하려고 하는 목적이 정욕 속에는 숨어 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마태복은 5장27-28)”. 이 말씀은 마음에 부인이 아닌 딴 여인에게 음욕을 품으면 이미 죄 가운데 놓인다는 뜻이다. 인간은 주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다. 방법은 하나다. 성령(Holy Spirit)의 힘을 힘입어 정욕을 이겨내는 길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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