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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범절의 선을 넘으면…

07/31/22       한준희 목사

예의범절의 선을 넘으면…


내가 아는 친구목사는 자기 아내인 사모님을 아주 깍듯하게 대우한다, 존대어를 항상 쓰는 것은 기본이고, 40년 가까이 같이 살면서 마치 무슨 연인같은 그런 느낌으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게 좀 부럽기도 하고 어떤 때는 뭐하는 건지 마치 우리 앞에서만 그렇게 연극한다는 그런 느낌도 든다. 보기는 좋지만 좀 닭살 돋는 모습이 약간은 민망 하기도하다.

내가 물었다. “목사님은 사 모님과 부부싸움 안 하시겠어요?”그런데 그 목사님 말씀이 참 귀에 남게 된다. 싸우기야 싸운단다. 그런데 존대 하면서 싸운단다. 아니 성질 나는데 무슨 존대가 나오나, 그 목사님은 그렇게 서로 존대하다 보니 서로 귀하게 여겨져서 반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아내에게 존댓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아내의 귀함을 덜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나도 존대해 보려고 가끔씩 말꼬리에 “요”자를 흐리게 붙여 볼 때가 있다. 잘 안되지만 친구 목사님 부부처럼 되어 보려고 노력한다.

말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존대 하면서 조심스레 말을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친해지면 공통된 점을 찾게 되고 고향이 같고, 연배가 비슷하고, 학교나 군대를 비슷한 시기에 졸업하면 그런 매개체로 인해 더욱 가까워지는 사이로 발전하면서 서서히 말을 놓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목사들도 장로, 집사가 어리다거나 가까운 사이가 되면 가끔씩 반말로 장로를 부를 때가 있다. “어이 김장로, 이리 와봐” 가깝기에 친근감이 돋보이는 언어다. 그런데 이런 말이 계속 되면 점점 말이 도를 넘어 인격을 무시하는 말로 발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집안에 엄마와 딸의 관계도 그렇다. 딸이 하는 일에 늘 못마땅한 게 엄마 입장이다. 이제 시집갈 나이에 뭐 집안 정리를 제대로 하나, 스스로 밥을 챙겨 먹나, 자기 빨래 자기가 하길 하나, 사사건건 눈에 거슬리기 마련이다. 그러면 엄마 입장에서는 말이 신경질적일 때가 많다. 또 딸이기에 말을 함부로 한다. 자식이기에 무시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다 보면 딸과의 관계가 굉장히 꼬이게 된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가깝다 보니 말을 막하고 막 하는 말이 발전되어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하면서 욕까지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가족관계가 깨지는 경우가 많다.

부부도 동일하다. 30년,40년 같이 살다보니 알 것 다 알고 약점이 뭔지도 안다. 그래서 말을 막 한다.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내가 눈이 삐었지 저런 사람을 선택하다니” “야!” “에이, 저걸 그냥”말을 막 한다. 그러다 보면 쌓이고 싸인 감정이 폭발하게 되고 급기야 이혼하자는 말까지 하게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사와 성도간에도 기본적인 예의도 있다. 아들같고 딸같은 집사들이라 해도 할 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다. 이런 기본적인 예의를 벗어나면 관계는 깨지게된다. 부부관계에서도, 부모와 자식관계에서도, 목사와 목사관계에서도 이런 기본 예의를 벗어나면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깨지는 것이 분명하다.

나이가 들다 보니 이제는 옛 고향친구들이 그리워진다. 스스럼 없이 반말 하면서 지냈던 친구, 그렇게 싸웠는데도 쉽게 잊고 다시 웃으면서 만나는 친구, 그 친구들이 점점 멀어져가고 더욱이 이민생활을 하다 보니 점점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그리운 친구가 되어 가는 아쉬움이 크다.

두 번째로 직업상 같이 어울리게 된 친구들이다. 나이들어 같은 직업군에 속하다 보니 같이 어울리게 되고 또 같은 상황에서의 어려움을 알기에 대화가 통하는 친구로 발전이 된다. 그렇다고 이런 친구들이 옛 고향친구로 생각하면 큰 오판이다. 반드시 인격을 바탕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대화를 해야 오래간다. 직업군에 속한 친구는 말 한마디에 친구 사이가 깨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적어도 아래 위를 구별할 줄 아는 기본도 기본이지만 말도 늘 조심해야 한다. 절대 고향친구가 아니다. 싸우고 다시 술 한잔 하고 화해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조금 친하다고 같은 동년배로 여기고 반말을 함부로 하고 혼자서 아는 체 하고 정도를 넘은 농담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쉽게 깨뜨렸던 사례를 나는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세 번째 분류는 그냥 나이들어 함께 가는 말 동무이다. 그냥 기본적인 예의나 갖추고 터무니 없는 말이라도 그냥 인정해 주면서 인생을 공유하는 그런 지나가는 친구들이다.

인생을 살다보니 이제 고향친구도 있어야 하고 또 같은 직업군 친구도 필요하고 그냥 말동무도 필요하다. 이게 다 인간관계이다. 내 고집 내려놓고 남의 말 들어주는 그런 사람, 그냥 웃어주고 또 슬프면 울어주는 사람, 그게 친하고 안 친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기에 사람으로 대하면서 사는 그런 삶 속에도 반드시 기본 예절이 있다는 것을 말년에 배운 내 인간관계이다.

더욱이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이기적인 시대에 인간관계를 오래 지속 하려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본적 예의범절이 인간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절대 선을 넘지 않는 그런 친구관계가 필요한 요즘이 아닌가 여겨진다.

아무 일이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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