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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본 감사절

11/18/22       한준희 목사

거꾸로 본 감사절


몇 년전 일본에 있던 딸의 생일날이 다가왔었다. 카톡으로 생일 케익을 보냈고 생일 축하한다고 메시지도 보냈다. 메시지를 본 딸이 즉각 카톡 전화가 들어왔다. “아빠 고마워요”그리고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난 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순간 “아빠 뭐가 고마워 내가 고맙지, 날 낳아주고 키워주고 사랑해 주고... 내가 감사한 거지 왜 아빠가 감사해”딸에게 말했다. “네가 내 딸이 되어 준 것 하나만으로도 난 감사해, 그리고 지금 하나님 일을 위해 일본에 가 있는 것도 대견하고 감사하지, 아빠가 더 감사해”

오래전 딸과의 대화였지만 지금도 여운이 남아 있는 말이다. 아빠가 더 감사하지.....

추수감사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함을 제공해 주시기 위해 때를 따라 햇빛과 비를 주시고 좋은 기후를 허락해 주셨고 또 온갖 씨앗들을 주셔서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에 감격하여 감사하는 절기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문득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실까 생각이 든다. 고맙다 내가 제공해 준 풍성한 열매로 나에게 감사하는 너희의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감사하다. 그렇게 하나님도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는 걸까… 

어쩌면 “아빠가 더 감사하지” 그 말 속에 “하나님이 더 감사하지” 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싶다. 그렇다, 우리의 감사보다 우리를 보고 계시고 자녀도 삼으시고 하나님 백성으로 자라남에 대한 하나님의 시선은 “고맙다, 내 자녀가 되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그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감사 아닐까.

그렇게 느껴지는 성경 말씀이 있지 않은가… 탕자가 되어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나가 허랑방탕 재산을 탕진한 아들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버지, 탕자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아버지에게 한걸음 한걸음 걸어 올 때, 아버지는 먼 곳에서 아들을 보고 달려오셔서 아들의 껴안고 입을 맞추고 운다.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다. ‘고맙습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아들이 아니다. 아들 자격도 없는 자다. 그런 아들에게 고맙다. 다시 찾아와서 고맙다. 내가 잃었다 다시 얻었노라. 감사하다. 아들아, 이게 하나님의 감사아니던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함이 있기에 감사를 올린다고 그것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물질을 주셨기에 감사하고, 건강함을 주셨기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있게 하니 감사하고, 편안한 나라에서 부족함이 없어 살아가게 하심에 감사한다고 그렇게 주신 것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는 것일까.

그래도 주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수준에 있는 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뭔지를 아시는 분일것이다. 추수감사절이라고 헌금봉투에 감사예물을 드리면서 어쩔 수 없이 형식이라도 채우기 위해 아까운 헌금을 드리는 손길 속에 무슨 감사가 들어 있을까… 오죽 감사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절기를 만들어 감사를 표현해 보자고 추수감사절을 제정했을까.

거꾸로 보자, 주신 것 때문에 감사하는 절기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존재로 보고 계시고 그 죄악에서 눈을 떠 하나님을 보는 시각을 가진 것 하나만으로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더 감사하지”그렇게 생각해야 감사절의 감격이 더해지는 것 아닐런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감사하기에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신다. 먹을 것, 입을 것, 살아갈 것, 삶에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신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 자녀로 존재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의 선물을 제공해 주신다. 

6년만에 얻은 자식을 처음 보는 순간 난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고맙다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것도 고맙고 내 자녀가 되어 준 것도 고맙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시 시작했다. 내 아들이 필요한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제공해 준다. 내 자녀가 된 것에 대한 감격 때문에...   

추수감사절은 그렇게 감격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손짓이다. 아이가 엄마를 보고 방긋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엄마처럼, ‘우리가 모든 게 다 감사해요’ 그 진정한 고백 안에 하나님께서는 한없이 기뻐하실 것 아니겠는가…

또 하나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손짓이 우선 이라면 그 다음은 이웃에게 감사하는 행위이다. 거꾸로 보자, 저 이웃이 있기에 내가 존재했고, 사랑하는 대상자가 있었기에 행복을 누렸고, 물질을 제공한 만큼 뒤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 주고 제공해 준 이름없는 분들의 수고가 나를 존재케 하지 않았는가. 이 모든 것이 감사의 대상아니던가. 하나님에게는 손짓으로 감사해도 섭섭해 하지 않으실지 몰라도 사람에게는 마음만으로, 눈빛으로 감사한다고 감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물질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 감사는 허공 잡는 감사일뿐이다.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고침받은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자기 몸을 보는 순간 꺼꾸로 고쳐주신 예수님을 보는 시각을 가진 것처럼, 감사는 은혜 받은 나를 보는 순간 선물을 주신 그분에게 방향을 돌리는 것이 진정한 감사의 시작이 아닐까 본다.    

감사함을 꺼꾸로 보면 나보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이웃이 보여진다는 이 비밀이 이번 추수감사절에 모두에게 비춰지길 기도해 본다.

열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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