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그리 큰 편이 못되어 열등의식이 있는가 봅니다.
저는 아내와 키가 똑같다 하고 아내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저 냉소합니다.
서로 돌아서서 등을 맞대고 키 재보기도 여러 번 하였는데 그때마다 서로 하는 말이 늘 똑같습니다.
“봐, 같잖아.”
“뭐가 같아? 까치발로 서니까 그러지.”
“내가 언제?”
“다리 후들후들 떨고 휘청거리면서도 그런 소리를 해?”
가끔 머리 식히려고 읽는 “노자”의 한 구절이 생각나며 얼굴이 달아오르는 순간입니다.
기자불립 (企者不立) 하고 - 발돋움하는 자는 (까치발로 서는 자는), 서지 못하고
과자불행 (跨者不行) 하고 - 가랑이를 벌리고 걷는 자는, 가지 못하고
자현자불명 (自見者不明) 하고 -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밝지 못하고
자시자불창하고 (自是者不彰) - 스스로 옳다 하는 자는, 빛나지 못하고,
자벌자무공 (自我者無功)하고 -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공이 없어지고
자긍자불장 (自矜者不長) 이니라 - 스스로 자만하는 자는 우두머리가 되지 못한다.
같이 살 맞대고 사는 아내에게도 지기 싫어 까치발로 서서 후들후들 떨고 휘청거리는 자가 과연 올바로 설 수 있겠는가?
진짜로 아내보다 한 뼘이라도 더 컸으면 과연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착각하며 살지 않았겠는가?
나는 얼마나 많이 자신을 과장하고 뽐내며, 과시하는 경솔함과 경거망동을 해왔던가?
내가 무엇을 했다고,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고 자랑하는 순간 그나마 공이라 할 수 있는 것도 다 없어지는 것이 올바른 이치일 터인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떠벌리며 다녔던가?
“노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재도야 왈 여사췌행 물혹오지 고유도자부처 其在道也 曰<餘食贅行>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이런 것들을 도의 입장에서 보면 먹다 남은 찌꺼기요, 쓸데없는 군더더기 살이다. 누구든 이런 것들을 미워한다. 그래서 도를 지닌 사람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도 실은 “노자”와 비슷한 뉘앙스로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마 19:30 새번역)
“네?”
“어허, 그러니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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