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June 22, 2024   
사순절 신앙 : 절기와 이벤트에 집착하지 말라

03/03/23       임병남목사

사순절 신앙 : 절기와 이벤트에 집착하지 말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탄절과 함께 부활주일은 매우 의미 있는 절기로 받아들여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신앙이 식어져갈 때에 신앙의 회복을 위해 유월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절기를 지키도록 했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마다 지키는 절기들은 개인의 신앙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순절도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사도들의 시대가 끝나고 신앙이 점점 식어져 가자 예수님을 믿는 부활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부활절을 신앙으로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결국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사순절(40일)이 제정되었다. 처음에는 40일 계산의 논쟁이 있어 왔으나 6세기에 교황 그레고리 1세(590~604 재위)의 명령으로 통일되었는데 부활절 전 6개의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사순절로 정하게 되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교회 역사에서 전통적으로 금욕과 고행에 초점을 맞추어 사순절을 지키려 했던 것처럼 요즘 교회들 또한 이 기간 동안에 신앙의 회복이나 경건을 위해 금욕과 고난 그리고 신앙 부흥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들을 진행한다. 금식, 미디어금식, 십자가 행진, 특별새벽기도, 부흥집회 등이 대표적 사순절 행사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사들은 사순절 마다 매년 반복되어 온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러한 행사들이 개인의 신앙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사순절을 지나면서 믿음이 없던 사람이 믿음이 생기고 의심하던 사람이 확신하게 되며 게으르던 사람이 열심을 갖고 믿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이던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살고자 힘쓰며(마 16:24, 갈 2:20), 또 남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해 하고 사람들에게 높임 받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죄인을 섬기셨던 예수님을 바라보며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사람들을 섬길 결심을 해야 한다. 

그동안 세상 삶에서 짓눌렸던 것들과 믿음의 수고가 오히려 커다란 짐이 되었던 사람들이 십자가의 신앙을 통해 자유를 얻고 쉼을 얻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순절 기간 동안 여러 특별 행사들이 성도들의 이러한 신앙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단지 사순절 이벤트에 그치게 된다면, 교회 목회자들이나 사순절 행사를 계획하고 주관하는 사역자들은 사순절 행사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금욕적 고행이 곧 신앙은 아니다. 십자가를 지고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하루 한 끼 금식, 3일 금식, 1주일 혹은 40일을 금식한다 해도 금식하는 것, 그 자체가 곧 믿음의 증거는 아니다. 금욕이나 육체적 고난을 스스로 감내하는 것이 곧 믿음이 아니라는 얘기다. 무릎으로 기어서 성전 계단을 오른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고행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에서도 수행의 방편으로 삼는다. 불교에서는 출가하여 독신생활, 매일 독경과 염불, 종일 이어지는 면벽좌선, 며칠씩 수면을 하지 않는 용맹정진 등을 통해 세속에서 벗어나 수양을 하지만 이것으로 그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행 자체가 신앙의 증거가 아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에서 자연스레 고난을 겪게 될 때에 이것을 피하거가 거부하지 말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끝까지 참고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요,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사 53:5)는 것을 알고, 예수로 말미암아 나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나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도 맞대응 하지 않고 참고 받아들인다면 이것이 믿음이요 여기에 축복의 약속이 있다.(마 5:11)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다.(벧전 2:20)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라고 했다.(히 11:1) 보이지 않는 사물이나 관념을 표현할 때에 상징이나 의식을 사용한다. 믿어지지 않으면 상징적 증거들을 찾게 되고 의식이나 형식에 매달려 이벤트를 끌어들인다. 요즘 교회들이 상징적 의미를 갖는 여러 가지 행사들, 특히 사순절과 같은 절기에 이벤트에 집중하려는 것도 성도들의 믿음이 식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체를 모르면 상징은 의미가 없고 실체가 사라지면 그림자도 사라지며, 의미를 빼면 형식만 남게 된다. 금식과 특별새벽기도, 그리고 십자가 거리행진과 같은 사순절 행사들이 그 의미와 실체를 잃어버리면 형식만 남게 되고 이벤트로 끝이 난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의 금식은 의미를 잃어버림으로 형식만 남게 되고 단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외식으로 치우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옥에도 갇히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고후 11:23-27) 이것은 이벤트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선교와 믿음의 삶을 사는 과정에서 실제로 겪었던 경험에서 온 것이었다. 

요컨대, 우리는 사순절 기간 동안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맞으면서 이벤트에 집중하지 말고 단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능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과 같이 모욕을 당한 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 즉 참고, 비방을 받은 즉 권면하며, 마치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됨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신앙으로 즐겁게 받아들이는 삶이 일상의 신앙생활 중에 전도나 봉사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사순절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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