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목사시절, 처음 부임한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다.
담임목사에게 뿐만 아니라 성도들 앞에서 설교의 첫 선을 보이는 순간이라 무척 긴장을 했다. 설교를 마치고 성도들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에 난 무척 기뻤다. 그렇게 설교를 잘하는 목사는 처음 본다는 말, 우리교회 말씀의 종이 들어왔다는 이런 말들이 나를 흥분시켰다. 첫 설교가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 이후로 몇번의 설교를 하였지만 그때마다 칭찬이 자자했다. 많은 성도들이 은혜받았다고, 너무 말씀이 좋다고 한다. 언젠가 담임목사님께서 한국에 부흥 집회를 인도하시러 갔었다. 건 3주를 담임목사의 역할을 하여야 했다. 새벽 기도회부터 수요, 금요설교는 말할 것도 없고 주일예배 때는 4번의 설교를 해야 했다. 그뿐인가 매일 심방을 하였고 또 장례예배까지 인도했다, 담임목사님께서 안 계시는 동안 완벽하게 모든 일을 감당했다.
미래에 큰 교회도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훈련을 시키신 것같다. 그저 겸손하게 감사하게 머리를 숙이고 있어야 하는데 내 속에는 나도 담임목사 못지않게 할 수 있다는 자만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담임목사님 설교가 귀에 안 들어온다. 저걸 설교라고하나, 설교를 비평하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고 불평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도 얼마든지 목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급기야 부목사를 그만두고 개척을 선언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목회를 은퇴할 나이가 되어 지나간 부목사 시절, 그렇게 오만했던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얼마든지 큰 목회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던 그때, 그때 내가 깨닫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을 목회 말년에 가서 깨달았다,
목회는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철없던 젊은 시절, 직장생활을 하면서 윗사람들에게 꽤나 인정을 받았다. 더구나 회사에 큰 이익을 만들어 낸 공로로 장관 표창장까지 받았다. 이제 난 출세 가도를 달린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돈도 벌수 있다는 눈도 생겨서인지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대단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모든 것을 내려 놔야 할 나이가 되고 보니 누군가의 말대로 사업을 아무나 하나, 이 말이 실감이 난다. 비즈니스에 도사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체들이 하루에도 수백 개씩 문을 닫고, 도산의 위기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는데, 이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어서 절망하고 있겠는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말 파란만장하다.
사업 때문에 밤잠을 못자고 괴로움 속에서 지낸 세월이 하루 이틀이던가. 예기치 않은 문제로 인해 그렇게 가까웠던 친구에게 고소를 당하고,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손님들과 직원들과의 마찰도 큰 어려움을 겪는 일은 보통이고 직원끼리의 감정적인 충돌로 인해 비즈니스에 상당한 타격을 받아야 했고, 갚아야 할 돈이 마련되지 않아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절망한 적이 한두 번이던가, 한마디로 사업도 전쟁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몸으로 싸우는 실전이다.
목회가 이와 같다,
성도들로 인해 밤잠 못 이룬 적이 하루 이틀인가, 밤1시고, 2시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자기 하소연하는 성도의 하소연을 들어줘야 하는 인내심 싸움을 한두 번 했던가, 목사의 설교가 자기를 지적해서 설교했다고 온갖 모욕을 다 주는 성도를 다두기면서 이끌어온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목사가 뭘 잘 못했다고 자기를 섭섭하게 대했다는 이유로 별별 루머를 다 만들어 교회를 분란시키고, 급기야 교인들이 양 진영으로 갈려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뭐라 표현해야 할까, 부목사는 부목사대로 담임목사 편에 서지 않고 성도들 편에 서서 공격을 하고, 교회를 갈라놓는 일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시도하는 일을 어떻게 대응할까.
목회가 어찌 성도들을 양육하는 데만 국한시키겠는가, 목사가 목사를 고소해서 법정에 끌려 다니게 하는 일로 인해 목회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목회가 분명 사명인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집 렌트비를 못 내고 밥3끼 먹고 살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되자 사명보다 우선하는 것이 먹고 사는 것이라는 현실을 깨닫고부터 목회보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쪽으로 가야하는 고통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그런 의미에서 목회는 전쟁터다. 직접 경험하고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상처투성이로 싸워야 하는 전쟁터라는 것, 바로 목회는 이론이나 생각이 아니라 실전이 아니고 뭐라 말해야 하나.
목회는 실전이다.
책이나 보고, 세미나에서 배웠다고, 또 다른 목사의 목회 성공 사례를 듣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목회는 잘할 수 있다고, 열심히 한다고, 많이 배웠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크던 작던, 많던 적던, 좋던 나쁘던 주어진 현장에서 주어진 성도들을 예수님에게로 갈 수밖에 없도록 언행으로 보여주는 이정표라는 것을 목회 30년 실전에서 나는 배웠다.
한마디로 목회는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순종하는 과정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
예수를 알려면 스스로 밤을 새우기를 수도 없이 해야 하거늘,
스스로 생명을 찾고자 생명을 구하고자 하여
두드리기를 수도 없이 해야 하거늘,
그리고 알았다면 진실로 사랑한다면
자기가 아는 것을 수도 없이 밤낮없이 전해야 하거늘,
죽은 영들에게 생명을 심어주는 일을 가장 부지런히 해야 하거늘,
코미디같이 하는 설교, 기적이나 신비를 추켜세우는 설교,
신학이나 철학적 요소로 유식한 것처럼 하는 설교,
그저 사람의 비위나 맞춰주는 설교, 이런 것들이 영을 살리나요?
진실로 예수를 알고 진실로 예수를 사랑한다면
언제어디서나 열정적으로 자기가 아는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한테 배우지 마시고
말씀 속에 계시는 성령이신 예수로부터 직접 배워야 합니다.
배우면서 예수 이름을 부르고 직접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올바로 전하고 계십니까?
아니 나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로 부르고 있습니까?
말씀 속의 성령, 곧 하나님이신 예수로부터 직접 배우십시오.
보혜사란 깨닫게 해주시는 스승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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