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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9/16       한준희 목사

말 잔치


 오래전 한국 총회에 처음으로 참석한 일이 있었다. 무슨 안건을 처리하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고성이 오가는 싸움판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목사들이 이정도의 수준인가 하는 의아심도 들었고 도대체 무슨 안건이기에 저렇게 싸움을 하나 하는 호기심도 가지게 되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갑의 주장과 을의 주장이 별반 다른 바가 없어 보이는데 그분들에게는 목숨이 달려있는 양 고성이 더 심해지더니 급기야 강단 위로 뛰어 올라가 마이크를 뺐고 밀고 당기고 몸싸움까지 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때 사회자가 강단 위에서 두 손을 하트 모양을 만들면서 ‘사랑합시다, 사랑합시다’라고 외치는 것 아닌가. 앉아있던 총대 목사님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강단에 올라 몸싸움을 하던 목사님은 졸지에 사랑이 없는 싸움이나 일삼는 파렴치한 목사로 보여지게 되는 광경이 연출된 것이었다.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럼 싸움을 하는 목사는 사랑이 없어서 싸움을 하고 있고, 하트 모양을 하고 ‘사랑합시다’ 하고 외친 목사는 사랑이 많은 목사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과연 사랑하자고 말을 했다고 그분은 사랑이 많은 목사일까?

 성도들이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이 말에 대한 명분이 아닌가 본다. 어려움에 닫친 성도가 목사님께 상담을 하면 결론은 뻔하다고 한다. ‘기도합시다.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라고 가장 분명한 해답을 내 놓음으로써 성도를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 성도는 명분 있는 그 결론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심정을 이해해 달라는 하소연일 것이다. 그런데 ‘기도합시다’로 끝내버리면 과연 끝나는 것일까

 오히려 어려움을 당한 당사자는 그 누구보다 더 많이 기도했고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으리라 본다 어쩌면 한마디로 그 목사보다 더 기도를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도합시다. 라고 말한 그 목사는 기도 많이 하는 분이고 어려움을 당한 그분은 기도가 없는 분일까? 과연 ‘기도합시다’라고 말한 그분은 기도를 많이 하신 분일까?

 목사님들이 모여 좌담을 하고 현실적인 교계의 어려움을 논의한다. 오늘날 이 시대는 교회가 세속화된 시대이고,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 있는 교회들이 되었고 목회자들이 부패했고 인격적으로 자질이 부족하고 등등 온갖 부조리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한다. 1000명 10,000명의 목사가 모여도 똑같은 소리를 외친다. 그럼 그렇게 외치는 목사들은 성토하듯 외쳤다고 그 외침 때문에 그들은 세속화되지 않은 목사이고 부패하지 않은 목사들이냐 하는 말이다. 그렇게 외쳐놓고 그렇게 의로운 말을 하였다고 그들이 의로운 사람들이냐 하는 뜻이다.

 말은 그럴듯하다. 말만하면 그 말이 다 된 것인 것으로 착각하는 ‘말잔치’가 이 사회를 더 부패하게 하는 원인이 아닐까?

 ‘사랑합시다’고 말을 했으면 당연히 사랑을 해야 그 말이 성립되는 말이지 ‘사랑합시다’라고 해 놓고 사랑하지 않으면 그 말은 명분 좋은 ‘말잔치’ 외에 뭐가 되는 것이냐 말이다. ‘성경으로 돌아갑시다’라고 말을 했으면 성경으로 돌아가야지 말은 해 놓고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것은 성도를 기만한 것이고 말한 자신을 속이는 것이 분명한 것 아닌가? 속이는 말, 기만하는 말잔치가 무성한 시대이다.

 말을 들어보면 다 거룩하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목사들을 거룩한 분들로 성도들은 보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행동은 안 믿는 세상 잡배들보다 못할 때가 있으니 수많은 성도들이 이제 그 말씀(설교)를 들으려하지 않는다. ‘말잔치’로 끝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명한 목사가 와서 외쳐도 그 말은 이제 기만하는 말로 밖에 안 들리기에 성도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교인들이 부흥회에 몰려오지 않는 이유는 바로 행동하는 목사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할렐루야 복음화 대회는 말잔치가 아닌 행동하는 강사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게 큰 교회 목사님인데도 작은 식당에서 8불짜리 런치스페셜을 드시는 목사의 모습이 보여지고, 엘란트라 작은 차 타고 다니는 목사였으면.... 그 흔한 목회자 세미나로 자기는 이렇게 교회를 부흥시켰다는 쪽 집게 학원 강의식 세미나 보다 작고 어려운 교회를 찾아가서 기도해 주는 그런 행동하는 모습이 보여주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용솟음친다. 설령 그것이 보여주기 식 쇼라 할지라도 말이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사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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