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 June 12, 2024   
예수님을 보다

04/11/16       김금옥 목사

예수님을 보다


지난 3월 주님의 부활을 축하했다. 부활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들과도 다른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그날 아침 이후 세상은 변했고 삶의 의미가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을가? 독생자 아들이 온 인류의 죄의 대속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후 그 아침은 새로운 아침이었다. 아들이 대신 진 십자가의 의미를 알면 변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살아계실 때 죽으시고 무덤에 묻힌 사흘 후에는 다시 살아날 것을 말했다. 부활을 본 적이 없는 제자들과 갈릴리에서 따라 올라온 여성들은 부활의 모습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모르므로 모두가 기다렸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몇 마리아들은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로마 병정들이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지만 그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주님이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시고 그분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날이 아직 어두운데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갔다. 얼마나 극진히 주님을 생각했는지 그녀의 행적이 말해준다. 아직 어두울 때, 해가 돋기 전인데도 마리아는 무덤에 갔는데,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제자에게 달려가서 주님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 같다고 말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도 무덤에 달려가서 머리를 쌌던 수건과 세마포가 따로 놓여있는 것만 발견하고는 돌아갔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것이 제자들과 주님을 만난 마리아와의 차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빈무덤 앞에 서 있었다. 마음이 상한 마리아가 울다가 무덤 안을 드려다 보니 앉아있는 두 천사를 보았다. 누군가가 주님의 몸을 옮겼다고만 믿고 있는 그녀에게 주님이 부활해서 무덤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정원사인줄 알았던 분이 예수님인줄 알았지만 예전의 예수님으로만 생각한 그녀였다. 예수님을 만나 병도 나은 마리아였고, 옥합을 깨뜨려 장례까지 준비해서 칭찬까지 받았으나 부활 주님은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마리아에게 주님이 자신을 보이신 것이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가장 먼저 다시 사신 예수님을 본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가장 먼저 본 마리아는 참으로 복된 여인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신의 다시사심을 제자들에게 가서 말하라고 메세지를 받았을 때 주님이 참으로 부활했음을 확신했다. 주님의 부활을 깨달은 마리아는 뛰어가서 제자들에게 “다시 사셨음”을 전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 주님의 부활을 전하라고 내게 말하셨다”.  

막달라마리아는 더 이상 예전의 마리아가 아니다. 마리아도, 이 세상 사람들도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는 달라졌다. 마리아는 달라진 세상을 달라진 안목으로 보았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다.  직접 자기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보았고,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부르는 그의 음성을 들었고, 자신의 부활을 알린 그 분이 부활 이전부터 알던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안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로 만물이 소생되니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주님의 부활로 만물도 변화됐기 때문이다. 사람도, 나무도, 꽃도, 아마도 새들도 모든 동식물도 주님의 부활로 인해 변했다. 죽었던 생명들은 숨을 쉬고, 기운이 없던 생명은 기운을 차렸고,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은 희망을 보았다.

새들은 노래를 부르고 꽃들은 기뻐서 웃었다. 예수님의 부활이 만물을 아름답게 변화시켰눈데 마치 창조의 첫 날 같이 회복시켰다. “보기에 좋았더라” 라고 말씀하신 그 날 같이 아름다웠다.

부활은 모든 상처들을 치유한다. 상한 심령들은 위로를 받고 회복되고 상처는 본래의 생동하던 모습대로 살아난다. 그것을 우리는 사람들, 막달라 마리아, 베드로, 사도 바울 등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아 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상처를 받고 고통받던 사람들이 회복되는 것을 본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일등 제자 였지만 그를 부인한 죄가 있다. 예수님은 법정에서 불의의 재판을 받고있는데 자신은 춥다고 불 가까이 가려다가 사람들에게 들키고 “자기는 아니다, 나는 모른다” 라고 말했다.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지만 아마도 민망했을 베드로는 친구들과 같이 고향으로 돌아와 예전의 고기잡이로 돌아가려한 부끄럽고 면목을 잃은 그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의 생애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 부터 가장 중요한 세번의 질문을 받았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기 한마리 못잡고 기운빠진 그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이 먹을 아침까지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조반 후에 예수님이 진지하게 베드로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이 질문을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님은 아십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이 질문한것은 앞으로 그가 어떤 일을 해야할 것인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주님에 대한 확신과 사랑만이 베드로가 어렵고 큰 일들을 해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님에 대한 미안함과 그가 뱉은 말에 대한 깊은 회한으로 상심해있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사랑으로 다가오셨다. 아마도 어떤 이유로 마음이 괴롭고 아픈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먼저 다가간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아도 될 것이다.

가장 마음 아프고 미안했던 베드로에게 주님이 다가 가셨다.    

부활은 엄청난 생명의 힘을 사람들에게 준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갈릴리 바닷가에서 만난 후에 달라졌다. 베드로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미안했던 마음이 주를 만난 후 회복되었다. 성령강림절 이후의 베드로의 행적이 말해준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로 모든 악한 일을 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그는 주의 신실한 일군이 되었다. 그의 마음은 감옥에서도, 매를 맞으면서도 평온했다.

주님의 부활은 모든 상한 심령들을 고쳐주고 회복시킨다. 어느 집사님이 말했다. “흘러가는 구름이 아름다워요. 길거리 잡풀이 왜 이렇게 이쁘지요?”.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이 주님을 만나본 백성들의 눈이다. 주를 만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눈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부활은 사람들의 걱정을 기쁨으로 변화시킨다. 슬픔이 없어졌다면 주님을 만나 기쁨이 생겼기 때문이다. “슬픈데도 슬프지가 않고, 화가 나야하는데도 화가 안나더라”고 부인이 말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눈에는 미움도, 미운것들도 아름답게 보이는 눈과 마음이 되는 이유는 주님이 그렇게 원하는 “변화된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걷히면 새벽은 우리에게 늘 기쁨으로 다가온다. 밤의 어둠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곧 해가 떠오른다. 새날이 밝은 것이다. 힘든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만 참아 곧 새벽이 온단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해가 떠 오르면 어둠의 새벽은 걷히게 되어 있다. 어둠이 새벽의 빛을 감당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이 부활하신 그날은 모든 것이 새롭게 갱생된 날이다.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자신들이 새 사람이 된 것을 깨달아야 한다. 새날이 왔다는 것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우리의 몸, 마음, 생각이나 행동이 예전의 나와는 달라진 새 창조물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주일예배를 드릴 때 죄의 고백과 회개, 용서의 시간에 늘 듣는 말이 있다. 주님의 용서를 받은 우리는 새로운 창조물이 됐다는 것이다. 주님의 부활로 새 창조물이 되었음을 말한다.

죄에 물들었고 오염되었던 인간을 비롯한 만물이 그날 아침 이후로 새롭게 변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정신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스천의 부활절은 그러므로 다르다. 세포의 형질이 달라지듯 내 안의 모든 내용이 다 달라져야 한다. 생각도, 기분도, 마음도, 몸도, 영혼도.

안식일 날 아침 누구보다 일찍 먼저 묘지에 간 마리아는 빈무덤을 보고 잠시 절망에 빠졌지만 부활하신 주를 만났다. 그렇게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본 것이다. 우리 모두는 마리아 같이 부활주님을 만나보고 싶어 한다. 마리아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 주위를 맴돌 것이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변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새로운 날이 밝았기 때문이다.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더 이상의 고통이 있을수 없고 아픔은 사라진 희망의 날이 시작되었다. 그분 때문에 사람들은 희망을 발견했다. 주님을 만나고, 당신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내가 그분을 보았다” 라고 말하는 것을 기쁜 일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환상 중에 여호와에게 나는 죄인이라면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할 때 천사를 시켜 입술을 정결하게 했다.

떨리는 일이지만 이사야가 만난 주님, 마리아가 만난 주님, 베드로, 바울이 만난 주님을 만나는 축복은 모두가 바라고 소원하는 일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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