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극단 선택…'모방자살' 10대 더 취약
청소년 자살·자해 급증
전문·체계적 정신건강 지원 필요
생명존중문화 확산해야
청소년 자살률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몇 년 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유는 '미지의 영역'이다. 청소년에 대한 전문적·체계적인 정신건강 지원을 비롯해 자살예방을 위한 생명존중문화를 확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강남의 한 건물에서 10대 여고생이 SNS 생방송을 켠 채 뛰어내려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생중계된 영상을 지켜본 이용자는 20여 명에 불과했으나 영상은 각종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무차별 재확산됐다.
얼마 후 서울 강남구의 한 중학교에서는 남학생이 흉기 난동을 부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며칠 뒤엔 강남 압구정의 한 아파트에서 중학생이 떨어져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일주일 새 서울 강남에서만 10대 세 명이 연달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10대들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베르테르 효과가 현실이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 등이 극단적 선택을 할 경우 이를 모방하는 현상을 뜻한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간접적이라도 '극단 선택'에 공감할 만한 상황을 경험했거나 해당 사건에 상당 시간 노출된 청소년들은 사건 당사자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다.
단순히 유명인과 자신을 동일시해 극단 선택까지 모방하는 기존 베르테르 효과의 개념이 '확장'된 셈이다.
베르테르 효과는 10대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일수록 베르테르 효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4월 16일 10대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SNS로 중계한 사건 이후 청년 자살 관련 신고가 급증했다. 서울경찰청은 4월 17~24일 하루 평균 청소년 자살 관련 신고가 같은달 1~16일에 비해 30.1% 증가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이후 자살 의심과 자해를 포함한 청소년 자살 관련 신고가 단기간 급증했다"며 "유사한 사례도 연이어 발생했다"고 말했다.
▲텅빈 교실. (사진출처=연합뉴스)
높아지는 청소년 자살률
더 우려스러운 건 자살 관련 국내 통계에서 청소년 자살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의 극단적 선택이 급증했다는 자료는 수 차례 발표됐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간한 '아동·청소년 삶의 질 보고서 2022'에 따르면 최근 4년(2017~2020년)간 청소년 자살률은 44%, 10대 자살자해 시도는 69% 증가했다.
2020년 청소년 사망자 중 절반(50.1%)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은 2011년부터 청소년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율이 50%를 넘긴 것은 처음이다.
의료현장에서도 청소년 자살시도가 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중앙의료원과 경희대병원, 서울의료원 연구팀이 전국 400여 개 응급의료기관에서 수집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6~2019년 4년간 자살시도로 응급실을 찾은 14~19세 청소년이 2배 이상 증가했다. 2016년부터 매년 35.6%씩 늘어난 결과다.
여기에 코로나19 장기화로 청소년의 심리·정서적 위기가 늘고 있어, 자살·자해로 이어질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정신건강 위기학생으로 인지된 학생의 자살은 2016년 36.1%에서 코로나가 발생한 2019년 51.4%로 급증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온라인 자살 유해정보 폭증…일부 커뮤니티선 방조·유도
청소년의 자살률이 증가한 데는 심리·정서적인 이유도 있지만 우울증 갤러리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방조'나 '유도'가 더 큰 문제로 지목된다.
심리적으로 도움을 받고 싶거나 호기심 등의 이유로 자살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았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극단적 선택을 염두에 두게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대인 청소년이 무방비로 노출될 가능성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2019년 서울대 의대가 발표한 '2018 자살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살 시도자 134명 중 23명(17.2%)이 '인터넷 사이트가 자살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온라인상에 유포되는 자살 유해 정보는 2018년 이후 7배로 급증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3만 2,392건이었던 온라인 자살 유해 정보는 2020년 9만 772건으로 약 3배로 증가한 뒤 2021년 14만 2,725건, 2022년 23만 4,64건을 기록했다.
자살 관련 사진과 동영상 게재 신고 건수도 2018년 1만 6,835건에서 지난해 12만 6,742건으로 폭증했다. 최근에는 10대를 중심으로 자해 사진을 올리는 SNS 계정 '자해계'도 늘고 있다.
일선 교사와 학생들은 SNS의 자해 정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 수원시 모 중학교 교사 양모(36) 씨는 "최근 들어 마치 자해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개념을 넘어 유튜브 등을 통해 자해 방법을 공유하고, 학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학생 김모(16)양은 "부적절한 내용인 것을 알면서도 SNS를 통해 계속 찾게 된다"면서 "주위에서도 자살·자해 정보들을 봤다는 친구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고 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생명존중문화 확산으로 자살 예방 힘써야"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2027년까지 자살률을 30% 이상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대처에 발 벗고 나선 모습이다.
정부는 우선 사각지대에 있는 고위기 청소년을 조기발굴하기 위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온라인 매체에 청소년이 올린 글을 보고 전문상담원이 직접 접촉하는 '사이버아웃리치' 및 찾아가는 거리상담을 강화한다. 고위기 청소년을 직접 찾아가 상담하고 맞춤형 사례관리와 지역 자원 연계를 지원하는 청소년동반자 확대도 추진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건강한 사회 풍토를 만들고 청소년들의 심리적 회복을 도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한 신경정신의학회는 성명을 내고 "청소년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공감과 위로"라며 "청소년의 마음과 청소년 자살의 특성을 이해하고 특화된 자살예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자살이 더 심화되지 않도록 생명존중문화를 확산해 건강한 사회를 조성해야 한단 목소리도 높다.
특히 '생명의 소중함'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종교계가 생명의 가치를 알림과 동시에 청소년들의 정서적 돌봄의 울타리가 되자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조성돈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는 "한국교회가 생명지킴이로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청소년 자살예방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라면서 "안타깝게도 교회들은 모든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자살예방에 대한 인식이 낮은 상태"라고 언급했다.
이어 조 대표는 "교회가 먼저 생명존중 교육을 실시해 다음세대가 사회에서 생명지킴이 리더가 되도록 양육해야 한다"면서 "우리 청소년들이 세상의 잣대가 아닌 비전과 꿈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 수 있도록 교회가 동반자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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