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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4/18      기독

엘살바도르 단기 선교 기행문



 엘살바도르 단기 선교 기행문

주님!

저는 선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구실을 지어 안 가고 싶습니다. 물심양면으로 여유도 없고 .... 나름 할 일이 너무 많고 그런 시간이 있다면 조용히 집에서 쉬고 싶습니다.

왜? 저까지 그 곳에 가야 하나요? 매일 밤 이렇게 기도한 내용입니다. 우연치않게 주님을 체계적으로 더 알고자 해서 입학하여 배우는 과정에서 '복음 중심적 선교학' 시간에서 교수님이 "신학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생생한 그리스도의 복음 현장을 경험해야 되지않느냐"는 것이였습니다.

교회에서 일년에 서너번씩 선교를 떠났지만 항상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그렇게 지냈으며, 나의 기도 제목과는 무관하게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무거운 마음으로 교수님과 4명의 학생들은 1월 15일 부터 20일 까지의 단기간 일정으로 새벽 4시에 여명을 해 집으며 엘살바도르로 향했다.

구름 위로 나는 비행기에서 지상을 내려다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한달여 기간 동안 달고 지낸 기침으로 목도 아프고, 사는 일들의 숙제로 마음은 복잡하고 긴 한숨속에 5시간의 비행으로 산 살바드로의 공항의 모습이 드러났다.

출발 하기전 백과사전으로 알아 본 엘살바드로는 중미에서 가장 좁은 면적이지만 멕시코를 제외한 중미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 인구 조밀도가 중미 최고이지만 엘살바드로 인의 근면한 이미지로 중미의 일본이라 부른다고 했다.

좁은 국토에 산악 지형으로 이용 가능한 토지자원, 혹은 지하자원이 거의 없어 이용 가능한 토지 전부와 산까지 농업용으로 개간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 파괴가 심각한 국가이며, 지진 및 화산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심각한 자연재해에도 종종 있으나 화산 인근의 화산재 토양이 농업에 적합한 비옥한 토지이기에 인구가 모여살 수 밖에 없어, 주민의 불안한 생활이 계속된다고 했다.

엘살바도르 공화국으로 독립 이후 내전과 군인들이 국민들을 박해하는 군사 독재가 이어지면서 정국이 줄곧 혼미한 상태이며, 오랫동안 독재와 내전을 거쳤기 때문에, 정국이 불안정한 국가의 이미지가 강하며,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는 식민지 시대의 지배계층인 스페인계 소수 백인의 후손인 지주 계층이 토지를 절대 독점하고 있기때문에 '14가문' 이라 부르는 이들이 나라의 부와 권력을 사실상 틀어쥐고 있으며 당시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 정권은 소수의 군인 정치가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지주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한 과두 정부였고, 대부분 지주 계급으로 구성된 과두 정부에 의해 많은 농민이 학살당하거나 난민이 되었다.

당시 엘살바도르 로마 카톨릭교회 지도자인 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는 그를 지지한 사제들과 함께 군사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여 기독교인에게 "구원은 죽어서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닌, 억압받는 이들이 해방시키는 것이다" 라고 설교하여 군사독재 정권을 비판해왔다고 한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로마 카톨릭 교회 신자이며 문화적 영향력이 커서 주요 국경일도 로마 카톨릭 교회와 관계된 것이 많으며 국민들은 축구를 매우 좋아하며, 배구와 야구등을 널리 즐기는 엘살바도르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기억하는 이미지는 중남미 국가중 가장 착하고 선하며 근면 성실하다고 들었던 기억의 전부를 가슴에 안고 구름아래 엘살바도르가 나를 맞이 했다.

산봉오리가 굽이 굽이, 산등성이 첩첩이 계곡으로 뻗어나고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보는 엘살바도르는 멋있었다.

미리 익혔던 국가의 이미지는 망각하고, 그저 하나님이 이 위에서 이렇게 내려다 보시면 다 참으로 아름답겠구나! 저 세상 아랫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우리 사는 일이 다 그렇게 보잘 것 없는 것아닐까?

전도서가 한 구절이 생각났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에 있던 것도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한 일도 다시 하게 될 것이니 세상에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 나는 그렇게 두고온 나의 숙제를 잊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 이곳이 한 국가의 공항이란 말인가? 하는 정도로 빈부의 차이를 느낄수 있었다.

산 살바도르 공항에서 출발하여 우리 목적지인 마을 이름이 예수빌리지란 마을까지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오후 2시반에서 공항에서 출발하여 공항을 빠져나오니 수레에다 영코코넛을 파는 상인들을 즐비하게 관광객을 맞이하려고 늘어섰다. 우리 자랄 때 시골 오일장처럼 그런 모습에 사람들. 그 곳에서 사역하고 계신 황영진 선교사님이 차에서 내려 사가지고 하나씩 안겨 주는 선교사님에 배려에 가는길 바빠 토스트와 영코코넛을 빨대로 들이키며 중남미의 엘살바도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도로를 달리면서 횡단보도를 볼 수 없었다. 선교사님 말에 의하여 국가에서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있는 국비가 없다고 했다.

신호등 부대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국가의 가난, 길을 건너기 위해 양쪽을 살피고 있는 사람들, 사고가 나면 (?) 하찮은 목숨값... 사는일 보다 더 힘든 가난이란 이름, 우리는 새벽에 출발해서 하루종일 온 도착지 호텔에서 여정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내일 또 선교지까지 30-40분을 더 가야한다고 했다. 심해진 기침과 몸은 아프고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음식, 긴 여행의 일정을 나를 긴장에서 풀어지게 하고 숙소에서 들어선 나는 당황했다.

처음 와 본 선교지의 호텔, 한국에서의 여인숙보다 못한 상황으로 정말 짜증이 최고점에 다달았는데, 거의 이십년째 해마다 두서너군데씩 선교를 다니신다는 권사님이 내게 이렇게 말한다.

"선교지 호텔이 다 그렇지. 뭘 바라고 왔어요? 그래도 이건 정말 훌륭해요. 내가 다녀본 선교지에 비하면, 선교지 호텔은 다 무늬만 호텔이야." 울상인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는 호텔이라고 해서 샴푸나 린스는 당연히 있는 줄 알고 그냥 왔어요." 했더니 "내 것 있으니 같이 써요." 하신다.

샤워실은 물줄기도 시원찮고 배수도 잘 안되고 청결 또한 열악하고 살충제가 진동하여 잠을 들 수가 없었으며 스물스물 뭔가 기어들어 올것 같은 침침하고 퀘퀘한 냄새가 나 어릴적 방학이 되면 외갓댁에 가서 머물고는 했는데 그 때 한 여름이면 한창 두엄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각종 모기나 날파리 극성으로 쑥 불 놓던 그 안개가 떠올랐다.

그러나 이곳은 물조차 부족하며 6개월은 건조하고 6개월은 비가 자주 온다고 했다. 건조한 계절은 미세먼지와 살인적인 더위는 최악이라고 선교사님은 말씀하셨다.

이튿날 우린, 일찍 일어나 낯선 이국에 풍경과 마주했다. 산 중턱에 쯤 자리잡은 호텔은 그냥 큰 저택 정도의 수준이였고 마주 바라보는 산 풍경이 아름다웠다. 뒷 뜰을 거닐며 바나나, 라임, 무화과, 각종 이국적인 과실수들이 있었고 대부분 자급자족 하는 것 같았다. 이국적인 풍경에서 삶은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감탄하고 있었다. 구약시대의 삶은 어떘을까? 권사님의 일방적인 설명을 듣는 거지만 참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때가 되어 선교센타로 떠났다.

우리 일행 선교팀이 선교센타에 도착해서 아침기도 드리고 선교사님 부부의 정성어린 한식으로 아침을 먹고, 각 가정으로 방문전도를 하는 것이였다.

모든 거의 물자가 귀하니 가축을 기르고 있었으며, 특히 닭, 개, 그리고 고양이 드물게는 사슴도 키우고 있었다.

내 어릴 적의 한 농가처럼 그런 풍경이었으나 이곳은 거의 국토가 첩첩이 산으로 되어있으니, 일제치하 식민지 시절 우리나라가 일본 군인을 피해 언덕으로 올라가 판자촌을 지었듯이 이곳도 등산 민족처럼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야 되었다.
오르고 내리고 좁은 산길로 전도하며 보는 상황은 우리나라 70년대 청계천 판자촌을 연상케 했다.

생계가 막역한 사연, 특히 부모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이 가슴이 아팠다. 돈 벌러 간다며 미국에 불법으로 넘어간 부모, 어리기 때문에 데리고 갈 수 없어 할머니나 친척에게 맡겨진 아이들, 불법으로 넘어가다 총 맞아 한쪽 다리 절단했다는 사연, 제 때에 의료시기를 놓쳐서 당하는 고통과 소외, 또한 잘못된 처방으로 벙어리와 귀먹어리가 된 루디라는 청년, 태어날 때부터 봉사가 된 까를로스 그의 소원은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는 것이 소원이겠지요?

약간의 빛과 어둠만이 구별되는 상황이니 만약 미국에 살았다면 각종 검사에 상황이 많이 호전될 것이라는 안타까움, 이렇게 방문 전도하면서 우리 선교팀이 느끼는 것은 우리의 손길이 너무 턱없이 빈약하다는 느낌만 들었다.

이곳에 사람들의 고통은 너무 아파서 기어 들어간 울음의 소리를 잊어버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고통을 망각하는것 같다. 대부분 우리가 보낸 시선에 무표정하다. 희망도, 일도, 아무 것도 없는 그 곳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미국에 가야 한다는 것이 전부 인것 같았다. 그래서 동양사람이지만 미국에서 왔다는 말에 더 관심이 있어 했다. 언젠가 가야될 것으로 생각해서 영어에 대한 열의가 깊었고 선교는 그렇게 이루어 지고 있는 것같았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교회도 참석했고, 또 갓 20대 청년 목사로 열정적인 기도와 찬양 등이 인상적이었으며, 권사님이 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되는지 영어로 설교할 때 통역을 하던 마이클 조차 눈물을 보였다.

현지인들도 진심으로 청중하듯이 메모하는 것을 보았다. 또 현지인이 원해서 시작되어진 노천 기도회도 가보았다. 해가 갈수록 더해 간다는 청중들에게 목사님과 전도사님의 삶의 파노라마 속에 예수님 구원을 받은 간증을 했다. 노방이지만 주님에 대한 기도와 찬양이 누구보다 못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이 기뼈 받으실 줄로 믿는다.

현지인으로 지식 계급층인 닥터 카를로스(이곳의 남자이름은 대부분이 카를로스가 많다고 함)는 동양인이 처음으로 마을 사람들을 안위와 형편을 살펴주는 선교사님의 감동이 되어서 일까? 처음의 부정적인 시각을 벗어버리고 친구가 되어서 서로 배려하며 격려하는 사이가 되었다며 선교사님의 친근감의 표시로 우리를 초대해 주셨다.

그가 근무하는 병원과 그리고 가정방문 치료과정을 엿볼수 있었으며, 그의 친구의 별장이라는 호수 속의 작은 섬에서 피크닉을 가졌다. 그의 친구들과 즐거운 한 때를 가지며 그 분에게 선교도 했다.

자기 부모의 카톨릭 종교와 부인의 기독교와의 사이에서 그냥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말에 시종일관 권사님이 진정한 크리스쳔이란 입장을 놓고 혼신을 다하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분은 이 지역에서 지식인이며 이곳 사람들에게 신임과 존경을 받는 입장을 생각해서 더 전도에 전념하시는 것 같았다. 나도 또한 그런 권사님의 사역이 부러웠다.

또한 미국에서 20년간 불법체류 하다가 쫒겨간 마이클은 우리의 통역을 돕는 과정에서 그도 현지인으로 이제는 어엿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갈 조심을 엿보였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읇는다더니. 그도 이런 통역을 한 삼년 차되니 이제는 그도 그리스도의 영이 서서히 깃들어져 가고 있었다.

그 옛날 많은 외국 선교사님들의 희생으로 오늘날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으며, 또한 대한민국은 강한 나라로 성장했고 영적인 성장도 같이 해서 그 도움을 받던 우리가 이제 복음을 땅끝까지 전달하고자 바톤을 이어서 릴레이 중이다.

안 오고자 발버둥치던 전도사역. 그저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했던 신학조차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였을까? 반신불구로 태어난 여자아이를 둔 어머니의 깊은 슬픔 속에 우리 선교팀은 같이 안타까워하고 하나님께 함께 기도하며 소원을 간구하고 위로하며, 하늘 위에 소망과 기도의 힘을 들려준다. 간절히 함께 혼연일체로 기도한다. 하나님의 복음이 이곳에서 확장될수 있도록 이 연약한 어미에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우리는 부자라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시간도 십일조 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온 것을 권사님은 강조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거짓없이 성실히만 살면 되는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라 생각했다. 내가 꼭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사람은 나보다 더 신앙적이고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했으며 나는 외면하기에 바빴다.

사는 일도 힘든데 내가 궂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곳에 와서 내가 힘들게만 느꼈던 일상들이 그 들이 고통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노력을 하면 기회와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에 있다는 것 조차 축복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이곳의 암울한 상황을 애기한 들 백문의 불여일견이라고 신앙인이라면 선교여행 한번 권하고 싶다. 당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그 축복을 조금이라도 이 어려운 선교지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 하나님은 얼마나 기뼈 받으실까?

우리는 부지런히 복음이 없는 지역으로 전도를 해야 하고 올바르고 온전한 하나님의 바른 복음을 위해 관심과 사랑의 씨앗을 계속 쉼없이 뿌려야 하지 않을까? 값없이 예수님은 당신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않았는가?

먹고 마시는 지출 금액 십일조를 모아서 하나님이 기뼈하실 선교를 해보길 권한다. 내가 그랬듯이 누군가가 할 것이라는 무관심말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들과 잠시라도 사랑과 관심을 교환할 수 있게 되기를 이 모든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응원합니다. 아멘.

임지형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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