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July 16, 2018    전자신문보기
미주한인교계

02/25/18      Kidok News

양성평등, 건강한 교회의 지표



 성경은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복종을 요구하는 구시대의 유물인가?


교회는 지난 역사 속에서 성경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로 오독(誤讀)하거나 오용(誤用)하고 있다.

성경의 무대인 고대 지중해 세계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로 편만하였다. 이를 반영하듯 성경의 어떤 본문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규제를 언급하고 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러한 성경 본문에 당황할 테고 어떤 이들은 여성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어떤 본문은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을 주장하여 여성의 권리와 인권을 위한 지침이 되기도한다.

여성의 신분과 지위와 관련된 성경의 다양한 목소리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칼 융은 “성적(性的) 물음은 곧 종교적 물음”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성차별 의식은 기독교신앙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하고 묻는 것은 종교적 물음이자 신학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남녀가 평등한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 가운데 하나다. 여성을 하대하거나 차별하는 당시의 문화적 관습들이 성경에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있지만 이것을 가지고 성경이 남녀차별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고 편견이다. 어느 종교보다 기독교가 주도적으로 양성평등에 근거한 여성해방운동에 앞장선다.

여성의 인권과 참정권을 둘러싼 운동도 기독교 문화가 끼친 여러 영향 가운데 하나다. 이런 모든 사상의 원천이 바로 성경이다. 가부장적 내용이 반영된 성경 텍스트를 해석할 때, 우리는 그것이 기록된 당대의 콘텍스트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짚어보고 그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가리는 정밀한 해석학적 작업을 해야 한다.

 초대교회는 성령 안에서의 평등 또는 ‘동등자의 제자도’(the discipleship of equals)와 관련된 남녀평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비전은 세례 베풀 때 초대 교회가 선포했던 다음의 구절에 반영되어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7-28)

이러한 선언은 세례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선포한다. 동시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옛 관습은 물론 인종, 계급, 성과 관련된 모든 차별도 철폐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당시의 유대 남성들이 이방인이나 노예나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음을 매일 감사했던 관습에 비추어 볼 때 단순히 성차별을 반대하는 선언일 뿐만 아니라 인간평등을 주장하는 과히 혁명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의 이 평등선언은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문의 기초가 되었다.

 여성신학자 엘리자베스 피오렌자는 《In Memory of Her》에서 제자직을 ‘섬기는 자’, ‘예수를 따르는 자’라고 정의하였다. 피오렌자가 주장한 것처럼 제자직을 수행한 이들은 주의 나라가 임할 때 예수님 좌우에 누가 앉을 것인지를 놓고 다툼을 일삼던 남성 제자들이 아닌 여성들이었다(마20:21; 막 10:37). ‘고난 받는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깨달은 이들은 남성 제자들이 아니었다. 그들 대신 십자가를 향한 노정에 계신 예수님에게 향유를 바른 무명의 여인이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행위를 보고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 26:13) 이 구절로부터 피오렌자는 자신의 책 제목, “그녀를 기억하며”(In Memory of Her)를 가져왔다. 초대교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서로 평등한 역할로 활동했으며 각자 받은 성령의 은사대로 서로를 돌보고 세워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피오렌자는 초대교회가 처음에는 남녀평등을 지향하였지만 이후 교회 내 영적 권위에 대한 도전과 거짓 교사들의 준동과 바깥 이단들의 발호로 인해 제도화와 교권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가부장적 공동체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했다.

 여성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문제고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할 문제다. 여성학은 여성의 경험을 근거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여성신학은 인간이 남녀로 구성된 것처럼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고 여성 회복은 남성을 포함한 인간 전체의 회복임을 주장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차별적 행태와 관행의 심각성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기독교 안에서도 가부장적인 구조와 언어로 성경을 해석하여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게 여기고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차별과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도와야하는 상보적 관계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여성을 차별하는 언어와 관습과 행태를 걸러내고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동등한 파트너라는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성을 초월한 하나님을 남성성 안에만 가두는 것도 성 왜곡을 조장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여성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은 곳도 많다. 바느질하시는 하나님(신 32:4, 10, 18), 출산하시는 하나님(렘 31:15-22), 모태를 지니신 하나님
(사 42:14), 산고(産苦)하시는 하나님(사 49:14-15), 젖 먹이시는 하나님(사 66:13), 어머니처럼 위로하시는 하나님(시 131:2).

성을 초월하지만 때론 남성성으로 때론 여성성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역할을 표현하는 성경적 언어를 고려한다면 성차별은 성경의 언어가 지닌 상징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데서 파생된 오해나 무지일 것이다.

 예수님의 주변과 바울의 동역자들 가운데 여성들이 많았고 상당수의 부유한 여성들이 교회 중심에서 활동했다. 초기 가정교회는 여성들의 헌신이 돋보인 공동체였다. 초대교회는 남성 예언자들뿐만 아니라 여성 예언자들의 활동으로 더욱 활기를 띠었고 남성 사도들 못지않게 여성 사역자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여러 사회적 차별과 장벽이 무너진 것처럼 여성 차별은 복음적 토대 위에 서 있는 교회라면 필히 제거해야할 독소다. 초대교회처럼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서로 인정하되 차별만은 용인하지 않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다. 여성 차별이 감기처럼 만연한 이 세대에 그리스도 안에서 양성평등으로 모든 지체가 한 몸을 이룬 공동체가 진정 건강한 교회다.

이상명 목사(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kidoknews[0]_1519580733.jpg 
 이상명.png 

  

댓글달기 (100자이내)

내용:

0 자   

댓글(0개)

  
인기 기사
최신 댓글

163-07 Depot Rd. Suite 208, Flushing NY 11358
Tel: 347-538-1587 Email: kidoknewsny@gmail.com

Copyright © 2011-2015 기독뉴스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Intonet S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