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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인사회

03/15/19      기독뉴스2

명문대학들의 ‘부유층 우대정책’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라고 T.S. 엘리엇은 대표 시 ‘황무지’의 첫 구절을 연다. 해마다 봄이 되면 회자되는 구절이다. 

미국에서는 3월이 많은 가족들에게 ‘가장 잔인한 달’이다. 대학들이 합격통보를 내보내기 시작하는 지금, 입시생들과 학부모들은 긴장과 불안으로 가슴이 ‘죽은 땅’이다. 불합격 통보에 낙심하고, 뒤이은 다른 대학 합격통보에 환호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동안 3월은 간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 피어나기만을 고대하던 입시생과 부모들의 절절한 가슴에 왕소금을 뿌리는 사건이 터졌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라는 대학입시부정 스캔들이다. 12일 연방검찰 발표에 따르면 지난 몇 년 동안 760여 가정이 총 2,500만 달러의 뒷돈을 건네며 예일, 스탠포드, UCS 등 명문대학에 자녀들을 부정입학 시켰다.


명문대 입학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지금, 사건이 주는 파장은 심대하다. SAT 점수 몇 점 올리려 밤잠을 줄이고, 에세이 다듬느라 수도 없이 고쳐 쓰고, 자원봉사 크레딧 쌓느라 주말을 통째로 반납하며 입시준비에 매달린 학생들에게 이보다 잔인한 뉴스는 없다. 그 뒷바라지 하느라 모든 걸 희생했던 학부모들에게 이보다 맥 빠지는 뉴스는 없다. 
정당한 모든 노력을 백지로 만들어버리는 전혀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 받고, 대학으로 가는 ‘뒷문’ 열쇠가 “결국은 돈!”이라는 사실에 분노한다. 

한편 미국 명문대학의 입학사정 관행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돈이 대학입학의 윤활유가 되는 풍토는 늘 있어왔다는 것이다. 그런 토양에서 불법의 변종이 자라났다. 

이번 입시비리 사기극을 기획 주도한 뉴포트 비치의 브로커, 윌리엄 릭 싱어는 일종의 ‘틈새시장’ 개척자였다. 그는 명문대학마다 올림픽 종목에 해당하는 다양한 체육특기생 제도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풋볼이나 야구 같은 인기종목은 경쟁이 치열하지만 수구나 조정, 축구 등 비인기 종목의 경우는 해당 선수가 많지 않다. 전반적으로 관심이 낮으니 코치가 추천하면 입학사정 당국은 그대로 받아주는 구조라는 점에 그는 착안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허술한 ‘옆문’을 찾아낸 것이다. 

백인 부유층이 자녀가 공부실력이 부족할 때 수구나 승마 등 소위 백인귀족 스포츠를 시켜서 체육특기생으로 명문대에 입학시키는 것은 일종의 전통이다. 이번에 기소된 케이스들은 그 마저도 하지 않은 채 가짜로 선수경력을 만들고, 운동 중인 선수의 몸통에 학생 얼굴을 붙이는 등 사진을 조작하고, 대리시험에 답안지 고치기 등 불법과 비리를 총동원했다는 점에서 가히 ‘전문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의문을 갖는다. 자녀 한명 입학시키느라 집 한 채 값을 쓸 만큼 돈이 많은 사람들이 왜 합법적 기부를 하지 않고 불법을 택했느냐는 것이다. 대학에 합법적으로 기부하는 것보다 돈이 적게 들고, 절차가 간단하며, 합격이 확실하게 보장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는 21년 전 아버지가 250만 달러를 기부한 덕에 하버드에 들어갔다. 

명문대학과 부자들의 ‘끈끈한’ 관계는 대학의 역사만큼 오래된 일이다. 0.01% 부자들이 합법적 기부로 자녀를 명문대학에 입학시키는 동안 0.1% 부자들은 불법적으로 돈을 써서 자녀를 입학시킨 것이 이번 비리사건이다. 합법과 불법은 큰 차이가 있지만 돈으로 합격을 산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교육열 남다른 한인부모들에게 이번 사건은 아프다. 많은 부모들이 ‘타이거 맘’ 소리 들어가며 자녀들을 독하게 공부시키는 근본은 이 사회에 대한 믿음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진다는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번 사건은 그 믿음을 흔들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은 부자들의 돈의 힘에 밀린다는 인식이 생긴다면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시킬 수 있겠는가.


하버드 케이스가 한 예이다. 캠퍼스의 다양성과 소수계 우대정책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성적 좋은 아시안 학생들의 입학을 제한하는 하버드에서 재학생의 과반수는 백인학생들이다. 이들 백인학생 중 40%는 동문 자녀 특례입학이거나 체육특기생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명문대학들이 전통으로 삼는 특례 입학들에 사회적 의문을 제기할 때가 되었다.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은 사회적 이동의 수단이자 꿈을 향한 통로이다. 누구나 실력이 있으면 입학해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명문대학들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 ‘부유층 우대정책’을 버릴 때가 되었다. 이번 입시부정 관련 대학들을 상대로 이미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특정 인종과 소득계층을 넘어 다양성과 공정성이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주한국일보, 권정희 주필>

http://ny.koreatimes.com/article/20190314/1236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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