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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04/06/19      기독뉴스2

6.25도 이겼는데 火魔에 무너져"…80년 속초 토박이가 전한 그날


장천마을에서 가옥이 불에 타 잔해만 남아있다. /고운호 기자
 
"마을 여러분 통장(統長)입니다. 지금 산불이 났습니다. 이유불문하고 지금 밖으로 나와 당장 도망가십쇼!"

지난 4일 밤 7시 27분쯤 강원도 속초 장천마을 통장 어두훈(61)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마을에 울려퍼졌다. 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연속극을 보던 마을 주민들이 헐레벌떡 밖으로 뛰쳐나왔다. 서쪽 설악산 방면 하늘이 시뻘겋게 물들어있었다. 산불이었다. 

불은 순식간에 마을로 쏟아져 들어왔다. 바람을 타고 날아
온 잿가루가 마치 눈처럼 휘날렸다. 옷가지를 챙길 겨를도 없이 주민들은 황급히 마을을 빠져나왔다. 불길을 피해 마을 밖으로 내달린 주민도 있었고, 이웃집 차를 얻어탄 노인도 있었다. 피난(避難)을 방불케 했다. 마을을 집어삼킨 불길은 가옥 23채를 태우고 바람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다.

6일 강원 속초 장천마을 주민 이명재씨가 화재로 무너진 축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김우영 기자
6일 찾은 장천마을은 잔불도 모두 꺼졌지만, 탄 내음이 여전했다. 화마(火魔)로 무너진 집에서는 간간이 연기가 올라왔다.

"6.25 전쟁 당시 수많은 전투기 폭격에도 주택 10여채 정도 불나고 마을에는 큰 피해가 없었어요. 근데 이번 산불로 주택, 창고 등 30여채가 전소됐어요. 마을 사람들 대부분 60~80년 살고 있는 토박이인데, 6.25보다 더 무서웠다고 말해요. 저도 여기서 77년 살았는데 이런 화재는 정말 처음보는 것 같습니다." 장천마을 토박이 어재동(77)씨의 얘기다. 어씨는 그날 밤을 떠올리자 고개부터 흔들었다. 당시 화재로 어씨의 집과 비닐 하우스 2동이 전소(全燒)됐다. 

장천마을에서 평생을 산 박상철(81)씨도 화재로 집을 잃었다. 박씨는 "차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가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차가 좌우로 흔들릴 정도였다"며 "그 센 바람을 타고 불길이 순식간에 산을 타고 내려왔다"고 전했다. 불이 시작될 무렵 기상청 미시령 자동 관측장비에는 순간 초속 35.6m의 중형 태풍급 강풍이 관측됐다. 초속 20m 이상 강풍은 사람이 가만히 서 있기 어렵고, 우산을 폈을 때 완전히 망가질 정도의 세기다.

다행히 이번 화재로 다친 주민은 없었다. 마을 통장 어씨의 ‘긴급방송' 덕분이었다. 어씨는 "토성면 원암리에서 큰 불이 났다는 지인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라며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라고 했다. 주민 엄규완(81)씨는 "통장의 방송이 아니었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화재 이튿날 주민들은 마을로 돌아왔다. 하지만 잿더미로 변한 집 앞에서 한동안 발을 뗄 수 없었다. 8년전부터 소를 키워온 이명재(61)씨는 이날 화재로 금지옥엽처럼 키워온 소 5마리를 잃었다. "집이며 소며 산불 한번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차라리 누굴 탓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편할텐데...." 이씨는 화재로 주저앉은 축사를 바라보면 한숨을 쉬었다.

이날 오후 1시에는 진영 신임 행정안전부 장관이 마을을 찾았다. 진 장관은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주민들에게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날엔 문재인 대통령도 마을 찾아 주민들을 위로했다. 주민들은 정부와 국민의 도움에 고마움을 전하면서도 실질적인 복구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한 마을 주민은 "복구 생각에 잠자리에 들면 막막하다"며 "타버린 마을을 다시 세우는 게 쉬운일이 아닌데, 비용 등 정부가 구체적인 복구 계획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화재로 전소된 주택. 장천마을은 이번 화재로 23채가 불에 탔다. /김우영 기자
이날 오후 12시를 기준으로 ‘강원 산불’의 큰 불길은 모두 잡혔다. 마지막까지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인제군 산불도 발생 45시간만에 이날 정오쯤 불길이 잡혔다. 사흘간 이어진 산불로 축구장 면적(7140㎡)의 812배, 여의도 면적(270ha)의 2배가 넘는 580헥타르(ha)의 산림이 불에 탔다. 또 162채의 주택이 화재 피해를 입어, 집을 잃은 이재민 137명은 초등학교 강당과 마을회관 등에 마련된 임시 주거시설로 대피한 상태다.

정부는 이날 낮 12시 25분 강원도 고성군·속초시·강릉시·동해시·인제군 등 5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재난수습 과정에서 주민의 생계안정 비용 및 복구에 필요한 행정·재정·금융·의료비용을 예산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조선일보, 김우영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6/2019040601224.html

 조선일보.PNG  (장천마을에서 가옥이 불에 타 잔해만 남아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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