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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22      기독

바울과 바나바 연구소 소장 조용성 사이프러스 선교사 인터뷰



CBSN 사장 문석진목사가 본 방송프로그램의 하나인 ‘문석진목사가 만난 사람’ 코너에서 현재 사이프러스 선교사로 사역하며 총신대학교 산하 ‘바울과 바나바 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조용성선교를 만나 인터뷰했다. 문목사의 현지 인터뷰는 뉴욕지구한인목사회(회장 김명옥목사)가 터키 성지순례 스타디 투어 중, 안내를 맡아 수고 해 준 조용성선교사를 만나 직접 인터뷰 한 것이다. <편집자 주>

 

문석진목사(이하 문): 교수님, 터키와 가까운 사이프러스에서 야외 인터뷰를 하게 돼 반갑습니다. 야외라 소음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청취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자 선교사님 먼저 청취자에게 인사와 함께 본인 소개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용성선교사(이하 조): 여러분 안녕하세요. 특별히 이민생활 중에도 믿음의 생활하고 계시는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 격려를 드립니다.

저는 1987년 복음을 거부하는 이슬람 땅인 터키에 들어온 지 올해로 36년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삶의 여정에서 하나님께 훨씬 더 많은 축복을 받은 선교사이지요. 모슬렘 지역 한인선교사로 처음 들어와 이제 2년 후면 은퇴하게 되는 조용성선교사입니다.

문: 터키는 위험한 선교지역인데 어떻게 오시게 되었나요?

조: 들어오게 된 동기는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분배의 법칙입니다. 복음은 나누어져야 합니다. 터키엔 9천700만에서 약 1억 정도의 인구가 살지요. 중동까지 합하면 1억8천에서 2억 정도가 살아요. 이곳에 살면서 한 번도 복음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분배의 법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은혜를 갚으러 왔습니다. 한국전쟁인 6.25때 터키는 참전국 16개국의 일원의 6번째 참전국으로 파병도 많이 했답니다.

세 번째는 한국과 터키의 문화적 유사성입니다. 선교는 문화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지만 복음을 전하는 그릇인 문화는 변하지요. 한국과 터키는 언어적으로 우랄 알타이 군에 속하고 생활습관도 흉노족 말갈족으로 다 혈통이 같습니다. 문화가 같다는 것은 선교의 접촉점이 같을 수 있어요. 서구 선교사들이 말하기를 한국인의 터키 선교는 적합도가 매우 높다고 평가하지요.

네 번째는 이슬람 국가에 대한 한국기독교의 영향력 때문이지요. 터키인들은 한국인을 정말 좋아합니다. 모슬렘 터키인들은 한국을 불교의 나라로 알고 있어요. 저는 터키 국립대에서 역사를 전공했습니다. 130년 전에 미국선교사들이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해 지금 한국 기독교인은 1천만이 넘습니다. 그래서 터키에 선교하러 들어오게 된 것이랍니다.

문: 아까 말씀 중에 아시아 말갈족과 가깝다 하셨는데 터키의 지역적인 위치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간에 있네요. 그래서 아시아족이라 하셨나요. 정치적인 어려움은 없는지요?

조: 터키는 지리적, 지형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나라지요. 동쪽 이스탄불이 마지막 종착역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실크 로드의 종착역이고 유럽의 시작이 됩니다. 터키 이스탄불 해협을 보스포러스라 부르는데, 이 말의 뜻은 터키 말로 '목덜미'란 뜻입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흑해로 들어가는 목덜미입니다. 동서 냉전시대 공산주의 74년의 이데올로기가 있을 당시, 소련의 모든 함정들이 지중해로 나가려면 보스포러스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인 나토에서는 터키에 무게와 중심을 많이 두고 있지요.

문: 아시아와 유렵을 연결하는 분계점이라 할까요. 누가 터키를 말하기를 멋있는 말을 했던데요.

조: 아놀드 토인비가 이스탄불을 향해서 ‘살아있는 야외 박물관’이라 했지요. 왜냐하면 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에게 멸망하게 됩니다. 기독교가 그렇게 융성했던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에 의해 역사에서 사라져갔지요. 콘스탄티노플은 기독교 용어니까 이슬람사람들이 이스탄불이라 이름을 다시 지었어요. 뜻은 ‘이슬람의 도시’로, 그렇게 변했답니다. 저는 늘 역사학도로서 ‘역사를 알면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 교회가 교회되고 말씀이 말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바울은 기독교인들이 많이 아는데 바나바는 잘 모릅니다. 이 인터뷰하는 지역이 바나바가 태어난 지역인 구브로라는 곳인데, 선교사님이 이 지역에서 사역하고 계시죠? 

조: 이 지역이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 때 들어온 살라미스 항구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성경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살라미’라 되어 있구요.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처음 바나바가 등장합니다. 바나바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돼 있어요. “바나바는 그의 밭을 사서 사도들의 발 아래에 두니라”라고 돼 있어요. 우리나라 성경은 중국말을 번역했는데, 이 번역은 바람직한 번역이 아니지요. ‘밭을 샀다’는 말이 아닙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재산을 팔아서 제자들 앞에 드렸다’는 말로 번역돼 있지요. 원래 바나바의 이름은 요셉입니다. 바나바는 제자들이 붙여 준 닉네임입니다. 요셉이 왜 바나바가 됐을까요. 역사에 의하면 바나바의 부친은 구브로의 구리 광산 주인으로 부호였다고 합니다. 바나바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구브로에 살면서 그의 재산을 기독교공동체에 헌납한 것 같아요. 이것이 제자들에겐 엄청난 큰 충격이었고 교회가 세워지는 근간이 됩니다. 그래서 요셉의 이름을 바나바라고 바꾸어 주었지요. 바나바란 이름은 ‘권위자’란 뜻인데, 권위자란 한문으로 ‘권할 권, 위할 위’자로 ‘권하고 위로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이 역사의 중심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해준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위로와 격려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울을 찾아 다소에 가서 그를 안디옥에 데리고 와 1년 동안 열심히 제자 훈련을 했어요. 그리고 성령이 시키는 일을 하라고 해서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사로 파송 받았지요. 그토록 바나바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구브로란 바나바의 고향에서 이루어진 역사의 한 페이지랍니다.

문: '바나바 없는 바울은 상상할 수 없다'는 의미인가요? 

조: 네 그렇습니다. 제가 지난 3년 동안 바나바의 고향에 와서 새벽에 엎드리고 해변가를 걸으며 생각했는데 사실 바나바는 바울을 역사의 중심무대에 세웠습니다. 사도행전이 28장으로 되어 있는데 13장을 넘어가면 바울이 세계선교를 주도하고 있지요. 거기 중심축에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나바는 선교의 중심 무대에 바울을 세우고 바나바는 사라집니다. 바나바에게 또 다른 별명을 붙인다면 ‘무대 뒤의 영웅’이라 붙이고 싶네요.

문: 터키에 선교사님이 오신지 36년이 되셨다 하셨지요?

조: 네 이스탄불에서 26년 살았고 2012년부터 2018년까지는 저희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선교사 책임자로 한국에 6년간 있었어요. 저도 선교에 대한 마무리를 하려고 아내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교사가 없는 지역으로 가자’고 하여 구브로(사이프러스), 바나바의 고향인 살라미스에 살고 있습니다.

문: 성경의 지명은 구브로인데 사이프러스는 무엇이지요.

조: 중요한 질문입니다. 지금 지구에 분단국가가 두 나라입니다. 하나는 대한민국이고 또 하나는 사이프러스공화국입니다. 1974년에 사이프러스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남쪽에 있는 터키인들은 북쪽으로 강제 이동시키고 북쪽에 있는 그리스인들은 남쪽으로 이주 시킨 후 유엔(UN)이 그린라인(Green Line)을 정하여 북쪽에는 터키인, 남쪽에는 그리스인이 사는 분단 국가가 되었습니다.

문: 한국의 남한과 북한 같은 형태군요.

조: 네, 그렇습니다. 저는 실향민의 자녀로 늘 그런 생각을 해 왔습니다. 우리 조국은, 우리 부모 세대에서 통일을 보지 못하고 거의 세상을 떠나셨지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어릴 때 불렀듯이 꿈에도 소원은 통일인데, 통일이 중요한 게 아니지요. 베를린에서 독일 통일을 본 적이 있어요. 장인어른이 평양에 가족을 두고 내려왔습니다. 통일은 이념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은 복음적 평화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통일이 되면 우리와 북한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될 겁니다. 이념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독일 통일은 서독이 통일을 위해 엄청난 준비를 했습니다. 독일교회가 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사이프러스공화국도 통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 지금 북쪽 터키 지역 북 키프로스에 계신 것이지요. 키프로스와 사이프러스는 같은 말인가요. 여기에 아프리카 유학생들이 많다고 하던데요?

조: 네 그렇습니다. 제가 이스탄불에 살았을 때에는 일 때문에 북 사이프러스에 왔었습니다. 또 가족과 함께 쉬려고도 왔었구요. 이번에 와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북 시이프러스에는 아프리카 유학생이 8만에서 10만 명이 있어요. 유학생을 가장 많이 보낸 나라는 나이지리아 이구요.

그런데 지금 세계선교는 급변하고 있지요. 'From Everywhere to Everywhere' 즉 세계선교는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선교하는 것보다 사이프러스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선교하는 것이 훨씬 더 전략적일 수 있어요. 여기에 온 유학생들은 대부분 마음이 가난한 학생들입니다. 모슬렘 학생들이 유럽으로 유학을 못가서 이곳으로 옵니다. 왜냐하면 사이프러스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를 들으며 저렴하게 공부할 수 있는 경제적인 나라이기에 이곳으로 옵니다. 저는 요즘 터키 선교를 하는지, 아프리카 선교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가장 큰 선교의 핵심은 Hospitality Mission, 즉 환대의 선교입니다. 제가 보니 아프리카 학생들은 하루에 두 끼밖에 안 먹어요. 아침과 저녁인데 먹을 게 없어서 그렇지요. 저희 집에서 식사하러 오라 하면 아주 좋아합니다. 요즘 K-Pop이나 한국 드라마가 인기가 좋아요. 그들도 너무 좋아해요. 선교하면서 선교를 다시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있지요. 선교의 접촉점은 함께 먹으며 대화로 시작한다는 겁니다. 여기 터키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차(Tea)를 줍니다. 그래서 마시며 대화하듯이 모슬렘학생들에게 Hospitality Mission을 하고 있습니다.

문: 모슬렘 지역 선교사로서 어려움이 많으시죠? 

조: 네 그렇긴 합니다만 전 1-2년 한 게 아니니까..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죠. 바닷가 아침 산책 중에 지중해대학의 전기공학교수를 만난 적이 있어요. 중국인인데 27년 됐다고 하더라구요. 성탄 때 초대를 해 식사를 했지요. 부인이 조선족인데 3년 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데요. 딸들은 캐나다와 뉴질랜드로 유학을 가고 혼자 살지요. 우리 집사람을 보며 자기 아내 생각이 난다고 그래요. 조선족 아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내가 기독교인”이라 말하면서 성경책을 한권 주고 “당신도 천국에서 만나자”고 하더래요. 그래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하여 집에서 식사하고, 중국어 성경을 주었어요. 요즘 그 중국교수가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고 있답니다.

문: 사이프러스, 구브로에선 3년 정도 되셨고 바울과 바나바 연구소를 설립하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이나 비전이 있으시다면?

조: 한국에 6년 동안 선교본부 책임자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본교인 총신대에서 선교학을 가르쳤어요. 그리고 싸이프러스에 오면서 총신대에서 바울과 바나바 연구소 명칭을 가지고 나왔지요. 모슬렘에선 스테이터스가 중요합니다. 역사학을 전공했으니 앞으로 연구소를 운영할 것이고, 은퇴를 앞두고 제 꿈이 있다면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선교하는 한인 분들이 이 곳에 와서 쉬기도 하고 지난 날을 반추도 하는 쉘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선교사들의 연장교육으로 사도 바울이 걸어왔던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사도적 선교를 하자’고 하고 싶습니다.

문: 기대하시는 일들이 잘 이루어지시기를 바라구요, 이제 막 선교사로 출발하거나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시는 분들에게 주실 말씀은?

조: 팬데믹 이후, 세계선교는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가고 있어요. 뉴욕은 세계의 수도며 세계 인종시장입니다. 세계선교는 ‘거창하게 선교를 간다’는 것보다는 뉴욕에서 여러분이 만나는 다민족에게 선교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선교적 삶이라 생각해요. 뉴욕에서 여러분의 일터와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선교적 삶을 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문: 한 마디만 더 여쭙겠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전도자, 선교자, 신학자의 삶과 바나바의 삶, 이 두 분의 삶을 연관시키자면?

조: 중요한 질문입니다. 바울은 정말 훌륭한 선교자요 전도자요 신학자이자 목회자입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선교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해 봅니다. 선교는 팀웍(Team Work)이고 함께하는 것이라 봅니다. 제가 역사학을 전공할 때 주임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랍 대상들이 비단을 싣고 중국에 갈 때의 금언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입니다. 한국선교가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어요.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합니다. 뉴욕에 계시는 여러분들이 세계선교를 하려면 Together, 함께 하는 선교를 해야 합니다. 이제 세계선교는 변하고 있어요. 미국이 아직은 세계선교의 중심축에 있지만 2030년이 지나면 미국의 선교는 더욱 감소되고 인도가 세계선교의 1위권, 브라질이 2위권, 중국이 3위, 한국이 5-6위로 밀릴 수도 있어요. 이런 변화의 세계선교를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금 쓰실 때에, 우리가 열심히 주의 일을 감당하고 또 인도, 브라질, 중국이 세계선교의 중심축에 온다면 우리들이 등받이 역할을 해 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계선교를 주도한다면 그건 오만한 일이라 생각해요. 선교는 함께 하는 것입니다.

문: 정말 귀한 말씀 감사드리고 기도하시는 일들이 모두 잘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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