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 April 23, 2024   
역사(歷史)를 써나가는 사람들

06/09/23       김명욱목사

역사(歷史)를 써나가는 사람들


기자(記者/Reporter), 혹은 저널리스트(Journalist)란 직업이 있다. 기자의 기(己)는 말씀 언(言)에 자기 기(己)의 합성어고 자(者)는 사람(A Person)을 가리킨다. 그러니 기자란 말을 기록하여 남기는 자가 기자다. 저널리즘은 뉴스를 취재하여 대중에게 보도하는 행위이며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사람을 저널리스트라 한다. 리포터는 보도자란 뜻이다.

 

신문사의 기자에는 취재기자,편집기자,사진기자 등이 있다. 신문사 외에는 방송기자와 인터넷기자 등이 있다. 기자를 일컬어 사회의 목탁(木鐸)이라 한다. 뜻은 스님이 치는 목탁소리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어 사회를 계도해 나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기자의 직업이란 이처럼 중하고도 의미 있는 역할을 담고 있다.

 

그러나 기자의 직업은 위험할 때도 많다. 생명까지도 위협 받는다. 2018년 6월28일 메릴랜드의 주도인 아나폴리스에 있는 지역신문사 ‘캐피털 가제트’ 본사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기자 4명과 영업부 직원 등 6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제러드 라모스(당시38세)로 범행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에게 모욕이 되는 기사를 썼다는 것이 이유였다.

 

라모스는 2011년 고등학교 여자 동창을 괴롭히다가 징역 90일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신문사는 이를 사실대로 보도만 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라모스는 신문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패소했고 항소까지 했어도 또 패소했다. 이때부터 신문사에 앙심을 품은 라모스는 7년간을 벼르다가, 이날 신문사에 들어가 총격으로 기자와 영업직원을 사살했다.

 

기자가 기사를 쓸 때 미담(美談)을 쓸 때는 즐겁다. 쓰는 기자와 언론사, 그리고 미담의 주인공과 읽는 독자나 청취자 모두가 다 좋다. 미담은 크게 쓸수록 부담 없이 좋은 게 미담기사다. 그런데 쓰기에 가장 곤혹스러운 기사가 있다. 법적으로 얽히고설킨 소송 기사다. 이런 기사는 사실에 입각해 아주 짧게 써도 큰 불만요소가 될 수 있기에 그렇다.

 

소송 기사를 쓸 때는 원고 측과 피고 측의 입장을 크로스(Cross)로 취재해 써야 한다. 크로스란 양쪽의 입장을 똑같이 취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사화 되어 나갔는데도 양쪽 다 불만을 토로할 때가 있다. 소송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하도록 썼다는 거다. 특히 검찰이나 경찰 리포트에 나타난 용의자들의 기록을 기사화 할 때는 더 심하다.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정문 오른쪽 담에는 퓰리처(Pulitzer)란 이름이 크게 새겨져 있다. 퓰리처(1847-1911)는 남북전쟁 당시, 헝가리에서 외인부대로 미국에 들어와 북군이 되어 싸웠다. 전쟁 후 기자가 됐고 부자와 정치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취재로 권력층에겐 공포의 대상이 된 그였다. 나중엔 미주리주 의원이 되고 신문사 사장까지 된다.

 

1883년 그는 뉴욕월드 지를 인수했고 타계하기 전, 컬럼비아대에 신문학과를 만들기 위한 후원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사망 후, 그의 유언에 따라 그가 남긴 유산 등 50만 달러의 기금이 조성되어 퓰리처 상이 제정됐고 컬럼비아대학이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다. 퓰리처상은 언론부문에 14개, 예술(문학/음악)부문에 7개가 수상 되며 언론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린다.

 

한인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는 둘이 있다. 강형원(LA 폭동사건현장보도)과 최상훈(노근리 양민학살사건보도) 기자다. 둘 다 AP통신 소속의 기자였다. 기자들 중 가장 용감한 기자가 있다. 바로 종군기자다.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그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사진을 찍고 기사를 보내는 기자다. 기자직업(記者 職業)을 소명(召命/Calling)으로 아는 기자다.

 

1984년에 개봉된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란 영화가 있다. 캄보디아 내전을 취재해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즈의 시드시 샴버거 기자의 체험실화를 영상화한 영국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 기자들의 면면을 잘 엿볼 수 있다. 한 기자의 체험이 영화가 됐고 이 영화를 본 세계인들은 캄보디아에서 죽어간 수많은 영혼이 있음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기자가 분쟁지역이나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들은 왜 죽음을 마다하고 그 속엘 들어갈까. 역사를 남겨야 하는 소명이 있기에 그럴 것이다.?전쟁터와 분쟁지역의 기자들만이 역사를 쓰는 건 아니다. 우리네 동네 언론사 기자들도 한 편의 역사를 쓰고 있다. 보고, 듣고, 말을 받아 역사(歷史/History)를 써나가는 사람들이 기자다.

 

우리가 매일 읽는 성경도 기자들이 쓴 것이다. 사도 바울이 쓴 신약성경의 반 정도도 바울이 썼거나 바울의 말을 받아 기자들이 적은 내용이다. 구약성경 또한 기자들이 적은 내용이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려고 쓰인 성경(聖經/Bible/딤후3:16-17)이다. 이처럼 기자는 역사를 써나가는 소명(Calling) 받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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