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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野聲) 김동철 목사 순교 70주년 회고담

01/10/21       김창길 목사

야성(野聲) 김동철 목사 순교 70주년 회고담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어느 도시에 들어가든지 투옥과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나에게 알려 주신다는 사실입니다그러나 내 사명을 완수하고 하나님의 은총의 복음을 전하라고 주 예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임무를 다할 수만 있다면 나는 조금도 목숨을 아끼지 않겠습니다.(사도행전 20:23-24 공동번역)

 

   서소문교회 이경욱목사로부터 나의 아버지 김동철목사 순교 70주년 기념예배를 드린다는 전화를 받고 Covid-19 팬데믹과 2주 자가격리 의무에도 상관없이어쩌면 내생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국으로 단숨에 달려 갔습니다. 11 29일 주일 오후 두시 김동철목사 순교70주년 기념예배 때 나눈 회고담을 미국에 사는 동포들에게도 전합니다.

 

   서소문교회 뜨락에서 3살 때부터 함께 자란 조덕천 장로중∙고등부 시절을 함께 지낸 친구 유숙자 권사서동순 권사이병엽 장로중∙고등부 교사로 같이 일했던 안충영 장로중∙고등부 학생으로 나의 가르침을 받았던 조학국 장로배해일 장로박성은 장로조학형 장로김훈규 장로최인규 집사 등을 앞에 놓고 회고담을 말하려니 감개무량합니다.

 

   제가 열살 적에 6.25가 일어 났습니다그 날은 주일이었는데 저녁부터 남대문 지하도 위 행길에 흰옷을 입은 농민들이 괴나리 봇짐을 이고 지고 아이들 손을 잡고 어떤 이는 소를 끌고 남쪽으로 피난가는 행렬이 계속 길게 이어졌습니다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북한 공산군이 38선을 침범했어요그래서 남쪽으로 국군 있는 곳으로 피난 가는 거예요라고 대답하고 어디서 오세요?’ 물으면 동두천덕정의정부라고 하더니 다음날에는 수유리미아리에서 온다고 한다어린이들은 피난행렬을 구경하고 어른들은 침통하게 피난가는 이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어머니는 피난행렬을 보고 집에 들어 오셔서 아버지에게 우리도 공산군이 쳐들어 오기 전에 피난갑시다공산당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기독교인을 핍박하며 목사님을 제일 미워하고 죽인다고 하소연했다우리 만주에서 팔로군의 습격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하시죠아버지는 어머니의 간청을 단 한마디로 거절하며 피난을 안 가시겠다는 것이다나 혼자 살려고 교회와 교인을 그대로 두고 피난갈 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엄마는 아버지와 네시간 동안 울며 사정한 끝에 결국 그럼 당신이 아이들 데리고 며칠동안 피난갔다 오시오 국군이 곧 전쟁을 끝낼 것이오그래서 어머니는 옷가지를 챙기고 미수가루를 싸가지고 떠나는데 별안간 둘째아들 창권이가 어떻게 아버지만 혼자 두고 가느냐고 하면서 큰 형은 어머니와 동생들 데리고 피난가라고 하였다뜻밖에 우리 가족이 둘로 나뉘어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와 다섯 형제가 삼각지 로타리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대낮같은 환한 빛이 발하며 폭탄소리가 나는 순간 울부짖는 아우성이 크게 들렸다그 순간이 한강다리가 폭파되는 순간이었다얼마동안 삼각지와 용산을 방황하다가 어머니가 큰 형에게 비상금을 꺼내어 주며 미수가루를 배에 매어주며 배타고 한강 건너 국군이 있는 곳에 가야 산다그렇지 않으면 인민군에 끌려 간다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인민군 탱크가 서울 시가지를 돌며 붉은 깃발을 든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노래 부르며 다녔습니다우리는 한강 다리가 끊어져 피난 갈 수 없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강 부두에는 국회의원장관들이 야미 배를 타려고 인산인해였습니다공산당이 서울을 점령한 94일 동안 기독교연맹을 조직하니 나오라는 연락이 와서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와 동생을 흑석동 감리교 전도사댁고모님 댁에 피신시키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주일에는 교회에 와서 꼭 주일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그때 예배에 낯선 얼굴들이 자주 있었는데 자기 교회에 예배가 없기에 왔다는 영락교회 교인정동교회 교인들이 말해주어서 목사님들이 피난간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통장이 와서 상부의 명령이라고 대형 스탈린 사진과 김일성 사진을 교회당 안에 걸라고 가져왔기에 아버지는 그에게 걸어 놓을 수 없다고 대판 항의를 하셨습니다아버지의 거부로 통장은 그냥 돌아 갔다가 며칠 후엔 인민군 장교와 함께 사진을 다시 가지고 왔습니다아버지는 인민군 장교와 함께 함경도 사투리를 써서 유머어를 해가며 그 사진을 교회당 밖 출입구가 맞붙어 있는 아파트 앞에 붙이게 했습니다   이 일은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도와주셔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또 잡혀 가시기 전에는 정치보위국 국원이 예배에 참석하여 아버지의 설교를 메모해 갔습니다그 일을 보고 아버지는 만주에서 일제가 하던 식으로 성경과 설교노트일기장을 뺏어 가더니 공산당들이 여기서도 재판(再版)을 하는구나.” 하셨습니다.

 

1950 8 23일 아침 6시경 이십세 가량되 는 청년이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아버지가 안 계신다고 하니 돌아간 줄 알았습니다아버님이 한 시간 후에 어머니가 마포에 가서 감자를 떼어다 남대문시장에 가서 팔면 남은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시는데 아버지는 서대문 전차 종점에 가서 엄마에게서 감자자루를 받아 엄마보다 걸음이 빨라 먼저 집에 도착하여 감자자루를 내려 놓고 기도드리는 중 판자문을 열고 그 청년이 다시 들이 닥쳤습니다

 

그 청년은 아버지가 오시는 것을 기다리며 동네에 숨어 있었습니다그 청년은 아버지에게 누런 편지 봉투를 주어 편지를 읽으시고 난 후 호주머니 속의 회중시계를 꺼내 보시고 어머니가 오시면 아버지가 회의가 있어 갔다 온다고 말하라.” 하시며 그 청년에 이끌리어 나가셨습니다모시적삼을 입으시고 아침도 못드시고 엄마도 못보시고 그냥 가셨습니다.

 

 그 날 밤어머니는 기다리다 답답하여 교회당에 가 기도하시다가 몇 번 아버지 오셨는가 하여 집에 들렀지만 그 후 아버지는 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십대 때는 어머니가 뼈빠지게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아버지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육 형제가 고학으로 공부해야 할 때 책임도 지지 못할 자식을 왜 그렇게 많이 낳았는가 불평도 했습니다하지만 신학생이 되면서 아버지의 돈독한 믿음과 숭고한 인격에 감화가 되었습니다나의 아버지 김동철 목사는 피난가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기 생명뿐 아니라 아내와 아들을 주님께 맡기고 가셨습니다인간적으로는 어리석고 요즘엔 바보취급 받겠지만 그에겐 예수님께 받은 사명 곧 교회를 지키는 것과 교인 사랑이 우선인 순교신앙 이었습니다예수님과 진리를 위해 모두를 바치는 목사였습니다말로만 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생활로 실천하는 목사였습니다서소문 교회의 설립목사가 순교자였다는 것은 축복이요은혜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만주의 공산화가 싫어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만주 신경의 입선정교회 교인을 이끌고 귀국하여 서소문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공산주의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부인하고 종교를 아편이라고 말합니다신앙의 자유는 먹고 사는 것보다 제일 중요합니다고향이 공산화 될 때 이북을 떠나 남한으로 피난 온 분들이 서소문교회 교인들입니다. 2대 서금찬 목사님도 그랬습니다영락교회성도교회해방촌교회동신교회이 교회들은 고향을 두고 서울에 와서 먼저 자기 집 짓기 전에 고향교회를 생각하면서 석조로 교회당을 지은 신앙인들입니다이런 역사적 사건을 서울에 있는 교회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조선기독교 전래사에서 천주교가 신유년기해년에 큰 핍박을 받아 순교자들의 피가 흥건히 적셔진 땅입니다강남으로 이전했더라면 훨씬 큰 교회를 이룩할 수 있었겠지만 일부교우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 시내 중심가의 금싸라기 땅을 견지하고 있는 서소문 교우들은 서소문 교회의 역사적 상징적 의미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오늘은 서울을 건져내고 내일은 대한민국을 살리며 모래에는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한국교회는 1950 8 23일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군에 끌려가 이북에서 순교하신 신당동 중앙교회 안길선 목사님해방촌교회 허목사님동막교회 주목사님새문안교회 김목사님서울신학교의 박현명 교장조선신학교의 송창근 교장장로교의 남궁혁 목사 등을 기념하여 순교자의 날로 정해 기념하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도서

예닮원 9뉴저지장로교회, 2000

예닮원 20/뉴저지장로교회, 2009

서소문교회 50년사/서소문교회 역사편찬위원회, 1996

예수닮기 원하는 사람들/뉴저지장로교회 역사편찬위원회    도서출판 그리심, 1972-2002

여기 있는  모르고(김창길)/장로교 출판사, 2010

동부지역 독립운동사/동북동지회2009

북간도 한인삶과 애환 그리고 문학/명동학교 100주년 국제학술대회, 2008

기린잡이와 고만녀의 (문영금문영미)/삼인출판사

한국 기독교회사(민경배)/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

자유의    감신 120년의 발자취(윤춘병)/2008

서소문교회 수첩(이경욱)/2010

한국 천주교회사(이원순)/탐구당, 1970

한국교회 순교자(이형근)/한국기독교순교자 유족회, 1992

한국 기독교 순교자(임영섭)/도서출판 양문,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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