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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자 킹 제임스1세가 킹 제임스(KJV) 영어성경을 번역해?

02/05/21       정부홍 목사

박해자 킹 제임스1세가 킹 제임스(KJV) 영어성경을 번역해?


필자 역시 본 칼럼 제목처럼 오해를 했었다. ‘피의 메리’와 엘리자베스를 거치면서 영국 국교(Church of England)에 대한 불응자(Dissenters or Separatists), 청교도들에게 엄청난 박해가 가해졌기에 킹 제임스 1세는 당연히 국교를 로만 카톨릭교로 회귀시켜려 획책을 부린 왕들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킹 제임스1세(1566-1625)는 아일랜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가 대영국 연방이던 1603년부터, 그가 죽던 해1625년까지 연방 대왕의 자리에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피의 여왕’ 메리가 아닌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1542-1587)로, 스코틀랜드 제임스5세의 무남독녀이자 영국 헨리 7세의 증손녀였다. 그녀는 태어난 지 6일만에 아버지 제임스5세가 죽자 프랑스로 가서 자라 결혼하고, 남편이 죽자 스코틀랜드로 귀국해 헨리 스튜어트와 결혼하여 제임스1세(1566-1625)를 낳았다. 제임스1세는 태어난 지 13개월 만에 집이 폭파되는 사고로 사망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 왕위를 계승한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어려 네 섭정왕들이 대리 통치를 했다. 

 

그러다 약관23세가 되던 1603년에 왕좌에 올라 1617년을 제외하고는 세 영토 중 가장 큰 잉글랜드에 주로 상주하면서 대왕으로 대영제국을 통치했다. 킹 제임스 1세는 특히, 잉글랜드와 아일랜드가 하나의 의회로 통일되는 일에 힘을 썼다. 그리하여 가장 오랜 기간 왕좌를 지킨 왕이 되었다. 정치인이 자기 출신 지역을 못 속이듯, 그 역시 스코틀랜드 의회로부터는 지지를 받았으나 잉글랜드 의회와는 많은 어려움들과 갈등을 겪었다. 그의 집권 시기에 대영제국 전체는 비교적 평온하여 문학적으로도 황금기를 누려 윌리엄 셰익스피어, 프란시스 베이컨과 같은 유수한 작가들이 풍미하던 시대였다. 제임스1세 자신도 문학을 좋아하고 글쓰기에도 능하여 『자유 군주론』(1598)이란 책을 써서 왕권신수설을 주장하고 또 유지했다. 그런 한편으로 킹 제임스 1세는 로마교황주의에 대해 경고하고, 청교도들에 대해 경멸하며,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중도적 입장을 고수했다. 

 

1611년, 소위 『킹 제임스 영어성경(King James Version, KJV)』이 나오기까지 세상에는 6가지 영어 성경이 있었다. 구텐베르그가 독일에서 1440년에 최초의 인쇄기를 발명하여 1455년, 『라틴 불가타 성경』을 인쇄하기까지 영국에서는 인쇄된 성경이 없었다. 물론, 1378년에 나온 최초의 영어 성경은 존 위클리프가 번역하고 손으로 쓴 성경이었다. 그러나 이 성경은 당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고, 카톨릭교회에 의해서 이단으로 판결되었다.  

 

그 이후 인쇄기가 도입되어 1535년에 『Coverdale Bible』이, 1536년에 『Tyndale Bible』이, 그리고 1539년에 『Great Bible』이 출간되었다. 이 성경은 헨리8세가 영국국교회의 최초의 ‘authorized Bible’로 모든 교회에 이 영어성경이 비치되어야 한다고 법령을 선포하면서 보호받았다. 그러나 5년 후, 종교개혁의 불씨 역할을 하던 틴데일 성경을 국회가 금서로 결의하고, 복음적 성경이 읽혀지지 못하도록 하면서 평민들에게서 압수되었다. 1560년에는 특히 영국의 청교도들이 대거 피신하여 칼빈에게 수학 받으며 원어에서 직역한 결과, 셰익스피어, 낙스, 번연 등 유명 작가들이 사용한 『Geneva Bible』, 그리고 마지막으로 1568년에 모든 국교회 감독들이 인정하고 제2의 ‘authorized Bible’로 엘리자베스1세 여왕에 헌정한 『Bishop’s Bible』이 나왔다. 국교회의 표준성경, 곧 『Great Bible』이 『Bishop’s Bible』의 기초가 되었다면, 후자는 또 『King James Version』의 기초가 되었다. 

 

이같이 왕이 주도하거나 허가한 만든 흠정(欽定;authorized)역 성경들은 청교도들이 널리 애용하는 칼빈주의 성격을 확연히 띄고, 반국교도적인 『Geneva Bible』을 대체하자 킹 제임스1세는 중도적 신학입장을 반영하여 정치적 안정을 기하며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력의 탁월성을 공고히 하려고 새로운 성경 번역을 기획했다. 왜냐하면, 1603년에 잉글랜드 왕위를 천명하려고 런던으로 가던 중 일 천명의 청교도 사역자들이 서명한 ‘일천명 탄원서(Millenary Petition’를 전달하여 국왕에 대한 반감은 적시하지 않았으나 국교회의 타락한 상태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안정을 꾀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졌기에 킹 제임스1세가 주도한 성경 제작이 순수하게 신앙적 교회적 목적에서 발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1604년에 헴톤 왕궁에서 주재한 첫 회의를 5일간 주재하며 국교회의 감독체제의 교회 구조와 안수 받은 성직자 중심의 전통이 고수되는 교회생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그는 5개의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성경번역의 절차에 있어서도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다. 먼저 1차 회의 참여자 14명을 필자가 살펴보면 13명의 국교지도자들과 청교도로 분류되는 존 레이놀즈 1명뿐이었다.  

 

그리고 번역자 총 52명 중 대략 6명의 청교도가 참여하였다. 그래서 『제네바영어성경(1630년부터 외경생략)』처럼 『셉투아젼트(70인역: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에 포함되었던 ‘외경 14권’을 포함시켰으나 1666년 판부터(1644년 의회에서 생략결의)는 제외되었다.

 

한 시대의 인물을 평가할 때, 사후에 고찰한 글들도 살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당대의 사람들과 어떻게 접촉과 대화와 논쟁을 했는지 보면 그 인물을 더욱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킹 제임스1세에 대해서도 가장 직접적인 원 자료요 비판서를 이 기회에 발견하였다. 『A Description of Scotland(1649, 스코틀랜드에 대한 진술)』과 『The Court and Character of King James I (16450, 제임스1세의 왕궁과 성품)』가 작가 미명으로 나왔는데, 이는 동시대 의회 지지파요 정치가였던 안토니 웰돈(1583-1648)이 쓴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책에서 그는 킹 제임스 1세를 가리켜  "the wisest fool in Christendom(기독교국 내에서 가장 현명한 바보)"라고 욕했다. 이처럼, 킹 제임스 1세는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은 양면이 있었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KJV 성경만이 무오류의 성경처럼 간주하는 맹종파가 있는가 하면 또 경계파가 있다. NIV 성경이 1978년에 처음 나와 그 인기가 한 세대 동안은 압도적이었으나, 여성인권 및 동성애의 압력에 굴하여 새로운 개정판을 내면서 보다 보수적인 독자들로 하여금 다시 KJV로 돌아가게 만들었고 그런 이유로 KJV가 다시 인기를 회복하는 중에 있다. 참고로, 조나단 에드워즈도 KJV 1611판을 개인용 성경으로 소지하였고, 1652년 판은 모두 분해하여 자신의 여백 성경을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킹 제임스 전후의 모든 왕들은 예외 없이 청교도들에게 피 비린내 나는 박해와 처형을 가했다. 그러나 킹 제임스 1세는 그런 기록을 찾을 수 없는 비교적 지혜로운 양순한 왕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런 왕이 주도한 KJV는 400년 넘게 기타 성경의 번역과 신학발전의 지대한 기초가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영어문법 영문학의 발전에 절대적 역할을 하였다고 인정한다. 역시 좋은 성경번역은 그 시대와 다음 시대의 신앙과 사상의 발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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