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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라워호에서 생긴 일?

03/17/21       정부홍 목사

메이플라워호에서 생긴 일?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탄 영국 청교도 순례자들은 영국에서 직접 온 사람들이 아니라 영국 중부 지역 노팅헴셔 주 바브워스에 있는 ‘온성도들의 교회’에 다니던 청년들이었다. 그들은1606-07년에 윌리암 브루스터 장로의 농장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가졌다. 그러다 당국에 발각되어 윌리암 브레드포드를 포함해 회중이1608년, 로빈손 목사, 클립톤 목사, 윌리암 브루스터 장로, 존 카버 집사,존 스미스, 브레드포드 등과 함께 암스테르담으로 피신을 갔다. 그 곳에서 1백여 명으로 불어난 교우들은 1609년 5월에 레이덴으로 이사했고 1620년까지 영국의 박해를 피해12년간 비교적 잘 정착하며 교인수가 300명 가까이 불어났다. 그 중 60명이 5가지 이유[앞서 두 칼럼 ‘왜 순례자들이 실제로 미국으로 오기로 했을까’?’ 참고] 때문에 1620년 7월 22일, 다시 신대륙으로 떠나는 배를 타게 된다. 레이덴에서 가까운 델프스헤븐 항에서 탔는데 배 이름은 스피드웰(Speedwell)이었다.  

 

영국 사우스엠톤에서 일반 이민자로 분류되는 비분리파 40명이 탄 메이플라워호와 합류하여 두 배가 함께 8월 5일에 출항했다. 그러나 청교도들이 탄 스피드웰호에서 물이 새 다트머스 항에서 수리하여 출발했으나 또 다시 누수가 있어 플리머스 항으로 귀항했다. 어쩔 수 없이 스피드웰 호를 포기하고 승무원만 30명 가량인 메이플라워호로 옮겨 타고 총 130여 명이 한 달 보름 정도 지체된 9월6일, 마침내 플리머스항을 떠나 출항하기에 이른다. 진퇴양난의 위기 속에서 험난한 항해와 불 보듯 뻔한 고난의 길이 예상되어 이미 일부는 동행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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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라워호는 원래 여객선이 아니라 노르웨이,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유럽 나라들과 영국 사이에 주로 포도주나 기타 상품들을 나르는 화물선이었다. 갑판의 실제 길이가 24-27 미터 정도이며, 넓이는 6 미터 정도였다. 현대 선박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이 배는 대해를 항해하거나 풍랑에 취약한 구조를 가진 배였다. 그래서 통상 3주면 당도할 수 있는 거리를 메이플라워호는 2개월 5일에 걸친 항해 후 11월 11일, 케이프카드 프로비던스타운에 정박할 수 있었다. 지연된 출발로 인해 더 많은 곤란한 상황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작물을 심을 시기도 놓친데다 허허벌판에서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두 배가 싣고 올 사람들과 물건들을 더 작은 배로 옮겼으니 130여명의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두 달 넘게 함께 지낸다는 것은 아비규환이었을 것이다. 승선자 일기에 의하면 개 2 마리를 가져온 것으로 되어 있으나1623년, 임마누엘 알탐이 방문했을 때 많은 닭과 염소 6마리, 돼지50마리가 있었다고 한다. 가능한 추정은 최소한 다수의 가축들을 가져왔을 것이다. 식량, 의류, 일반 생필품, 가정용품, 연장, 농기구, 각종 도구, 무기를 실었으나 미개척 황야에서 생존하고 개척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딱딱한 화물선 바닥에 몸을 굴리며 거친 파도를 몸으로 받아 내는 극도의 피곤과 위험과 두려움과 싸우면서 순례자들은 누적되는 여독으로, 그리고 영양 부족과 추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었다. 연약한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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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윌리암 브레포드가 일기에 남기기를, ‘어떤 교만한 젊은 선원과 더불어 몇 사람이 자주 승객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경멸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앓게 되었을 때, 그들은 동정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었다. 그 다음 그가 고백하기를, 자신은 그분들에게 손으로 베풀어주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고, 자신은 그들을 말로 행동으로 학대했었다고 자백했다. 그는 계속 말하기를, ‘오! 여러분, 나는 지금 당신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니 그리스도인들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넘어뜨리고 개처럼 죽입니다.’ 또 다른 청년 존 하우랜드는 존 카버 초대주지사의 하인으로 따라왔다. 그가 항해 중 배 갑판에서 노닐다 물에 빠져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이 스토리는 다음 호에서 별도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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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중 배가 도착하기 직전에 좋은 일 슬픈 일이 겹쳤다. 몇 일 전에는 ‘오세아누스(대양이란 뜻)’라는 남아가 태어나고 정박 후 몇 일만에 ‘페레그린(순례자란 뜻)’이란 남아가 태어났다. 그리고 도착 5일 전에는 윌리암 버튼이 죽었다. 도착하여 정착촌을 탐사하며 하선하기까지 약 한 달 보름을 또 배에서 지내는 동안4명이 더 죽었는데, 슬프게도 그 중엔 ‘야스퍼 모어’라는 어린 소년이 존 카버 초대주지사 가정의 하인으로 그의 한 살 위 누나 엘런은 에드워드 윈슬로 가정의 하녀로, 두 살 위 오빠 리차드와 세 살 위 언니 메리는 윌리암 브루스터 장로의 하인 하녀로 함께 왔으나 야스터는 도착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배에서 죽고, 얼마 후 엘렌과 메리도 첫 해 겨울에 죽었다.   리차드만 오래 살아 남아 80세에 죽었다. 이 네 아이는 그 엄마가 이웃집 남자와 외도로 낳은 것이 발각되어 이혼하고 그 아빠는 양육권을 포기하고 순례자 공동체에 비용을 지불하면서 양육을 맡겼던 것이다. 이렇게 첫 겨울에 혹독한 추위와 괴혈병으로 인하여 45명이 사망했는데 18명의 여성 중 13명이 사망했다. 5월에는 한 명이 더 사망했다.  병사로 고난을 당하며 아내를 잃은 남편과 엄마를 잃은 아이들로 인하여 또 생명처럼 귀한 형제자매들을 잃어 순례자 공동체가 심히 우울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낙망치 않고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순례자들은 플리머스 항구 쪽에 있는 파툭트(Patuxt) 인디안 부족이 버린 땅을 개간하기로 선택했다.

 

 

해안 언덕 위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움막을 지으며 이듬해 3 31일에 모두 하선, 정착을 시도했다. 메이플라워호는 그 배의 주인이자 선장이었던 크리스토퍼 존스가 4 15일에 영국으로 돌아가 2년 동안 더 살았는데 배는 해체되어 목자재로 팔렸다고 한다독자 여러분들에게 닥친 현재의 어떤 고난도 전능자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요, 이를 통하여 미국 건국의 자손들이 나왔듯이 우리의 후손들을 통하여 주님 나라가 발전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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