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June 20, 2021    전자신문보기
존 하버드는 하버드대학의 설립자였는가?

04/16/21       정부홍 목사

존 하버드는 하버드대학의 설립자였는가?


 존 하버드는 하버드대학과 그 동상과 관련하여 4가지 거짓말, 혹은 잘못된 정보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첫째, 그는 하버드대 설립자가 아니라 후원자였다. 둘째, 동상에 기록된 대로1638년이 아니라 1636년이 설립연도이다; 셋째, 동상의 인물은 실제가 아닌 어떤 학생을 모델로 하였다. 넷째, 존 하버드 동상의 발을 만지면 합격한다. 아무튼 좀 자세히 함께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해답이 주어질 것이다.

 

하버드대학에 세워져 있는 동상의 주인공, 존 하버드는 하버드 대학 설립자가 아니라 후원자였다

 

 존 하버드(John Harvard 1607–1638)는 영국 서리 주 사우스워크에서 (현재 런던 지역 내), 정육점과 선술집 주인이었던 아버지 로버트 하버드와 스트랫퍼드어 폰 에이번 의 구청장이요 가축업을 한 토마스 로저스(1540-1611)의 딸이었던 어머니 캐서린 로저스(1584-1635) 사이에서 아홉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존은 구세주교회(현 사우스워크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가 그 교회 리더들 중 한 명이어서 자연스럽게 그 교회가 설립한 문법학교에 다녔다. 1595년 화재로 재건된 스트랫퍼드어 폰 에이번에 있는 그의 조부모집은 ‘하버드 하우스’로 유명해져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이 집은 문학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의 부친 존 셰익스피어가 존 하버드의 부친 로버트 하버드와 함께 시의원이었는데 사업은 건축가로서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1595년 화재로 재건된 스트랫퍼드어 폰 에이번에 있는 존 하버드의 조부모집은 ‘하버드 하우스’로 유명해져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1625년에 흑사병이 돌아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제 자매 대부분이 죽고 존 자신과 그의 어머니와 동생 토마스만 생존하였다. 어머니 캐서린은 이듬해1626년에 존 엘레톤과 재혼했는데 그가 몇 달 만에 사망한 후, 다음해 1627년에 리처드 이어우드(1580-1632)와 다시 재혼했다. 재혼한 어머니와 의붓아버지는 1627년에 그를 케임브리지에 있는 임마누엘대학에 입학시키고 그 어머니는 1635년에, 동생 토마스는 1637년에 죽는다. 존은1631년에 졸업하고 1635년에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비국교도 목사(Dissent)로 안수받았다. 

 

 1637년 4월 19일, 하버드는 자기 대학 동기 존 새들러의 여동생 링머앤 새들러(1614-55)와 결혼했다 하고, 이듬해 상속받은 상당한 유산을 정리하고 챙겨서 뉴 잉글랜드로 갔다. 1637년 11월 2일 매사추세츠 베이 식민지 찰스타운의 공민이 된 그는 이곳에서 곧장 학식 있고 경건한 사람으로 인정 받았다. 그는 찰스타운 '제1교회'의 부목사로 봉직했으며, '자유법집행위원회'(Body of Liberties) 위원으로 ‘법무부에 필요한 몇 가지 일들을 감당하도록’ 임명되었다. 그는 컨트리 로드(현재 메인 스트리트)에 집을 지었으며, 현재는 존 하버드 몰이 있는 그래블 레인 옆에 서 있다. 그의 과수원은 그 집 뒤의 언덕위로 뻗어 있었다. 그의 삶이 교회에서는 성직자로서 그리고 메사추세츠 항만 식민지 정부에서는 법무부 위원으로서 존경 받으며 탄탄한 대로가 펼쳐 보였다. 

 

 그러나 찰스타운에 이민 온 지 1년도 채 안 되어 자신이 결핵에 감염되어 죽어 가면서 자신의 임종을 지켜 보던 아내에게, 2년 전 1636년에 인근 뉴타운(Newtowne)의 학교나 대학(schoale or college)을 위해 약1,600파운드에 달하는 유산 중 절반 780 파운드(당시 식민지의 1년 세수에 해당하는 금액)와 그가 수집한 고전 및 신학 문헌을 함께 기증하도록 유언하였다. 

 

 이렇게 하여 학교는 하버드의 기부금으로 계속 발전할 수 있었다. 매사추세츠 입법의회는 1639년 최초의 거액 기금 헌납자 존 하버드에 대한 감사와 기념하기 위해 교명(校名)을 ‘하버드’ 대학으로 한다고 결의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하버드대학교는 미국의 제일 오래된 명문 학교가 되었다. 하버드대학교 동문들은 1828년 화강암으로 된 존 하버드 기념비를 세웠다. 

 

 그런데 과연 이 학교는 어떤 목적으로 척박한 식민지에 학교를 세우고자 했을까? 메이플라워호가 1620년에 플리머스에 도착하여 미국의 신세계가 개척되었다.  1630년 경부터는 현재 보스톤 중심의 메사추세츠 항만 이주촌이 시작되었고 1636년에 최초로 인쇄기 도입되었으나, 아직 책도 한 권 못 찍는 형편이었다. 책이 귀하여 최초의 책이라곤 1640년에 최초의 책으로 시편을 인쇄했을 정도였다. 그런 시대가 1636년이요, 하버드대학의 원년이다. 그런데 그런 시절에 무슨 뜻을 가지고  메사추세츠 항만 이주촌의 대법원(Great and General Court of the Massachusetts Bay Colony) 에서 결의하여 대학을 설립하기로 하였을까?

 

필자는 이 칼럼을 준비하며 덕택에 아주 희귀한 한 자료를 발견한다. 

하버드대에서 첫 졸업생을 낸1642 년에 런던에서 ‘뉴 잉글랜드 케임브리지 대학 설립에 대한 설명’이라는 제목의 오래된 소책자가 인쇄되었다. 이 글 속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립 목적을 간파할 수 있다.  

 

하버드대에서 첫 졸업생을 낸1642 년 인쇄된 ‘뉴 잉글랜드 케임브리지 대학 설립에 대한 설명’이라는 소책자에 보면 하버드 대학의 설립 목적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뉴 잉글랜드로 안전하게 데리고 나오신 이후, 우리는 우리 집들을 짓고, 생계를 위한 필수품들을 마련하고 또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는 편리한 장소들을 마련하고, 정부를 수립하고, 그리고 우리가 갈망하고 찾았던 다음 일들 중 하나는 학문을 발전시키고 후대에게 영속시키고자 한다, 그 이유는 현재 목사들이 먼지 속에 뒹굴고 있으며 문맹에 가까운 사역자들의 사역을 교회에 안긴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위대한 일을 수행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상의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경건한 신사이자 학문을 사랑하는 자(a lover of learning) Mr. John Harvard(Charlestown의 목사)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기를 기뻐하셔서,  자신의 전 재산이 약 1700 파운드에 달하는데 그 절반을 그리고 그의 모든 도서를 대학을 세우는 데 드리도록 하셨다. 그를 따라 또 다른 사람이 300 파운드를, 또 다른 사람들이 이 두 분들을 이어 더 많은 기증을 하고, 나라의 대중이 나머지 400 파운드를 추가로 기증했다. 모두 동의하여 대학은 매우 쾌적하고 수용할 수 있는 곳 캠브리지에 두기로 하고, 첫 설립자(the first founder)의 이름을 따라 ‘하버드 대학(Harvard College)’로 부르기로 했다.”

 

 이 때 이름으로 변경하여 하버드대학 이라고 명명했지만, 아직 초대학장 학장도 없고 4년 후에야 첫 졸업생이 나왔으니, 아직 학교가 교육할 준비 갖추어지지 않았고 개교하기 전에 존 하버드가 기부했으므로 위의 소책자같이 설립자라고 보아야 정확할 것이다. 그가 경건과 학문을 사랑한 목사로서 공감하고 지원한 이유는 그 설립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도 공감하는 목적이 있을 때에 사람의 마음과 손이 움직인다.  ‘현재 목사들이 먼지 속에 뒹굴고 있으며 문맹에 가까운 사역자들의 사역을 교회에 안긴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는 것은 경악할만한 이주촌의 목회자들의 열악한 교육 수준을 지적하는 것이며, 교회의 미래를 두려워하여 후손들의 미래가 걱정되어서 대학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오늘날에는 반대로 많은 신학교들이 있음에도 목사들의 경건과 도덕과 학문의 수준이 형편없는 것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신학교수들에게 경건을 찾기 힘들고 성경적 신학과 건전한 체험이 겸비하여 신학생들에게 참 모범과 스승이 되지 못하니, 졸업하고 현장에서 곤혹을 치르고 교인들은 배울게 없노라고 탄식하며 교회를 떠난다. 우리 시대에도 이런 상황을 깨닫고 미국 최후 청교도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회심과 성경적 신학과 체험과 모범에서 배워 사역에 뛰어든 로이드 죤스, 팀 켈러, 존 파이퍼, 등등의 귀한 사역자들이 에드워즈의 유산을 이어가며 발전시키고 있다.  그런 귀한 영적 유산이 후손들에게 영속되도록 1701년에 예일대학이 설립되었듯이, 2019년에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저들처럼 양성하고자 필자가 에드워즈 대학교를 설립하였다. 

 

  

페이팔로 후원하기

댓글달기 (100자이내)

내용:

0 자   

댓글(0개)

  
인기 기사
최신 댓글

170-04 Northern Blvd. #2Fl. Flushing, NY 11358
Tel: 718-414-4848 Email: kidoknewsny@gmail.com

Copyright © 2011-2015 기독뉴스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Intonet S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