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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교회가 이토록 죽어 있는 이유는?

06/08/21       정부홍 목사

10. 교회가 이토록 죽어 있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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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칼럼에서 “무슨 요인들이 있어 하바드대학이 타락의 온상이 되었는가?”를 다루었다. 하바드대학에서 학장 교수 학생이 마치 삼종 세트처럼 되어 뉴잉글랜드 교회와 사회에서 타락을 주도하는 원인 제공자들이었다는 것을 밝혀 내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그 결과가 17세기를 거쳐 18세기의 뉴잉글랜드 교회, 조나단 에드워즈가 섬기던 교회와 지역 노스엠톤에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살폈다. 이번 칼럼은 그런 타락으로 교회가 죽었다고 외쳤던 인물들과 사건들 그리고 결과를 살피고자 한다.

 

 1620년부터 아메리카에 이주한 청교도 순례자  1세대들이 지나가며, 상업과 경제 발전하자 조상들의 힘이 되었던 신앙에는 무관심하게 되었다. 동시에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속적 물결이 특히 계몽주의 및 이성주의 철학 사조가 풍미하여 많은 이들이 미혹되어 초자연주의 신앙과 성경의 권위를 경시하고, 점차 제2, 3 세대 후손들은 영적 도덕적 타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와 같은 타락을 막고자 하는 노력들이 범사회적으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662년에 조나단 에드워즈의 외할아버지 솔로몬 트소다트(Solomon Stoddard)가 제안하고 리차드 메더(Richard Mather) 초안했던 중도언약(Half-Way Covenant)이 뉴잉글랜드에서 결의되었다. 

 

 이 법안은 당시 교회의 정회원, 즉, 가시적 성도(visible saint)가 되지 아니하면 사회적 진출이 불허되었다. 정치인, 군인, 공무원, 교사, 등등 교회 정회원이어야 진출할 수 있었다. 2,3세대들이 영적 도덕적 해이로 말미암아 교회 정회원의 자격 요건이었던 부모의 정회원, 자신의 신앙고백, 그리고 자신이 회심한 증거의 요건들을 충족할 수 없어 교회 정회원이 될 수 없고 사회적 진출할 수 없는 애로를 해결하고자, 그 자격을 완화시켜 자신의 회심 증거가 없어도 다른 2가지 요건만 충복되어도 무방한 것으로 완화시킨 제도가 중도언약(Half-Way Covenant)이었다. 이런 법안은 도리어 2,3세대들의 신앙을 안일케 하고 교회의 영적 상태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는 사이 식민지에서 엄청난 재난들이 발생하였다. 인디안 전쟁들, 화재, 파선, 전염병, 영국의 정치적 압박, 등등으로 결국 고백하기를 지금 아메리카는 하나님의 큰 진노 아래 있다고 자백하기에 이르렀고, 1679년에 다시 보스톤에서 개혁 대회(Reforming Synod) 개최하여 회개를 촉구하였다. 참석한 대회 회원들은 인식하기를, 자만과 교만 때문에 그리고 “신앙에 대한 관심이 주저 앉았고 죽었다(sunk and dying interest in religion)”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였다고 자백하였다. 인크리즈 메더는, “대회(synod)가 뉴잉글랜드의 영적 개선을 확보하는 최선의 수단이 될 것이라”라고 지지했다. 그리하여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노력하기로 결의하고 교리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공감했으나 구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막연하였다. 존 윈드롭 같은 순례자 청교도들이 세우고자 했던 “언덕위 도시(City on the Hill)”는 물 건너 간 듯 뉴잉글랜드는 교회와 성도들은 세속의 파도에 휩쓸려 내려갔다. 

 

 예들 들어, 그 당시 보스톤에 대한 인상을 조지 휘필드가 집회를 인도하러 갔던 1740년에 남긴 그의 일기에 뉴잉글랜드의 첫 수도같은 대도시가 어떠했는지 알려준다. “보스톤은 크고 번화한 곳이요 아주 부유하다. 보스톤이 신앙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신앙의 능력은 크게 잃어버렸다. 여러 해 동안 아무런 주목할만한 부흥에 대해 듣지 못했다. 사역자들과 백성들은 사랑이 식었다고 고백치 않을 수 없다. 모두 다 너무나 세상과 짝하고 있다. 그들의 집회들은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하다. 여자들은 보석과 장식품과 동성애 복장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Oct. 12, 1740)  

 

 뉴잉글랜드가 13개 식민지(주 state)로 성장(1620-1732)하여 발전해 갈 때 뉴잉글랜드의 중점 도시는 뉴욕 뉴저지 펜실바니아 같이 동중부 지역이었다. 지리적으로 산업적으로 발전해 갈 때, 화란인들이 먼저 상륙하여 자신들의 식민지로 일구었던 뉴욕(옛 지명 “New Amsterdam”)을 영국에게 1664년에 빼앗기고 대거 뉴저지(옛지명:New Netherlands) 산간 지역으로 후퇴하였다. 데오도르 프레링구이선 (Theodoreus Jacobus Frelinghuysen 1691-1747)이라는 화란인 젊은 목사가 26세되던1717년에 Dutch Reformed Church에서 안수 받고, 1719년1월에 New Jersey로 청빙 받았다.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실상에 경악하고, 사람들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를 실제로 목격하게 된다. “가정예배는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혀 행치 않는다. 거듭남(New Birth)에 대해 설교하면 농담으로 여기고 조소했다….”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이여 교만한 남녀들아, 쾌락만 밝히는 자들아, 술주정뱅이들아, 노름꾼들아, 불순종하고 복음을 거역하는 악한 자들아, 부정한 돼지들아, 행음자들아, 포주들아,… 참된 회개가 없으면, 부정한 마귀들과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교했다. 그의 아들 존 프레링구이선도 사역자로 성장하여 대를 이었다. 존의 부인디나 판 버허(Dinah Van Bergh,1725-1807)는 아주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아주 경건하였다. 그런데 두 아이 프레드릭과 에바를 남기고 남편이 죽자 귀국하려 준비하는데 남편의 아주 헌신된 제자 야곱 하르덴버어가 프로포즈하여 사역을 계속하였으며 퀸즈 칼리지, 곧 한국 언더우드 선교사를 배출한 현재의 뉴브린스윅신학교 및 럿거스 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으로 봉사하였다. 또 전남편 존의 아들 프레드릭 프레링구이선도 잘 성장하여 조부모와 선친의 신앙과 정신을 이어 받아 현재까지도 뉴저지의 유명한 정치인들로 헌신하고 있다. 이처럼 데오도르 프레링구이선 목사께서 미국에 와서 죽어 있는 신앙과 타락한 생활을 안타까워하며 영혼들을 사랑하여 설교하여 미국 대각성의 원조가 되었다. 이런 회심과 경건과 철저한 실천이 있는 가정이 에드워즈 못지 않은 아니 아마 그 이상의 명가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되었다.

 

  휫필드도 뉴브린스윅 집회에 “말씀을 들으러 왔던 그는 이미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인도하는 도구요 … 화란 칼빈주의자요, 예수그리스도의 훌륭한 노장 군인이요 위대한 역사[대각성]의 개척자요…”고 일기에 썼다. 조나단 에드워즈도 그에 대하여 프린스톤 대학의 전신 통나무대학교를 설립한 스코틀랜드 출신 장로교 목사 윌리암 텐넌트의 아들 주니어 목사를 만나 뉴져지 지역에서 일어나는 부흥의 소식을 듣는 가운데 프레링구이선 목사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는 “매우 경건한 젊은 신사요, 네덜란드 목사이신데 기억하기로 그분의 이름이’ Freelinghousa[정확한 성은Frelinghuysen인데 에드워즈가 정확히 스펠링 못했다]’ 이다.”라고 그의 “놀라운 회심 이야기” 책에서 미국의 제1차 대각성은 뉴저지에서 출발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주니어에 대해, “그런 것들[신적인 축복의 소나기, 성령의 부으심]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썼다. 그의 큰형 길버트 텐넌트는 13세에 미국에 와서 20세 회심하고 3년후 장로교 목사로 안수 받고 뉴브룬스익장로교회에서 사역하며 회심과 성결한 삶을 강조하는 설교자 프레링구이선을 만나 서로 강단 교류하며 협력했다. 길버트도 그만큼 열정적 설교로 수많은 사람들을 회심하게 이끌었다. 많은 목사들이 반대했다. 그는 반대자들을 “바리새파 교사들… 자신의 영혼이 성령의 특별 은혜를 체험치 못하여” 이해하지 못해 그런다고 반박했다. 결국 1740년에『회심하지 못한 목사의 위험성(The Danger of an Unconverted Ministry)』발행하여 그런 목사들을 광명의 천사로 변장한 사탄에 비유하고, 교회가 죽은 부분적인 이유은 목사들이 회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맹인은 매우 위험한 길에서 가이드가 되기에 적합합니까?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리기에 적합합니까?” 

 

 그리고 길버트 텐넌트는 휘필드의 설교를 지지하며 동역했다. 휘필드는 32년간 미국을 총7차에 걸쳐 방문하였는데 그 중 제2차 방문 때였던1740년 9월 24일자 그의 일기에서 길버트 보다 더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교회(정확히는 회중들, congregations)가 이토록 죽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은 사람들이 설교하기 때문이다. 어찌 죽은 사람들이 산 아기를 낳을 수 있겠는가?” 에드워즈도 교회가 죽었다고 말하지는 않고, 사람들의 신앙이 죽었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의 신앙이 식어서 죽어 있다…. 그리고 이웃 사람들을 만나도, 영혼의 염려에 대해는 거의 듣지 못한다. … 세상적인 사업에 대해, 세상적인 계획, 사고 파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하다.” [에드워즈, “변질의 위험들,”계2:4-5]

사회학자들이나 무신론자나 반기독교인들의 눈으로 보는 것 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죽은 것이 아니라, 그 구성원들인 회중들과 교인들의 영혼이나 믿음이 죽어 있었. 먼저 우리 각자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돌이켜 회개하자, 그리고 저 선각자들처럼 통나무를 베어서 지은 헛간에서부터 설교자를 양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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